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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석 Sep 28. 2022

대한민국 정통사관, 장기집권의 절대 파국

건국신화 제6장(2편)

 상황이 이러했으니 군부 내에서 공공연히 쿠데타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고, 주동자인 박정희와 김종필에 대한 정보도 상부에 여러 차례 보고 되었다. 그 결과 김종필은 항명사태에 대한 책임으로 군복을 벗게 되었지만, 박정희는 장도영참모총장 육군참모총장 등의 도움으로 5.16까지 군에 남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장교들이 박봉의 월급 때문에 부정부패에 빠져 있었지만, 박정희는 남다른 청렴함을 자랑하며 젊은 장교들의 리더로 자리잡았다. 5.16의 심야에 그를 체포하러 온 수십명의 헌병과 장교들에게 비장한 연설로 오히려 그들을 혁명에 동참시킨 것은 그의 결단력과 리더십을 잘 보여준다. 

 “여러분, 우리는 4.19 혁명 후 그래도 나라가 바로잡혀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나라꼴입니까. 국무총리를 비롯해서 장관들이 호텔방을 잡고 돈 보따리가 오고가는 이권운동, 엽관(獵官) 운동에 여념이 없으니 이게 무슨 꼴입니까. 자유당 정권을 능가하는 부패와 무능으로 나라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는 이 정권을 보다 못해 우리는 목숨을 걸고 궐기한 것입니다. 동지들도 이제부터 구국 혁명의 대열에 서서 각자 맡은 임무에 전력을 다해 주기 바랍니다.”[1]

 

 사실 5.16혁명의 성공은 4.19로 거저 얻은 통치권력을 민주당이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구파와 신파간에 난투극과 분당까지 가는 극심한 정쟁이 빌미가 되었다. 윤보선대통령과 장면총리도 계파의 한계를 극복하는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미약한 지도력으로, 쿠데타가 발생하였는데도 미국의 눈치만 살피는 나약한 대처를 하여 목숨을 건 혁명세력에게 속절없이 권력을 넘겨주고 말았다. 

 81년 비밀해제된 백악관 내 국가안보위원회에 보고된 ‘한국문제 종합보고서’에는 5.16혁명의 성공 요인을 ‘좌절하여 불만이 쌓여 가던 민족주의 의식, 젊은 세대의 불만, 국가적 목표의 상실, 국민들의 좌절감’으로 분석하고, 장면정부가 국가적 문제를 타개하는 해결능력에 대한 신뢰를 국민들에게 주지못해 무너졌으며 이 젊은 에너지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 힘을 통합하여 경제 개발과 사회 개혁으로 돌리도록 미국 정부가 지원과 지도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한국인들은 계속해서 혁명적인 코스를 밟게 될 것이다. 그런 불안정한 정세가 지속되면 북한 공산당과 합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2]


                       장기집권의 절대적 파국 


  2천년대인 지금도 세계 여러 국가의 장기집권자들은 초기의 참신함과 합리성을 상실하고, 수십년의 독재통치 끝에 국민들을 무시하고 불합리한 정책을 계속 채택하는 것을 우리들은 목격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그 원인으로서 정치시스템의 노후화와 함께, 절대권력자에게 오랜 세월 남성호르몬이 과다 분비되어 인간 자체의 화학적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고의 우월적 지위를 계속 차지하다보니, 자신의 판단을 과신하고 오만하게 된다는 것이다.

 박정희에게도 그런 현상이 최장수 비서실장(9년 3개월) 김정렴이 교체된 1979년에 극명하게 나타났다. 1976년 대통령에 당선된 미국의 지미 카터는 한국의 인권문제를 강하게 비판하며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79년 6월 29일 방한한 카터와 박정희의 정상회담은 그야말로 최악의 자리가 되고 말았다. 

 사실 전(前)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77년 6월 미국의회에서 박정권에 대한 폭로를 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정부는 미국 언론, 의회와 수사기간의 동네북이 되어 있었다.

