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인 이민자가 살아가는 방법

Where there is love, there is life.

by 리엘리

내향적인 편이다. 몇 날 며칠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전혀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다. 내향적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학창 시절과 직장 생활의 시간과 공간이 맺어준 생활력과 인맥이 있었다. 친구, 동료로 연결된 고리를 통해 그들과 주기적으로 만나고 교류했다. 소수의 절친한 사람들과 쇼핑도 다니고 좋은 곳으로 여행도 곧잘 다녔다. 굳이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낯선 사람과 만나지 않아도 되는 실내 스포츠, 이를테면 실내 수영장, 댄스 아카데미도 꾸준히 다녔다.


내향적인 나를 좋아한다. 외향적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지금껏 살면서 딱 한 분야에서만 했었다. 영어 말하기를 배우고 연습할 때였다. 대학교를 잠시 휴학하고 영국에서 어학원에 다녔다. 1교시 수업을 마치면, 교실 안의 학생들이 우르르 학원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그러면서 시시껄렁한 잡담을 주고받고 금세 친구가 되어 돌아왔다. 그때. ‘아, 나도 영어로 말하며 친구를 쉽게 사귀려면 담배라도 피워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주위를 둘러보면, 외국인들과 어울리며 쉬는 시간에 담배도 피우고 방과 후에는 펍에서 술도 마시면서 놀러 다니는 사람들, 다시 말하면 적극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외국인과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러다가 외국인하고 연애라도 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영어로 말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들은 경우에 맞는 적절한 단어와 정확한 문법을 사용해서 말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든 표현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영어 회화 실력이 쑥 는 것이 보였다.


영어로 편하게 이야기하는 좋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먼저 다가가서 손 내밀어 외국인 친구를 사귀지는 않았다. 부족한 영어를 내뱉어 나를 얕보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는 낯선 외국인과 선뜻 이런저런 말을 주고 받을 만큼 사교적이지 않다. 어디까지 이야기하는 것이 친하지 않은 선에서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할 수 있는 평범한 대화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관계의 시작을 하지 않으니 친구라고 느껴질 만큼 친해질 기회는 당연히 없다. 내게 친구는 함께하는 경험과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 큰 노력 없이 저절로 관계가 맺어지는 존재이다. 이렇다 보니 눈으로 보는 영어에만 익숙해지고, 입으로 하는 영어는 영 늘지 않는다.


뉴질랜드에서 이민자로 산 지 오 년 반이 지났다. 우리나라처럼 저절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학연이나 지연이라고는 없다. 어학연수 시절과 마찬가지로, 이곳에 사는 몇몇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친구가 되어 지내지만, 영어로만 소통하는 진짜 뉴질랜드인 친구는 없다. 동네 페이스북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눈으로만 동네 소식을 본다. 주간 동네 소식지를 통해 타운에서 벌어지는 일들, 타운의 유명 인사들의 얼굴도 꿰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의 소셜 클럽 안에 발을 들이밀고 그들의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친구가 되어 말하며 지내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이것은 부족한 영어 실력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웃도어 활동 위주, 개나 아이가 있는 사람 위주라 내가 가입하고 싶은 소셜 클럽이 없다는 핑계를 대본다.)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답답해하지 않고, 많은 사람과 굳이 교류하지 않는 내향적인 나 때문이다. 누군가 와서 먼저 손 내밀어 주었으면 하지만, 아니면 아닌 그대로 행복을 찾아 살고 있다.




얼마 전, 가입된 뉴질랜드 관련 포털사이트 인터넷 카페에 게시된 질문을 보았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선호하고 즐기기 좋은 취미는 무엇인가요? 우리나라에서 저는 집순이예요. 친구들과 치맥 하며 수다 떨고, 코인 노래방에서 노래하는 것이 취미예요. 운전을 못 해서 여행 다니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질문자가 분명, 집순이 성향임을 밝혔는데도 답글에는 이참에 야외 활동을 시작하라며 ‘낚시, 운동, 트래킹, 골프, 수상 스포츠, 산악자전거, 사이클, 바다 수영’과 같은 아웃도어 활동이 답변으로 주르륵 달린다. 많은 뉴질랜드 사람들이 흔하게 즐기는 취미 활동임이 틀림없긴 하다. 그녀는 함께 치맥을 할 수 있는 친구를 야외 활동을 하며 만날 수 있을까? 코인 노래방까지는 아니어도 집안에서 블루투스 마이크를 들고 신나게 함께 노래할 수 있는 친구를 야외 활동을 통해 만날 수 있을까? 그보다 그녀는 과연 야외활동을 취미로 하게 될까?


블로그 이웃으로 인연을 맺은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향적인 사람은 밖의 영향을 덜 받고 집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으니 오히려 다행이에요. 그곳이 우리나라이든 뉴질랜드든 상관없이.”


이 말을 오마주 하여 그녀가 꼭 아웃도어 취미를 갖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집순이는 밖에 나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친구를 초대해서 함께 재료를 사고 집에서 치킨을 튀겨 드세요. 완성된 치킨을 사와도 괜찮아요. 그리고 치킨을 먹으며 수다를 떨어요. 당연히 다음 차례는 블루투스 노래방이 될 거예요.”


내향적인 사람이 아웃도어의 나라 뉴질랜드에 와서 산다고 굳이 자신과 맞지 않는 취미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즐겁자고 하는 것이 취미인데 말이다. 집안에서든 집 밖에서든 행복을 주는 그 무언가를 스스로 찾는 것이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이민자는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보다 더 외로울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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