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의 대륙낭인, 일국의 왕비를 칼로 한번 글로 한번 두번 죽이다!>
‘정한론’의 선두에 섰던 큐슈의 언론인이자 을미사변에 참가해 히로시마감옥에 갇혔고, 이토 히로부미의 사주에 의하여 조선망국론을 선전하기위한 ‘대원군전’, ‘조선왕국’등을 지은 기쿠치 겐조. 대중소설가 정비석의 ‘민비’와 대중매체에서 3류 소설에 불과한 그의 책이 그대로 사용되어 역사왜곡과 왕비살해의 변명이 아직까지 한국인에게 널리 퍼져있으니, 슬프지 아니한가!
1. 기쿠치는 명성왕후에 앞서 왕자를 낳은 영보당 이씨가, 왕후의 음모에 의해 1875년경 급사했다고 적었으나 실제로는 1928년에 사망했다.
2. 임오군란에 대처하기위해 명성왕후가 청에 어윤중을 파견했다고 적었으나, 실제로는 2개월전에 이미 톈진에 가있었다.
3. 기쿠치는 명성왕후를 권력욕에 미친 악의 화신으로 묘사했으나, 왕후를 직접 만난 외국인들은 그녀의 고매한 인품을 칭찬했고, 을미사변의 주동자인 고바야카와도 회고록에서 ‘조선의 정치가 중 지략과 수완에 있어서 민비를 능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민비는 진실로 당대 최고의 인물이었던 것이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p.s 통치의 최종책임은 국왕에게 있을 수 밖에 없으며, 민씨 일족의 권력독점과 인재등용의 실패는 고종과 조력자인 왕후에게 책임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