 한국 공화당에 대한 걸프(대한석유공사와 합작한 회사)의 정치헌금, 박동선사건, 김대중 납치사건, 김형욱의 폭로, 통일교 문제, 재미교포에 대한 한국 정보기관의 협박, 정보부 간부들의 잇단 망명사건, 주한미군 철수문제, 한국의 인권문제에 대한 미국의 압박 등으로 한미관계는 매우 악화되었던 것이다.[3]

 

 군사독재 말기의 증상이 계속 나타나는 가운데, 뛰어난 용인술을 자랑하던 박정희도 결국 노쇠화를 피하지 못했다. 김정렴비서실장과 육인수의원, 한병기의원 등이 추천한 차지철 경호실장이(74~79년) 78년부터 비공식 정보기관을 운영하며, 월권행위와 오만한 언행을 하는데도 박대통령이 그것을 제어하지 않은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를 추천한 사람들은, 경호실차장을 지냈고 국회의원을 하면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차지철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는 것이다.[4]

결국, 장기집권에 따라 옥석을 가리는 눈이 흐려져, 충언은 거부하고 감언이설에 빠진 그 자신이 비참한 최후의 원인 제공자였다. 

 박정희가 영구집권을 하려고 했던 것 같지는 않다. 78년 제9대 대통령 취임 이후 야당의 요구를 감안하여 전(前) 중앙정보부장 신직수에게 ‘유신헌법 개정안’을 극비리에 지시했고, 김정렴과 유혁인 정무수석비서관에게 두차례 ‘9대 대통령 임기만료 1년 전에 물러나 총리에 임명된 김종필에게 권한대행을 맡기고, 대통령선거를 실시한다는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5]


  <국가와 혁명과 나>(63년)에서 박정희는 연평균 경제원조 약 2억 8천만달러에도 불구하고 연평균 5천만달러의 적자, 연평균 2.2%의 인구증가(72만명)의 인구압력을 거론하며 자립경제는 기적 이외에는 바랄 수 없다는 암담한 심경을 말하며, 5.16 군사혁명의 민족국가 중흥이라는 목적에는 ‘민족의 산업혁명’이 그 핵심이라고 말했다. ‘먹여 놓고, 살려 놓고서야 정치가 있고, 사회가 보일 것이며, 문화에 대한 여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6]

 좌절감과 열등감에 빠져 있던 한민족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만든 박정희는 ‘민주주의는 경제가 고도화되면 자연히 도래한다’라고 믿었으며,그 믿음은 그의 죽음과 이후의 민주화로 증명되었다. 다만, 국민들에게 전혀 희망을 제시하지 못한 유신통치의 암흑성으로, 자신이 키운 신군부의 철권통치와 5.16의 비극,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사관의 탄생원인을 제공한 잘못은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 

 어쨌든, 그는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이라는 그의 통치철학을 높은 수준으로 달성했고, 그의 마지막 미션(misson)인 ‘평화통일’은 우리 후손들의 몫이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승부가 났으며, 우리는 이미 그들보다 10년 내지 15년 앞서 있다. 다만 군사적으로는 남북이 비슷한 상태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단독으로 무력 도발을 해 온다면 우리도 우리 단독의 힘으로 충분히 이를 격멸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참다운 승리는 싸워서 이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이기는 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 공산 집단이 전쟁을 해도 승산이 없다고 체념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힘을 더욱더 증강해 나가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평화와 자주와 민주의 민족 정신을 바탕으로 국력을 꾸준히 배양함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조국 통일의 미래상에 한 걸음 한 걸음씩 접근해 나가고 있다. 한 마디로 우리에게 있어서 평화와 자주와 민주는 통일에 이르는 과정이면서 그 결과이며, 통일을 이룩하는 수단이면서 그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박정희, <민족 중흥의 길>(78년)[7]


          

[1]조갑제, <박정희>4권, 78쪽 

[2]조갑제, <박정희>4권, 254쪽

[3]조갑제, <박정희>12권, 125~127쪽 

[4]김정렴, <아, 박정희>, 333~335쪽 

[5]김정렴, 위의 책, 219~220쪽 

[6]박정희, ‘국가와 혁명과 나’, <하면 된다! 떨쳐 일어나자!>, 395~396쪽 

[7]박정희, ‘민족 중흥의 길’, <나라가 위급할때 어찌 목숨을 아끼리>, 3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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