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 남태평양의 외딴 투발루에 도착한 투발루인 조상들은 투발루가 어떤 매력이 있어서 이곳에 정착했을까? 단순히 남태평양의 푸른 바다가 이뻐서 이곳에 정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뭔가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것들이 쉽게 구할 수 있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어족 자원이 풍부해서 일 것이다. 푸나푸티 섬의 바깥쪽의 대양은 파도가 거칠게 치는 남태평양의 거친 바다이지만, 안쪽의 산호초 지대는 잔잔한 파도와 풍부한 산호초와 이에 의지해서 사는 물고기 덕분에 안전하면서도 안정적으로 물고기를 잡았을 것이다.
투발루의 물고기 우표
투발루를 이루는 6개의 환초는 죽은 산호초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코코넛 나무나 판다누스 나무로부터 기인한 유기물이 쌓이고 쌓여 토양을 이루었다. 그래서 표토가 깊지 않고, 심토는 석회질을 띄는 것이다. 그리고 비도 많이 오는 열대우림기후라 토양 성분도 쉽게 휩쓸려 나가고, 잦은 바닷물의 범람으로 염분에 강한 식물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여러모로 농사가 어려운 조건이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서 투발루인 조상들은 살기 위해 일명 습지 토란인 풀라카(pulaka) 경작을 시작했다. 풀라카를 경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하수가 닿는 곳까지 깊이 구덩이를 파야한다. 구덩이의 길이는 10m 정도 되고, 넓이는 5~10m 정도 되야한다. 그리고 지하수층까지 지표면 10m까지 구덩이를 파기도 한다고 한다. 이 구덩이에 흙과 유기물 거름을 바닥에 여러 겹 쌓는다. 유기물 거름으로는 주로 녹색 나뭇잎이나 썩은 코코넛 줄기와 잎을 넣는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이 유기물 거름은 풀라카를 재배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된다고 한다. 투발루인의 선조들은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도 풀라카를 통해 탄수화물을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풀라카 (출처 : https://manoa.hawaii.edu)
대표적인 요리는 페케이(Fekei)이다. 페케이는 풀라카를 코코넛 크림과 섞어서 풀라카 잎 안에 쪄서 만든 요리로 투발루인이 즐기는 전통음식이다. 음료로는 오디(Oddy)를 먹는다. 오디는 코코넛 나무의 수액으로 음료부터, 간식, 그리도 다양한 요리에 향료로 쓰이기도 한다. 오디의 맛은 달콤해서 그 자체로 음료로 마시거나, 풀라카의 쓴맛을 잡기 위해 풀라카가 들어간 음료에 넣는다고 한다. 그리고 두드린 풀라카 과육 위에 코코넛 크림을 부어 만드는 음식인 툴롤로(Tulolo)라던지, 코코넛 밀크에 풀라카 잎을 넣어 끓인 국인 로우로우(Rourou)와 같은 음식이 투발루의 전통음식이다.
Fekei 요리법
행복한 우정의 정원
애석하게도 풀라카를 제외한 대부분 농산물은 재배가 잘되지 않는다. 그럴만한 땅도 없고, 내리쬐는 적도의 태양 아래에서 많은 식물이 타서 죽는다. 말라서 죽는 것보단 타서 죽는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거다. 그래서 대부분 신선식품은 인근의 피지에서 수입한다. 숙소에서 북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큰 슈퍼 Jimmy Store가 있다.
Jimmy Store에서 파는 한국라면
여기에는 감자, 당근, 양배추와 같은 채소, 오렌지, 사과와 같은 ‘수입산’ 과일을 살 수 있다. 그마저도 피지에서 수입한 물건이 들어오는 날에나 살 수 있고, 다 떨어지면 다음에 물건이 들어올 때까지 구할 수도 없다. 특히나 팔리지 않은 신선식품은 물러진 상태로도 계속 팔리고 있다. 우리나라면 당장 마트 직원에게 “이게 뭐냐고”할 테지만, 투발루에서는 이것밖에 대안이 없다.
어느 날 Jimmy Store에 방문했다. 이날은 ‘수입산’ 물건이 들어왔는지 출입구 근처에 계란이 수북이 쌓여있었고 냉장고도 신선식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물가를 조사했다. 당근은 1kg에 4.5호주달러(4,500원), 감자는 1kg에 4호주달러(4,000원)이었고, 오렌지와 사과는 둘 다 1kg에 7.5호주달러(7,500원)였다. 연간 1인당 GDP가 6,113달러(약 800만 원) 상황에서 매일 식재료를 사는 것은 경제적으로 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
Jimmy Store에서 파는 신선식품
이러한 상황을 지원하고자, 투발루 정부와 수교한 대만 정부는 2021년부터 대만 국제협력개발기금(ICFD, International Cooperation and Development Fund)을 통해 투발루에 농장을 짓고, 투발루인을 고용해 농사를 지은 후 수확한 농산물을 투발루 주민들에게 염가로 공급하고 있다.
