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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파파 Sep 17. 2023

아내의 이름

누구의 배우자가 아닌  나로 사는 삶

신혼 초 아내와 서로에 대한 호칭 문제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내는 ‘여보, 당신, 자기’와 같은 호칭으로 불러주길 바랐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결혼 전부터 이름을 부르는 것에 대한 나름의 주관이 있어 아내에게 나의 생각을 전했고 그 뒤로 아내와 호칭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별말 없이 지내고 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의 이름에 자녀의 삶에 대한 기대와 축복을 가득 담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많은 여성은 결혼 뒤 아이를 낳으면서 이런 축복 대신 ‘ㅇㅇ엄마’로 불리게 된다.


나는 적어도 내 아내가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등으로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2021. 6. 20. 온통 아이들 뿐인 사진첩에서 아내의 독사진을 찾기가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고유미’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 한 여자로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아내의 이름을 부른다. 


물론 나 역시 ‘결혼 전의 나’, ‘결혼 후의 나’, ‘두 아이의 아빠인 나’로 삶의 역할이 변화되었지만, 변화에 따라 주어지는 책임과 역할이 다를 뿐 여전히 나로 살아가고 있고 이남지로 살아갈 예정이다. 


한 곳에 뿌리내린 나무를 옮겨 심으려면 그 나무가 옮겨진 곳에 다시 적응하기까지는 무려 네 배의 힘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니 짧게는 20년 길게는 30년 이상을 나로 뿌리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서로 만나 또 다른 삶을 시작하는 데는 네 배가 아니라 몇십 배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당연히 이전의 삶을 돌이켜 생각할 수밖에 없다.


2021. 8. 30 부모가 자신으로 온전히 살기는 어렵다. 아이에게는 늘 뜨거운 해를 가려줄 어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따금 미혼 동료들이 던지는 ‘결혼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는 농담조의 질문에 “지금이 좋다”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물론 여러 책임으로부터의 받게 되는 스트레스와 경제적 자유만 놓고 보자면 혼자였던 삶이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정을 이루고 아빠가 되어 느끼는 행복을 놓고 둘을 비교하자면 감히 비교 불가이다. 어쩌면 우리가 결혼과 동시에 느끼는 불편함과 후회는 비교 불가의 두 대상을 두고 억지로 비교하고 균형을 맞추려 하기 때문은 아닐지 모르겠다.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을까?


아니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을까?


아니다. 그때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결국, 나다.


그때의 나도 그때의 삶에 충실했고 지금의 나도 주어진 삶에 매우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지금의 내가 앞으로의 나와 가족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과거에 나에 대한 미련도 지금에 나에 대한 불만도 없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


남편이자 아빠이자 한 가정을 책임지는 나를 온전하게 사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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