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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우 Sep 01. 2022

자낙스, 오, 자낙스

공황장애와 함께하는 삶 

공황장애와 함께하는 삶

우울과의 동거는 결코 달갑지 않았지만, 원했던 것보다 긴 시간을 함께 하는 바람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우울과 함께 삶을 꾸려나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10년이 넘게 비슷한 주기를 반복하다 보니 좋아지지는 않았어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는 했다. 상담을 꾸준히 받는 노력, 우울을 이해하려는 노력, 나 자신을 파헤쳐 함께 이해하려는 노력, 전문가가 추천하는 소소한 생활개선을 위한 노력, 그러는 와중에 좋은 엄마 역할을 하기 위한 노력, 회사에서 인정받으려는 노력. 나는 노력하며 살았고 삶이 고달프다고 느꼈다. 그렇게 노력하던 삶이 점점 나아지는 삶이 아니라 그저 우울을 끌어안고 버티는 삶이었다는 것은 훨씬 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인식할 수 있었다. 


공황발작이 시작되었을 무렵에는 단지 우울이 기승을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불편했지만 대부분 명확한 스트레스 요인이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졌기 때문에 초반에는 그럴 수도 있다며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자주, 더 심하게 발작이 지속되었고 그제야 이건 성격이 조금 다르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내 몸이 더 이상은 못해먹겠다는 듯이 나에게 파업 깃발을 걸어 들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속수무책으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날카로운 과도를 가지고 내 심장 안쪽에서부터 영혼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한번 공황이 시작되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공포와 고통에 휩싸여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할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을 버티는 동안 빈도수가 잦아졌고 강도가 높아졌다. 직장인으로서 엄마로서의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진 다음에서야 겨우 병원에 다시 발을 들였다. 싱가포르 정신과 전문의와의 대화는 담백하고 간결했고, 익숙했다. 네, 제대로 짐작하고 오셨네요, 공황장애 맞아요. 일단 약부터 드시죠.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약 먹고 운전을 하거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해야 하는 활동은 하지 마세요. 일단 3주 먹고 다시 와서 얘기해봅시다. 


매일 두 알씩 먹는 알약과 하루 중 언제라도 공황발작이 찾아오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알약 두 가지를 처방받았다. 나는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고 하신 그 알약, 하루에 몇 개까지 먹어도 되나요" 하고 물었다. 우울했던 그 시기의 기억들은 대부분 흐릿한데 우습게도 내가 그 질문을 던진 순간 의사가 멈칫하고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 몇 초의 순간은 내 기억에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뭐지 이 여자, 대체 하루에 몇 알이나 먹으려고 저런 걸 물어보는 거야, 하는 눈빛,이었다고 그 순간의 나는 생각했는데 그가 실제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제 와서 알 길은 없다. 하루에 네 알까지 괜찮다는 확답을 받고서 병원을 나와 제일 먼저 보이는 맥주집에 들어가 일본 생맥주를 한 잔 시켜 그 자리에서 자낙스 한 알과 함께 벌컥벌컥 들이켰다. 





나의 몸은 솔직하고 단순하다. 내 몸에 나타나는 현상들은 대부분 인과관계가 분명하고 드러나는 증상도 명확하다. 스트레스와 호르몬과 약에 항상 빠르고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안팎의 자극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몸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불편하고 곤란한 일이다. 신체적으로 드러나는 증상들이 있었기 때문에 알약을 삼키는 법을 남들보다 일찍  어린 나이에 배워야 했다. 덕분에 알약을 삼키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싫은 일에 포함되었고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는 가능하면 알약을 삼키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다 됐고, 그 순간에는 자낙스가 그렇게 나의 구원이 되었다. 살점이 에이는 것 같은 고통보다는 차라리 온몸이 흐물흐물 무너져내리는 부작용이 나았다. 조금이라도 무뎌질 수 있다면 자낙스가 아니라 뭐라도 좋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다양한 시도 끝에 우울증 약이 없이도 버틸 수 있다는 확신이 든 무렵에 매일 먹으라고 잔뜩 받아온 렉사프로 알약들을 한꺼번에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와중에도 발작이 왔을 때 언제든 하루에 네 알까지 먹으라고 한 자낙스는 혹시 몰라 남겨두었다. 그로부터 좀 더 시간이 지나 이혼을 결정한 다음 이삿짐을 챙기면서 나는 모든 곳에서 자낙스를 발견했다. 책상 구석의 잡동사니 바구니에서도, 욕실 선반 위에서도, 출퇴근용 노트북 가방의 주머니 안에서도, 즐겨 입던 청바지 주머니 속의 작은 주머니마다 자낙스가 나왔다. 


나는 불안해서 아팠고, 아플까 봐 불안했다. 


실제로는 자낙스도 그 이후로는 다시 복용하지 않았다. 혹시나 견딜 수 없게 아픈 순간이 돌아오면 바로 삼킬 수 있도록 한 알씩 잘라 쉽게 손이 닿는 곳에 두었던 것뿐이다. 공황장애는 검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소용돌이 같았고, 그 흐름을 끊고 올라오는 것은 어려웠다. 내 소지품 구석구석에서 찾아낸 자낙스를 한 움큼 손바닥에 쥐고 한참 바라보았다. 나는 이렇게나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했구나. 먹고 싶지 않은 알약들이라도 붙잡아야 했을 만큼 절박했구나. 


우울과 공황의 계단을 걸어 나오는 한걸음 한걸음은 나에게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마주하는 과정이 되었다. 한참이 지난 지금도 나는 항우울제를 한 손 가득 모아든 그 먹먹한 기분을 언제든지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다. 요즘 들어서야 그런 순간들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두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예를 들면 한밤중에 구원을 바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일어나 어찌할 수 없게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 그걸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지금의 새하얀 침대에서 푹 자고 맑은 마음으로 일어나는 아침을 허투루 넘기지 않게 되었다. 아, 사실 나의 제로 그래비티 침대는 너무 훌륭해서 그 위에서는 나락으로 떨어질 겨를이 없기도 하지만. 





이제는 자낙스가 없이도 나를 구원할 수 있게 되었다. 스트레스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의 몸에 숨은 능력들도 발견했다. 길을 걷다가 새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추거나, 식탁 위에서 미묘하게 달라지는 아침 햇살의 방향을 알아채면 난데없이 깊고 조용한 행복함을 느낀다. 그럴 때는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든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삶이 장밋빛 천국인건 당연히 아니다. 회사일이 바쁘거나 스트레스가 높아지면 여전히 공황장애로 아프던 곳들이 뻐근하게 아파오는데, 그럴 때마다 통증의 정도와 상관없이 나는 조금 긴장하게 되고 동시에 지금의 모습에 감사를 올린다.


통증으로 도려내진 가슴에 그만큼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더 가볍고 기분 좋은 것들로 그 공간을 채워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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