대만에서 지원하는 농장의 이름이 행복한 우정의 정원(Happy Friendship Garden)이다. 행복한 우정의 정원은 투발루의 푸나푸티 환초에 2곳, 바이투푸에 1곳이 있다. 푸나푸티 환초에 있는 활주로 동쪽 건너편으로 정부 청사를 기준으로 남서쪽으로 15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행복한 우정의 정원
농장관리자는 대만인인데, 일요일에 페일파투 섬에 스노클링을 갔던 ‘글로벌 스노클링팀’의 일행인 대만인 앤디가 바이투푸에 있는 농장의 농장관리자이다. 그리고 어느 날 점심시간에 식당에 들어갔는데 앤디와 다른 친구가 점심을 같이 먹고 있었다. 나도 인사하고 합석해서 점심을 같이 먹었는데, 이날 새로 알게 된 친구가 푸나푸티에 있는 농장의 농장관리자 프레드(Fred)이다.
농사의 시작은 비료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비료는 돼지분뇨와 코코넛 껍질을 섞여 발효하여 현지에서 직접 만든다. 푸나푸티 농장주인 프레드에게 돼지분뇨와 코코넛 껍질의 섞는 비율과 발효시키는 기간을 물어봤는데, 그건 비밀이라며 알려주지를 않았다.
발효된 비료를 1년에 한 번씩 대만에서 화물로 운송해 온 흙과 섞어 농작물 심을 토양을 마련한다. 농장에는 무, 양배추, 오이, 오크라(okra), 콩, 토마토, 피망, 호박 등을 재배한다. 농장 벽에 붙은 설명자료에는 없는 농작물이지만, 농장을 돌아보면서 파, 고추, 옥수수도 볼 수 있었다.
농장에서는 농작물을 위해 두 가지 조치를 한다. 첫 번째는 우리의 인삼밭과 같이 태양 빛의 일부를 차단하기 위해 햇빛 차단 지붕을 설치하는 것이다. 항공 지도를 보면 활주로 남쪽의 1/3 정도 되는 지점의 오른편에 녹색으로 된 인공구조물이 보인다. 거기가 농장이고, 녹색은 햇빛 차단막이다. 두 번째는 수정을 시켜줘야 한다. 투발루에는 나비만 있고, 벌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농작물을 인위적으로 사람이 수정을 시켜줘야 한다고 한다.
정성스레 수확한 작물은 투발루 주민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장터가 열린다. 전날 딴 신선한 채소를 투발루 주민들은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채소의 가격은 kg당 2.5호주달러(2,500원)으로 마트의 반 정도 가격이라고 한다. 그리고 투발루 현지의 농장에서 바로 수확한 채소를 파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 온 채소보다는 신선도가 좋을 수밖에 없다.
내가 들렸던 화요일에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이날은 오이와 호박을 주로 팔고 있었다. 투발루 주민들이 익숙한 듯 오토바이를 문 앞에 주차하고 성큼성큼 들어온다. 어느 나라의 주부가 그러하듯이 노란 상자에 담긴 오이와 호박을 들쳐 보면서 상처는 없는지, 잘 익었는지를 알아본다. 가족을 먹을 것이기에 이왕이면 품질이 좋은 것을 고르는 것일 터이다.
투발루에서 먹는 중국요리
매일 아침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간편 식빵으로 때우고, 저녁은 호텔에서 해결했다. 그래도 투발루에 있는 동안에는 점심은 투발루에서 있는 현지 식당을 갔다. 그래봤자 투발루에 도착하는 날을 포함하여, 출발하는 날을 제외하고 여섯 번밖에 없었다.
푸나푸티 호텔의 조식
내가 투발루에 도착한 첫날에 가서 투발루에서의 인연을 시작한 Sue’s Kitchen은 투발루에서 나름 서양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중국인 혹은 대만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3개나 있다. 낭스(Nang’s), 블루오션 레스토랑(Blue Ocean Restaurant), 할라바이 레스토랑(Halavai Restaurant)이 있다. 한국인은 교민은 한명도 살지 않는 외딴섬에 중국인 혹은 대만인은 식당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블루오션 레스토랑
식당의 메뉴는 간단하다. 주요 식재료는 돼지, 소, 닭, 생선을 주재료로 하여, 간장 베이스로 식재료를 길게 잘라 볶은 Chopsuey, 카레, 튀김이 세 식당의 공통적인 메뉴이다. 모든 식당에서 밥의 양은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한국에서 내가 밥을 먹는 양이 적은 것은 아닌데, 매번 점심 식사마다 밥을 남겼다. 그리고 나에게는 전반적으로 요리가 좀 ‘많이’ 짰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열대우림기후에서 살면서 땀을 많이 흘릴 수밖에 없는 투발루인들을 위해 그런 듯했다.
낭스는 특이하게 간판에 붉은 바탕에 노란색 굵은 글씨로 ‘패스트푸드’라고 써놨다. 그런 만큼 정말 빨리 요리가 나오기는 한다. 낭스에서는 치킨볶음면(fried chicken noodle)을 시켰는데, 거짓말이 아니고 내 얼굴보다 큰 접시에 간장 베이스로 요리한 볶은 면이 한가득 담겨 나왔다. 열심히 먹는다고 먹었는데도 반쯤은 남기고 나왔다. 투발루인들이 식사를 정말로 많이 하는구나 느끼게 된 계기였기도 하고, 투발루인들의 비만율이 높은 이유도 짐작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