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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파파 Sep 17. 2023

아빠의 온전한 공간

아빠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저렇게 많은 아파트 중에 왜 우리의 집은 없을까?


어떤 부동산 관련 저널에서 보았던 칼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생을 화장실 개수를 늘리기 위해 사는 것 같다.’


한국인들에게 있어 내 집을 소유한다는 것이 삶 전체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과업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내 집, 내 공간이 중요한 것이다.


결혼을 결정하고 양가에서 최소한의 도움만을 받고 신혼을 시작한 우리 부부에게 첫 신혼집은 전세 1억의 17평 방 2개짜리 빌라였다. 주방 겸 거실, 옷방 겸 창고, 그리고 침실로 구성된 집으로 하나의 방이 여러 용도로 쓰여야만 하는 집이었다. 그래도 우리 두 사람이 살기에 큰 불편함은 없었고 그곳에서 첫째를 임신하게 되었으니 우리 부부에게는 지금도 추억이 어린 공간으로 기억된다. 첫째가 태어나며 좀 더 큰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지만 지금도 그 집과 공간에 대한 기억은 따뜻하기만 하다. 


시대의 흐름과는 달리 우리 부부는 집을 소유하는 것에 그리 큰 욕심은 없었다. 집이 가진 순기능대로 거주만 해결되면 된다는 주의였고, 그래서 매매보다는 전세 쪽에 무게를 두고 살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태어나며 여러 가지를 고민해야 했고 결국 결혼 6년 만에 내 집이라는 것을 마련하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축하의 인사를 건넸지만, 말이 좋아 내 집이지 화장실 한 칸을 제외하고는 거의 은행 소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렇게 내 집이 생기면서 공간에 대한 여러 고민을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집에서 TV는 치우고 거실에 책장을 두어 거실 중심의 생활을 하자.
2. 두 아이는 분리 수면 없이 가족들이 한 방에서 함께 자자.


크게 두 가지를 결정하고 나머지는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조금씩 바꿔가기로 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나는 내 공간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퇴근 후에 식탁에 앉아 사진 작업을 위해 노트북을 펴고 거실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덩그러니 비어있는 한쪽 구석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저 구석에 나를 위한 조그만 책상 하나와 컴퓨터 그리고 조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사진과 글쓰기가 취미인 나에게 그동안의 작업 공간은 늘 식탁 위였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었더니 우려와 달리 흔쾌히 허락해 주었고 거창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처음으로 내 구역이 생겼다.


많은 육아 부모들이 그렇겠지만 내 공간이 있다손 하더라도 그곳에서 온전하게 내 시간을 갖기란 매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흔히 말하는 육퇴 후에야 비로소 그 공간이 자기 쓰임을 다하게 되는데, 내 경우 온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다 집에 오면 아이들과 잠깐 놀아주고 재우다가 같이 잠들기가 일쑤이다. 정말 컨디션이 좋은 날이라야 겨우 다시 일어나 잠깐 내 구역에서 휴식을 갖게 된다.


방이라고 할 수도 없는 거실 구석 자투리 공간에 덩그러니 있는 책상과 컴퓨터지만 어떤 날은 그곳에 앉아 멍하니 있노라면 조선 시대 가사인 관동별곡(關東別曲)의 한 구절이 절로 생각난다. 


이태백이 살아 있어 다시 의논하게 되면

여산이 여기보다

낫단 말 못 하려니

     - 정철, 「관동별곡 中」 


그 순간만큼은 정철의 말처럼 신선이 산다는 아름다운 여산(廬山)이 부럽지가 않다. 


아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앞으로도 이 구역만큼은 양보하기 어려울 것 같다. 가끔 온전하게 고요함을 즐길 수 있는 이 시간이 나에게는 마치 삶을 버티게 하는 버팀목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이 커가면서 변화가 필요한 순간들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할 수만 있다면 이 공간을 지키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아빠도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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