로아 검진 날이다.
'아빠는 집으로 가서 쉬고 있으세요.'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할 즈음 수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도 병원으로 바로 갈게. 터미널에서 병원까지 지하철 몇 정거장 안되고, 도착하면 대충 검진시간과 맞을 테니까.’
아빠는 장거리 여정으로 피곤할 테니 아파트에 가서 편히 쉬고 있으라는 아들의 말에 에둘러대고, 터미널에 도착하여 곧바로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현아가 오후 휴가를 내고 수현이가 동행하니, 아들 말대로 할까 하다가도 그저 가보고 싶었다. 임신 과정에서부터 로아의 몸 상태에 대한 일련의 걱정과 초조함을 안고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법인데, 손주 신상에 관한 일이라면 가슴이 먼저 덤비는 것은 아닌지 싶다.
영상의학 검사실이 있는 병원 지하 1층, 이곳에 나타난 잠든 로아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못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초음파 검사실 앞, 닫힌 둔중한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로아의 울음소리에 내내 귀 기울여진다.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북적이는 진료대기실에서 기다리다 지친 로아의 얼굴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늘 로아 검진에서도 일부 의심 증세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지만, 주치의는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의사는 항상 보수적으로 환자 상태를 진단하고 의학적 소견을 가감 없이 전해준다고 알고 있다. 더더군다나 이 대학병원 동료 의사인 현아에게 주치의가 단지 안심시키기 위해 사실과는 다른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미쳤지만, 주치의의 설명을 듣는 내내 나는 현아의 표정만 살피게 된다.
엄마 입장임에도 현아는 오늘의 진단 결과와 주치의의 소견에 특별히 걱정을 보이거나 불안한 기색은 없는 듯 보였다. 병원을 나서면서 내가 미심쩍어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의학적 소견으로 오히려 나를 안심시킨다.
사람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비로소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 한 생명이 잉태되어 엄마 뱃속에서 성장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아기는 온 가족의 눈과 귀와 마음을 온통 끌어당긴다. 블랙홀이 우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기의 상태에 따라 가족은 기쁨과 감동, 걱정, 염려, 초조함의 구간이 무수히 교차하는 길고 긴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태아의 상태를 진단하는 의학 장비들은 나날이 발전하고 태아가 온전한 생명체로 태어날 수 있도록 크게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로 인해 결국은 아무 문제없는 것으로 드러나는 ‘의심 가는’ 사례들 또한 더 많이 발견되고, 그로 인해 가족은 더 많은 걱정과 초조함을 떠안게 되는 것은 아닌지 싶다. 이 장비들이 현미경처럼 잡아내는 ‘의심사례’들은 하나같이 아기의 신체와 인지 기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인들이기 때문이다.
로아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임신 과정부터 이런 의심 증세를 통보받을 때마다 현아 수현만이 아니라 아내와 나도 얼마나 초조하고 간절한 마음이었는지는 이런 일을 경험하는 엄마 아빠나 할아버지 할머니는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주에 대한 걱정만이 아니라, 자식들이 겪고 있을 걱정과 초조, 불안감, 안타까움까지도 기꺼이 당신들 마음에 담아내고자 한다. 아내와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수현이를 임신했을 때, 엄마 아빠로서 먼 미국 땅에서 절실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당시 지역 종합병원에서 받던 정기 검진에서 아내 태반에 혹이 발견되었다. 이 혹이 암일 가능성이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출산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잔인한’ 소견을 듣게 되었다. 그 병원 장비로는 자세한 규명이 어려워 인근 대도시의 상급병원으로 예약이 잡혔다. 상급병원의 재검진에서 단순한 물혹으로 밝혀지기까지의 두 주는 우리 삶에서 가장 길었던 기간으로 기억된다. 아내와 내가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티며 견뎌냈던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심경은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그때, 걱정과 불안감을 함께 나눠주실 부모님이 가까이 계셨으면 얼마나 위로가 될까 절실하게 느꼈다. 하지만, 멀리서 하릴없이 걱정만 하시게 될 부모님 생각에 차마 알리지도 못하고 그 짐을 오로지 우리 둘이서 져야 했다.
현아 수현이는 뱃속의 로아가 의심 소견을 진단받을 때마다 고맙게도 우리에게 알려왔고 기도를 부탁했다. 우리도 로아를 위해서 그리고 현아 수현이를 위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고, 이따금 만나서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기쁨은 기쁨대로, 걱정은 걱정대로 마음을 더하기도 나누기도 해왔다.
이렇게 임신 기간 내내 온 가족을 걱정과 안타까움으로 몰아넣는 만큼 아기 탄생은 그 자체로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감동과 감사의 순간이 된다. 요즈음 코로나 상황으로 조부모는 물론 아빠조차도 탄생의 순간을 함께 나누지 못하지만 말이다.
‘지금은 현아가 먼저 신경 쓰이지.’
‘로아 어떤 모습일지 많이 설레지?’란 우리 말에, 코로나 상황으로 분만실 밖에서 대기하며 우리에게 실시간 중계하던 아들의 대답이다. 아들의 답변대로, 우리도 로아의 탄생을 축복하는 것만큼이나 현아 수현이에게 격려와 축하를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이들이 임신 과정에서 겪어온 어려움을 우리가 함께 공유하지 못했다면 로아의 탄생이란 축복의 순간, 손주만 보이지 않았을까? 엄마로서의 현아의 대견함과 인내, 아빠로서의 수현의 내조와 노고에 진심으로 위로를 건네주고 싶었다.
분만실에서 나와 신생아실로 이동하는 중 수현이가 폰 영상으로 찍어 보낸 로아의 첫 모습, 그 짧은 영상 속에 건강해 보이는 모습을 확인한 아내와 나 둘 다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적셔진다. 이 순간이 지나고 나니, 아직 회복실에서 나오지 않은 현아의 안부 소식만이 간절하게 기다려졌다.
‘아기는 가족을 통제하고 키운다.’
아기의 성장과 발달은 일차적으로 가족 구성원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지며, 성장에 따른 아기의 가능성이 계속 새롭게 나타나면서 가족의 양육자는 변하고 성장한다는 뜻이다. 영유아 발달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핵심을 압축적으로 전달해주는 이와 같은 멋진 표현을 간간이 만나게 되지만, 나이 탓인지 책을 닫을 때쯤이면 대개는 뇌리에 남지 않는다. 그런데, 이 표현은 예외적으로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왔다. 미국의 유명한 발달심리학자가 한 말이어서가 아니라, 두 아이를 키웠던 경험, 이제는 손녀 로아와의 관계와 육아 과정에서 이 역설적인 표현이 내게는 경험으로 체득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겸손과 감사,
엄마 뱃속에서부터 일련의 걱정과 초조함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며 마침내 이 세상에 태어난 손녀 로아가 이제는 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겸손과 감사의 마음을 채워주고 ‘키워주는’ '어른'이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다.'라는 시인 워즈워드의 선언이 괜한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