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다 가진 부유한 남자가 있었다. 그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바로 머리에 있는 작은 혹이었다. 명망 높은 정치가였던 그는 혹을 절대 남에게 보일 수 없어 머리카락으로 잘 가리고 다녔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머리카락이 벗겨지며 혹은 모습을 드러냈다. 설상가상으로 혹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남자는 집에 틀어박혀 깊은 우울감에 빠졌다. 그 누구에게도 혹을 보여 준 적 없는 그는 항상 모자를 쓰고 다녔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다. 혹을 사람들이 보는 순간 그의 명성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이 그를 괴롭게 했고 그럴수록 혹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리고 어느 날 거울을 보니 혹은 자신의 머리보다 더 커져있었다. 바깥으로 나가기 두려워 병원조차 갈 수 없었던 그는 혹을 스스로 때기 위해 돌멩이로 자신의 머리를 치다가 크게 다쳐 앓아누워버렸고 그렇게 혼자 죽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남자의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그 누구도 남자의 머리에서 혹을 발견할 수 없었다.
누구나 각자의 혹을 가지고 산다. 나에게는 화장을 안 한 민낯이 그 혹이었다. 중학교 때 여드름이 났던 나를 엄마는 친구가 하는 병원에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레이저 수술을 받았는데 정말 피부가 찢어질 것처럼 아팠고 그때 이후로 나는 홍조와 피부 건조증에 시달리며 화장을 하지 않고는 밖에 나갈 수 없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나는 피부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었다. 화장 안 한 붉은 얼굴을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게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피부 때문에 목욕탕에 갈 수 없었고, 피부 때문에 친구 집에 놀러 가서 화장한 채로 자야 했고, 피부 때문에 남자를 만날 수 없었다. 피부 때문에, 피부 때문에. 나의 인생은 피부 때문에 망가져 버린 것 같았다.
남편과는 원거리 연애를 했다. 남편은 미국의 시카고에 있었고 나는 한국에 있었다. 나는 그래서 남편이 좋았다. 민낯을 보여 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아무 때나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항상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고 정해진 시간이 아니면 영상 통화를 하지 않는 나를 남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주 보고 싶다며 전화를 걸었고 나는 이제 헤어질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헤어질 결심을 하고 남편에게 화를 냈다. 별거 아닌 거에 짜증을 내고 성질을 부렸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나의 화에도 짜증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아 나를 놀라게 했다. 태어나서 화를 화로 받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자상하게 너를 잃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처음으로 어쩌면 이 사람이라면 화장 안 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영상 통화를 하기 위해 민낯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눈물을 머금고 거울을 봤다. 피부는 언제나처럼 붉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반갑게 전화를 받았고 전화가 끝나도록 내가 화장을 안 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명상을 통해 나의 내면을 깊이 바라보며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내가 지금까지 너무도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언제나 예뻐지고 싶었고 화려하고 싶었고 특별하고 싶었다. 사랑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리고 언제나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에 온 마음을 집중하고 살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갖고 있던 혹이었다. 나의 혹은 피부가 아니라 언제나 갖지 않은 것만을 갖고 싶어 하는 결핍된 마음이었다.
진정한 풍요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갖게 되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알 때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혹을 보고 또 보고 감추기 위해 애를 쓰며 나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혹 속에서 조차 감사함을 찾을 수 있을 때 마음에는 충만한 평화가 온다.
미국의 영성가 바이런 케이티는 언제나 오직 한 가지만을 기도한다고 한다.
신이시여 사랑받고 싶은 욕망, 인정받고 싶은 욕망, 존중받고 싶은 욕망에서 저를 자유롭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