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DDD
1991년 겨울
교내 동아리 고고반考古班은 생각할 고에 옛 고자를 써서, 옛 것을 생각한다. 우리의 옛 것을 잘 알고 익혀서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주된 활동으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답사를 간다. 답사를 가는 곳을 미리 선정하여 세미나를 하고, 1학년은 설거지하고, 2학년은 밥하고, 3학년은 주관하고, 4학년은 우리랑 함께하고. 전국 방방 곡곡 가고 싶은 곳을 배낭 여행하는 동아리이다. 봄과 가을은 짧게, 여름과 겨울은 방학을 이용하여 긴 호흡으로 여러 날을 답사에 할애할 수 있다.
1학년 여름은 강원도 강릉인지 동해에서 수영하고, 겨울엔 전남 무주로 갔다가 부산해운대로 넘어가서 남해 한려수도에서 배도 탔다. 대중교통편을 이용하였는데, 지방에서는 교통편이 우리 일정에 맞추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은 무주 구천동으로 들어가는데, 버스 시간을 기다리면 예약해 둔 숙소에 도착하기 너무 늦을 것 같아, 모두 걸어가기로 하였다. 국도인지 하여간 왕복 1차선으로 차들만 쌩쌩 달리는 도로에서 여학생들 예닐곱 명이 각자 배낭을 메고 일렬로 서서 쭈욱 걸어갔다. 일렬로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누구도 말을 하는 이는 없었다. 힘들다거나 무섭다고 불평하는 이는 없었고, 기계적으로 발을 옮겨가며 각자 깊숙한 침묵에 잠겨 이런저런 생각으로 지루한 줄 몰랐다. 다만 산속이라 그런지 해가 지고 나자 이른 시간에도 주위가 어둑어둑 해졌다. 날씨도 제법 싸늘했고, 불안해지기 시작하자, 누군가 히치 하이킹을 제안하였다. 난생처음으로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히치 하이킹!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 트럭 한 대가 무리 맨 앞에 서자, 뒤에 있던 일행들도 쪼르륵 열린 트럭 창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친절한 아저씨는 우리 모두를 안전하게 목적지인 숙소까지 태워 주셨다. 문제는 트럭인지라 운전자를 제외하곤 좌석이 둘밖에 없었다. 유일한 4학년 언니와 3학년 언니 두 분이 차 안에 타고, 나머지는 모두 트럭 바퀴를 딛고 뒤 짐칸에 올라탔다. 그나마 발 빠른 나는 운전자석이 있는 차체에 등을 기대고 뒤를 향하여 바닥에 앉았다. 완전, 꿈꾸던 여행이었다!
“우와, 우리가 이런 여행을 언제 또 해보냐?”
다들 더 이상 걸을 필요 없이 편안하게 숙소에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낭만까지 덤으로 곁들이는 들뜬 마음이었다. 그 설렘도 잠시, 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옆 사람의 말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바람소리가 엄청났다. 말을 하는 사람도 더 이상은 없었다. 다들 귀를 두 손으로 막고 있어서, 말을 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차가 제대로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해진 뒤 산속의 바람이 소리에 걸맞게 매섭게 얼굴을 때려대기 시작하였다. 따귀로 맞을 때의 손바닥면이 닿는 통증이 아니라 바람의 속도와 비례하는 꽂힘의 아픔이었다. 두 손은 이미 두 귀를 막고 있어서, 손이 모자랐다. 하는 수 없이 가지런히 세웠던 무릎을 벌리고 바람 앞에 고개를 숙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차가 서고, 비틀거리며 트럭 뒤에서 기어 내려왔다. 아저씨와는 어떻게 헤어졌는지는 감사의 말을 전했는지는 모르겠다.
숙소에서 몸을 녹이고, 차 안에서 아저씨와 얘기를 나눈 언니들 말로는, 히치 하이킹이라도 우리 중에 남학생 하나라도 있었다면, 안전상 아저씨도 우리를 차에 태워줄 엄두가 안 났을 거라고 하셨단다. 감사하긴 한데, 봉고차면 모를까 다음부턴 인원수를 고려하여 차종도 봐가며 히치 하이킹을 해야겠다. 아님 버스 시간표를 제대로 숙지하던가.
한겨울의 정점에 있던 무주에서 넘어온 부산은 ‘따뜻한 남쪽 바다’였고, 시내버스를 타고도 창너머로는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정거장을 지나치려고 하는 찰나, 한 아저씨가 차문 위를 주먹으로 탁탁 치며,
“마, 문 열라카이!” 하자, 이미 출발한 버스도 다시 서 버렸다.
거제도에 가서 배를 타고 한려수도를 보는 일은 즐겁지만, 뱃멀미가 복병인 줄은 몰랐다. 겨울이라 배에 탄 관광객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장성한 두 아들과 함께 온 4인 가족과 우리 일행들뿐이었다. 나랑 내 동기는 일가족보다는 뒤에 우리 일행에서는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흔들리는 배로 스멀스멀 뱃멀미가 올라왔지만 눈을 감으면 그나마 조금 나았다. 그래서 안경을 벗고 눈을 감고 앞 의자에 고개를 묻고 엎드려 있었다. 그 와중에도 유람선에 사회자가 있었던가? 관광객이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다 부르면, 다른 사람을 지명하며 노래를 시키는 것이었다. 압도적으로 여학생의 수가 많은 배에서 갑자기 그 장성한 대학생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안경을 안 써서 앞은 안 보이지만 보기는 해야겠고, 뱃멀미로 꼿꼿이 앉아 있기는 불안하고, 할 수 없이 앞 좌석 등받이 위에 팔꿈치를 걸치고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힘겹게 노래를 끝까지 들었다. 노래가 끝났으니, 다시 눈 감고 고개를 숙이려는 데, 방금 노래를 마친 남학생이 다음 노래할 사람으로,
“제가 노래하는 동안 시종일관 뚫어져라 쳐다보신 하얀 파카 입은 저 여학생을 지명하겠습니다.” 하며 마이크를 들고 서 있었다.
‘아, 이런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은 하면서도, 나는 이미 남학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마이크를 받고도 선곡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았다.
“그대와 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어 있기에
전화 다이얼에 맞춰
남몰래 눈물을 전하네
속삭이듯 다정한 소리
:
:
DDD, DDD, 혼자선 너무나 외로워~~!!”
그 날밤, 숙소에서 일행이 모두 모였을 때, 4학년 언니가 내가 유람선에서 뱃멀미한답시고 배 타는 내내 고개 숙이고 있다가, 남학생이 노래한다고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노래를 시킨다고 쏜살같이 달려 나가 김혜리의 ‘디디디’를 부르더라며 웃었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