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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석 Oct 11. 2022

민족주의자의 나라, 대한민국 정통사관 에필로그

자유화.산업화.민주화 그리고 행운 

                               Epilogue 

          <자유화.산업화.민주화> 그리고 행운 


 구사일생. 대한민국의 생존은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이후 15년간의 전쟁기간 동안 물자와 인력의 대거 징발로 한반도는 매우 피폐해졌고, 더욱이 남한은 농업중심지로 전력과 대규모 공업시설은 북한에 집중되어 해방시기에 극심한 혼란과 고통을 겪었다. 

 소련점령군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의 선전선동, 격렬한 폭동과 대규모 게릴라침투에도, 신국가 대한민국은 50년에 쌀을 수출할 정도의 농업력 회복과 재정안정, 토지개혁에 따른 민심안정 등으로 사뭇 새로운 활력이 넘치고 있었는데, 김일성과 공산세력의 전면 남침전쟁으로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중국대륙에서도 공산당이 승리했는데, 혼란과 자원이라고는 북한의 2배에 가까운 인구만 존재하는 대한민국은 쉽게 공산화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이러한 예상을 벗어나 결사항전으로 나라를 지켜내고 70여년만에 세계적 공업, 문화강국으로 성장한 것은 거대한 감동의 드라마였다. 

 

 헤로도토스와 마키아벨리는 <역사>와 <로마사 논고>에서 위대한 국가의 탄생에는 행운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모든 국가는 흥망성쇠를 피할 수 없다. 

 대한민국도 탄생과 발전 과정에서 여러 행운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첫째, 소련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의 반탁정책으로 남한 민중들에게 공산세력이 민심을 잃었고, 소련점령군의 폭정에 저항하여 남으로 내려온 북한의 기독교 민족주의 세력이 반공민족주의 세력이 되어 북한의 침략에 강력하게 맞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이승만이 진보주의자 조봉암을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임명하여 농지개혁으을 성공시킴으로써, 중국대륙과는 다르게 6.25전쟁에서 농민들이 자기 땅을 지키기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하였다. 

 셋째, 이승만의 무모한 북진통일론에도 불구하고, 전쟁 직전에 도착한 한국 최초의 전투함 백두산함이 북한군의 부산 상륙선을 격퇴하고, 소련이 대만(중화민국)의 UN지위문제로 안보리에 불참으로써 패망 직전의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 

넷째, 민족의 전통인 교육의 중시와 민유방본(民惟邦本, 세종실록3권)의 정신은 군사독재자들과 문민정부에게도 이어져서, 뛰어난 인재들을 배출하여 산업화와 민주화의 높은 성취를 이루어냈다. 

 국민도 나라도 허약하기 짝이 없던 ‘체제 선택의 시대’에 한국은 미국이 해방군이자 점령군으로 진주한 덕분에, 자유주의 정책의 영향 아래 자유민주주의를 신국가의 정치사상으로 받아들여 ‘자유화’의 체제를 만들었다. 

 그러나, ‘빈곤과 혼란의 자유’만 존재한다는 절망 속에 젊은 청년장교들의 혁명으로, ‘하면된다’는 정신을 드높여 ‘한국의 산업혁명’을 많은 부작용 속에서도 성공시켰다. 

 산업이 고도화되면 민주주의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박정희와 김재익수석의 예언처럼, 고통과 저항의 역사를 통해 세계적인 ‘민주화’국가가 되었다. 


                          민족주의자의 나라 


 친일파가 세운 나라라는 북한과 남한 추종세력의 선전선동이 심각하지만, 대한민국은 실체적 진실을 살펴보면 민족주의자들이 세운 나라임이 명백하다. 

 민족의 전통과 역사를 이어받은 항일 민족주의자들과 국내의 온건한 민족주의자들, 소련점령군의 폭정에 남으로 내려온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이 세운 ‘민족의 아성(牙城)’인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임시정부의 적통을 이은 주류세력과 국내 민족주의자들이 결집되어 있었다. 김일성의 회유를 물리치고 남으로 내려온 김구, 6.25전쟁에 참전한 김구의 아들 김신(공군참모총장), 임정 최고의 이론가 조소앙, 국회의장 신익희, 부통령 이시영, 비타협적 민족주의자 안재홍, 광복군사령관 지청전, 초대 국방부장관 이범석, 미군정 통위부장 유동열,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진보주의자 조봉암, 부통령 김성수.. 

 식민지조선에서는 일제와의 소극적 협력이 불가피하였슴으로, 민족교육과 민족언론, 사업체 경영에 있어서 온건한 민족주의자들은 굴욕을 견뎌가며 민족의 실력을 키우려고 노력했다. 강제 동원된 노동자들은 억울한 희생자이고, 강제 동원된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민족반역자가 되어야 하는가. 

 전쟁시기인 40년대에 실시된 ‘식량배급제’로 자가소비분이 부족하나마 인정된 농촌의 상황도 열악했지만, 특히 도시에서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등급별로 책정된 배급에서 일제당국에 의해 낮은 등급으로 강등되면 가족의 생사가 위태로워졌던 것이다. 

 반민특위에서 반민족행위자로 거론된 인물들과 <해방전후사의 인식>에서 추산한 숫자는 대략 천여명을 넘지 않는다. 이들은 초대 내각과 제헌의회 선거에서 피선거권이 박탈되어(미군정 법령 제175호) 대한민국의 주류에서 탈락하였다. 

  물론, 식민잔재는 남을 수 밖에 없었지만, 평화로운 선거를 통한 개혁정권에 의한 친일청산은 김일성과 공산제국주의의 전쟁도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실제로 50년 5월의 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정치적 유동성이 강한 무소속이 대거 당선되어, 국회 간선으로 선출하는 대통령은 교체될 가능성이 풍부했다. 


 북한의 서북(평안도.황해도.함경도)에서 남으로 내려온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은, 도산 안창호의 후예들로 해방 이후 백만명, 전쟁시기 수십만명의 인원이 남하하여 반공민족주의, 근대화 세력, 반독재 투쟁세력이 되어 대한민국의 소금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다.(김건우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참조) 

 광복군의 적통 장준하(사상계).김준엽(고려대 총장), 위대한 평민 류영모.함석헌, 민중신학 안병무, 홍익인간을 제안한 백낙준(연세대 총장), 국민교육헌장기초 박종홍, 반독재 투쟁 지학순주교, 덴마크형 농민자립운동 류달영, 한국신학대학교 김재준… 

 이렇게 살펴보면 ‘임정의 법통’을 뛰어넘어 ‘민족의 법통’을 이어받은 국가는 대한민국임이 명백한 역사적 사실로서 증명되었다고 믿는다. 

 북한은 민족을 저버리고 공산세력의 종주국 소련에 맹종하였으며, 김일성왕조의 권력보위에만 몰두하여 민생을 위한 소비재산업 보다 군사력을 위한 중화학공업을 우선하여 결국 국가경제가 몰락하였는데, 대한민국은 민생을 위한 소비재산업부터 발전시켜 점차 산업을 고도화함으로써 선진문명을 자랑하게 되었다. 

 민족 전통의 홍익인간, 민유방본(民惟邦本), 수미균평위 흥방보태평(首尾均平位 興邦保太平, 조소앙의 삼균주의로 전승)의 정신을 계승하여, 세계에 새로운 문명을 창출하기 시작한 대한민국의 원대한 미래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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