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가족들이 나에게 남편이 변했다고 말했다. 무뚝뚝하던 사람이 자상해졌고, 요리를 못하던 사람이 요리사가 다 되었으며 청소도 안 하던 사람이 깔끔해지기 시작했다며 도대체 어떻게 남편을 변화시켰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얼렁뚱땅 아무 말이나 흥얼거렸지만 나중에 혼자 진지하게 내가 어떻게 남편을 변화시켰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아마도 글쓰기 연습을 매일 하고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말발이 좋아 남편을 잘 설득했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조용한 사람이지만 가까운 사람에게는 언변이 좋다. 설득하는 것도 잘하고 내 주장을 어필하는 것도 잘한다. 그리고 가끔 남편에게 거창한 말들을 늘어놓을 때면 나의 말에 남편의 눈동자가 반짝이며 감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날, 직장 동료의 길고 긴 불만을 진지하고 조용하게 경청하고 있는 남편을 보며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말에 남편이 설득당해 그가 변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는 원래부터 듣는 귀와 행동하는 힘이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나의 언변 때문에 좋게 변화한 것이 아니라 남의 말을 귀담아들을 줄도 알고 남을 위해 변화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나'라는 자아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나만 노력하고 나만 고생하고 세상은 나만 괴롭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라는 자아를 잠시 지워 버리고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은 '덕분에' 일어난다.
'오늘'이라는 하루는 큰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날보다 그저 평범하게 지나갈 때가 더 많다. 나를 지탱해 주는 중력과 적당한 온도, 나를 위해 수고해주는 많은 사람들과 많은 시설들, 햇살과 나무와 작은 새들. 나는 무엇하나 수고하지 않고도 이러한 도움을 매일 받고 있다. 내가 살아 있는 것도, 내가 숨 쉬는 것도, 내가 먹고 쉬고 자는 것도, 남편이 좋게 변화한 것도 다 이 '덕분'들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산후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었을 때, 나는 잠시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보며 내가 돈을 많이 벌면 남편이 좋아하는 비디오 게임을 더 즐겁게 할 수 있도록 그를 위한 '게임 룸'을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방을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가 조금도 우울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을 위해 진심으로 무언가를 해 주겠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더 이상 우울할 수 없었다. 그 속에 우울과 동일시되어 있는 '나'가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자주 우울하고 화가 많은 나는 살면서 별로 남을 위해 무엇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남을 위해 울어본 적도 없었다. 나는 언제나 '나'밖에는 몰랐다.
힘들 때는 잠시 '나'를 잊어보자. 내가 없다면 힘들다고 판단하는 나도 없다. 그리고 '덕분'이 되어보자. 나를 잊고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해보자. 작은 베풂이나 말 한마디라도 괜찮다. 그리고 생각보다 잠시 '덕분'이 되어보는 경험은 꽤 효과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