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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안투네즈 Oct 09. 2022

하얀 불빛, 빨간 불빛.

Pierre Mornet




이 글은 2022년 새해 첫날 쓴 글입니다.




내가 사는 시카고는 아침부터 하얀 눈송이가 펑펑 떨어졌다. 새해 첫날부터 눈을 뜨자마자 하얀 불빛이 비치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참 큰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올해는 이 하얀 세상처럼 내 마음도 하얗고 밝고 맑아지길 기도했다.


난 참 간절한 인생을 살았다. 간절하게 변화하길 기도했고 간절하게 신과 함께 하길 바랐고 간절하게 작가가 되고 싶었고 간절하게 내 삶이 나아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다만 간절하게 현실을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 날 간절하게 신께 기도를 가장한 독선적인 요구를 했다. 제발 나 좀 도와달라고 말하며 내일, 일 년, 십 년 뒤의 기적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 지금 당장 도와달라고 말했다. 나는 도움이 필요하고 혼란스럽고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며 지금 당장 구급차라도 보내달라고 울면서 화를 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창밖에서 구급차의 빨간 불빛이 보였다. 때마침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남편이 누군가 거짓 신고를 해서 앞집에 구급차와 경찰차가 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오직 나만이 그 거짓 신고가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창밖의 빨간 불빛을 보며 마치 신이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제 그만 현실로 돌아올 수는 없겠니.




나는 작년에만 두 번 구급차를 타야 했다. 한 번은 출산 후유증으로 계속 나를 괴롭혔던 고혈압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원인 모를 다리 통증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아팠던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나는 마음의 병으로 꽤나 힘든 시간을 보냈고 또 그만큼 나아지기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고 명상하고 책을 읽으며 신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의 병은 모두 내가 현실에 있지 않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내 안에 이미 가지고 있었고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바깥에서만 그리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서만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삶은 계속 그런 나를 현실로 데려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것이 나에게 고통이 찾아온 이유였다.


예전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미 갖고 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작가가 되지 못할 것 같은데 어떻게 내가 원하는 것을 갖고 있다는 말이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바로 나는 작가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이 내가 태어난 목적도 아니었고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도 아니었다. 나는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목적 없이 내리는 눈송이가 정확한 곳에 떨어지듯 말이다.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환상을 믿으며 나는 많은 날들을 고통받았다. 매일 작가가 이미 되어있는 나를 상상하고 긍정 확언을 하고 '나는 작가이다'를 공책에 적어가며 수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루었다는 방법을 모두 시도했다. 하지만 현실은 집에서 애를 보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는 주부일 뿐이었고 꿈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나의 마음은 황폐해져 갔으며 글을 쓰는 건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갔다.


이제는 지금 글을 쓰고 싶으면 쓰고, 쓰기 싫으면 쓰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전부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순간 작가는 아니지만 자유롭다. 나는 그냥 현실을 산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현실을 사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을 살기로 선택했을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지금 이 순간'이라는 가장 소망하던 꿈속에서 산다. 당신이 삶에서 가장 원하던 행복과 명료함과 풍요로움이라는 하얀 눈송이 같은 빛들이 당신의 삶 속에 지금 이 순간 내려앉고 있다. 그리고 당신은 눈만 뜨면 그 하얀 세상을 볼 수 있다.


현존이라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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