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러너의 미국에서 러닝 하기
시간이 허락하는 한 일주일에 2~3번 정도 달리고 있다. 아주 덥거나, 춥거나 비가 올 때는 어쩔 수 없이 러닝머신에서 뛰지만, 그 외에는 최대한 밖에서 달리려고 한다. 러닝 머신 위에서는 무언가 빨리 지루해지고, 금방이라도 속도 내림 버튼을 누르고 싶은 욕망이 끊임없이 솟구쳐 오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새롭게 펼쳐지는 다른 땅을 발로 디디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뛰는 것을 훨씬 선호하는 편이다. 아직 초보라 약 3마일 좀 넘게(5km) 뛰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다 뛰고 나서 온몸이 땀으로 젖고, 다리에 약간의 뻐근함이 느껴지면 무언가 나만의 작은 성취감을 맛보게 된다.
사실 40살 넘어서 까지 제대로 달려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저 피트니스 센터에서 근력 운동 전에 살짝 워밍업 하는 수준이었지, 3km 이상 뛰어본 적도 거의 없었다. 미국에 와서도 매일 같이 길거리를 달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쳐도, 러닝은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미국사람들' 만의 유별난 취미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던 내가 본격적으로 러닝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뛰기 시작하게 된 것은 내 친구 K덕분이었다. 미국 출장길에 나를 방문한 그가 나에게 본인 발에는 맞지 않는다며 20만 원이 훌쩍 넘는 나이키 러닝화(그것도 무려 카본 플레이트!)를 주고 간 것이 화근(?)이었다.
"우리 나이에 할 수 있는 운동은 이제 별로 없다. 그냥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달려봐. 그러면 나중에 거리가 점점 늘고, 마라톤까지 뛸 수 있어"
그 친구는 코로나 시기 때부터 달리기 시작해서 어느덧 5년 차 러너가 되었고, 최근에 풀코스 마라톤까지 완주하였다. 그 친구가 몇 년간 나에게도 달리기를 꾸준히 권했음에도, 나는 이러저러한 핑계로 달리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빡빡했던 내 일상 때문인지, 또는 나 혼자 여유롭게 뛰러 나가는 게 하루 종일 육아에 시달린 와이프에게 미안해서 인지 모르겠지만,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세계 그 어디보다 러닝에 좋은 환경을 갖춘 미국에 살고 있고, 예전보다 여유시간도 많아졌다. 게다가 친구가 투척해 준 고급 나이키 러닝화도 있지 않은가?
처음에는 3마일 달리기도 쉽지 않았다. 몸은 금방 피로해지고, 숨도 거칠어졌다. 40년간 안 달려본 내 몸도 갑자기 달리라는 뇌의 지시에 순수히 따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몸이 적응하기 시작했고, 이제 5킬로 정도는 크게 무리 없이 뛸 수준이 되었다. 그 사이 내 발에 잘 맞는 러닝화도 더 구매해서 신기 시작했다. 카본 플레이트 러닝화는 초보인 나에게는 너무나도 높은 스펙의 제품이었다. 고작 5킬로 뛰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반발력이 좋은 신발이 오히려 무릎관절이나 근육에 무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카본화를 신고 달리는 마치 신발에 스프링이라도 달린 듯 땅을 구른 다리가 내 의지보다 높게 뛰어올라 놀라기도 했다.
의외로 '러닝'은 선진국 스포츠라고 한다. 국민 소득 수준이 약 3만~4만 불이 넘어야 시작된다고 하는데, 실제로 한국은 최근 골프, 테니스를 거쳐 전 국민 '러닝 열풍'이 분 듯하다. 나이를 불문하고 동호회 형식의 '러닝 크루'가 넘쳐나고, 러닝화, 러닝복등 역시 장비의 나라답게, 유튜브에도 각종 리뷰 콘텐츠가 넘쳐나는 걸 보니 역시나 '한국' 스럽다. 그에 반해 미국 사람들에게 러닝은 그저 혼자 즐기는 개인 스포츠에 가까운 것 같다. 팀 훈련하는 학생들은 제외하고 단체로 뛰는 사람들은 많이 보지 못했다. 내가 사는 시카고에도 한인 교포들을 중심으로 러닝 크루나 동호회가 있는 것 같은데, 주로 주말에 운영되는 곳이라, 주말에 항상 일을 해야 하는 자영업자인 나에게는 참석자체가 불가능하다. (성격 상 나 혼자 편하게 뛰는 걸 더 선호한다.)
어느덧 나이 46세. 내 친구 말처럼 이제 우리 나이에는 격렬한 운동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축구나 농구처럼 격하게 움직여야 하는 스포츠는 자칫 다칠 수도 있고, 병원비가 천문학적이고, 의사 만나기도 쉽지 않은 미국에서는 생활에 큰 지장을 가져올 수도 있다. 누군가 나에게 달리기를 왜 하냐고 물으면, 대답은 단 한 가지다.
"살려고 뜁니다"
몸을 쓰는 일이 많은 미국 생활, 특히 자영업자의 업무 특성상 체력관리는 필수적이다. 그래도 요즘 열심히 뛰는 덕분에 많이 먹는 것 치고는 체중이 크게 늘지 않았다. 한국에서부터 문제 되었던 혈당도 많이 내려가고, 콜레스테롤 관리도 그럭저럭 잘 되고 있는 편이다. 앞으로 뛰는 거리를 7킬로, 10킬로 정도로 늘리는 게 단기 목표인데,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5킬로가 넘으면 "이쯤 뛰었으니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욕망을 끊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