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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안투네즈 Oct 12. 2022

우울할 결심.

Kimio Muraoka




 '나 너무 우울해. 사는 게 힘들어.'라고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는 '괜찮아질 거야.'라고 썼다가 지우고, '네 마음 이해해.'라고 썼다가 지웠다. 그리고 '잘 버텨.'라고 보냈다.


나도 산후 우울증을 겪어서 우울이라는 감정을 자주 대면했다. 우울은 노력한다고 쉽게 괜찮아지지 않았고 모습이 다양해 나의 우울이 상대의 우울과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버티라고 말했다. 우울이 마음 한가운데로 떨어져 잠식해 버리게 두지 말고 잘 받치고 버티고 있으라고 말했다.




나는 우울할 때 명상을 한다. 눈을 감고 마음속에서 내가 어두운 큰 돌덩이 하나를 받치고 있는 것을 그린다. 그리고 돌이 조금씩 작아지고 있다고 나 자신에게 말해준다. 그리고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 언제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당신이 무거운 돌을 짊어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돌은 누가 짊어지고 있는 것일까? 바로 당신이다. 어떻게 하면 무겁지 않을까? 돌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돌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하면 우리는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언제나 '어떻게'를 찾아 헤맸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를 찾아 세상을 떠돌고 종교를 믿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책 속의 많은 영성가들이 공통적으로 고요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을 발견한 나는 이제는 고요를 찾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명상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명상을 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딴생각하지 않고 명상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이번에는 고요를 바깥에서 찾기 시작했다.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고요를 몰라 고요를 찾다니. 행복을 몰라 행복을 찾고 원하는 것을 몰라 원하는 것을 찾고 돌을 내려놓는 법을 몰라 무거운 돌을 언제나 짊어지고 살고 있다니.




얼마 전 마법 같은 일을 경험했다. 그날은 몸과 마음이 너무 우울해 계속 누워있거나 앉아만 있었고 머릿속으로 어떻게 하면 우울을  없앨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릎에 앉아있던 아이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고 그 순간 나는 번쩍하고 정신이 들었다. 더 이상 우울하지도 무기력하지도 않았다. 나는 바로 몸을 일으켜 며칠 동안 게지 않고 쌓아 놓은 옷들을 접어 옷장 안에 넣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것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공들이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돈이며 애인이며 각종 조건이 모두 갖추어져야만 행복에 도달할  있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울이, 슬픔이, 괴로움이  그렇게 벗어나야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라는 메시지로 잠시 감정들이 찾아왔을 수도 있다. 어쩌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심각함이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로 유명한 미국의 수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존 내쉬는 죽을 때까지 조현병과 망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노벨상을 받았다. 우리는 우울하다고 삶을 불행하게 살 필요는 없다. 우울함 함께하는 법을 배우면 된다. 잠시 돌을 집어도 보고 내려도 보는 법을 배우면 된다. 누구나 돌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이 돌도 집어보고 저 돌도 집어 본다. 누군가는 오래 그리고 누군가는 아주 잠시 돌을 갖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우울할 결심을 한다. 우울과 헤어질 결심을 하지 않는다. 우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며 괴로워하며 살지 않는다. 우울을 환영하고 반긴다. 잠시 들고 있는 돌일 뿐이라고 때가 되면 내려놓고 또 때가 되면 다시 잠시 받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크고 때로는 작은 돌을 바라보며 내가 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돌을 짊어지고 괴로워하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찾아 고요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주가 얼마나 커?

무한해.

그걸 어떻게 알아?

자료들이 보여주지.

아직 입증도 안됐잖아. 본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확신해?

모르지만 그냥 믿을 뿐이야. 사랑도 똑같아.




우리는 혹시 보이지도 않는 돌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감정이라는 환영에 사로잡혀 존재하지도 않는 돌을 짊어지고 무겁다고 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만약 모든 것이 믿음의 문제라면, 우울도 사랑이라고 믿으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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