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키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것은 “애니멀 레이키"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새롭게 발행되는 책을 무조건 받아보는 출판사 회원제에 가입되어 있어서 애완동물을 키우지도 않고 레이키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책을 받아 얼떨결에 읽고 ‘이런 것도 있구나, 신기하네' 생각하며 한쪽에 꽂아둔 게 여러 해 전의 일이다. 레이키가 이때의 나만큼 생소하신 분들은 구글과 네이버에게 물어 짧거나 긴 설명을 취향대로 읽어보시기를.
레이키를 실제로 접하게 된 것은 생뚱맞게도 싱가포르로 회사를 옮기고 나서 한 팀에서 일하게 된 팀원들과의 첫 회식자리에서였다. 식당으로 함께 이동하는 내내 눈이 간지러웠고, 왼쪽 눈 아래가 빨갛게 부어올라서 동료들이 괜찮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았다. 단순한 알레르기 반응인 것 같다고 하고 넘기려고 했지만 간지러움은 역시 참기 어려운 법. 내가 자꾸 눈으로 손을 가져가며 괴로워하자 내 옆에 앉아있던 팀원이 가벼운 말투로 묻는다. “너 혹시 레이키라고 들어봤어? 내가 레이키 마스터인데, 괜찮으면 눈에 잠깐 레이키 해줄까?”
한참 전에 읽었던 책 덕분에 손으로 하는 에너지 치료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레이키를 시도해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그런데, 그걸 지금 여기서 해준다고? 우리는 강변이 내다보이는 어둑한 일본식 퓨전 주점에 앉아 맥주와 사시미 요리를 주문해놓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빠르고 강한 비트가 도드라지는 음악이 큰소리로 흘러나오고, 모두가 큰 소리로 왁자지껄 떠드는 와중에 우리도 서로에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노랫소리와 옆 테이블의 대화 소리에 묻혀버리는 정신없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의자를 조금 돌리고 앉는다. 그냥 편하게 있어, 하더니 내 눈 위로 뭔가를 그리는 듯한 손짓을 하고서 손바닥을 가까이 가져다 댄다. 맞은편에 앉은 다른 팀원은 그럼 잘됐다며 급한 이메일 좀 하나 쓸게, 하더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고 나는 그대로 앉아 쿵쿵 쿵쿵, 하는 음악의 비트와 주변의 소음을 들으며 멀뚱하게 앉아있었다. 몇 분쯤 지났을까, 종업원이 맥주와 사시미를 테이블로 가져왔고 그녀는 심각한 통증이 있는 게 아니니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하며 손을 뗐다. 우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잔을 들고 웃으며 건배를 했다.
왼쪽 눈은 그날 저녁 요리를 끝없이 시키고 맥주잔을 비워내는 내내 다시는 간지럽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공황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 중 하나가 레이키다. 그날 내 눈에 레이키를 해 준 동료에게 레이키 선생님 연락처를 받았고, 그 인연으로 나는 레이키 치료를 받고 개인 상담도 받고 결국은 레이키 수업까지 듣게 되었다.어릴 때부터 대체의학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나였지만, 동시에 대체의학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전남편을 포함해 주변의 친구들도 의구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경우가 흔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에게 “넌 그걸 정말 믿는 거야? 손에서 좋은 기가 나온다고? 그냥 그렇게 팅커벨이 마법가루를 뿌리듯?” 하고 물으면 적절한 대답을 고민했고 스스로도 이걸 얼마나 확신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사람이 정말로 아프면, 아주 많은 것들이 단순해진다. 과학적인 설명도 레이키의 역사도 다 모르겠고, 일단 레이키를 받으면 그 순간만큼은 아프지 않았다. 그날 밤은 푹 잘 수 있었다. 그게 플라세보 효과든, 정말 좋은 기가 나와서든, 그런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설명은 아프지 않은 사람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나는 일단 아프지 않으면 장땡, 그런 심정이랄까. 레이키 치료를 받는 금액은 결코 저렴하지 않았고 나름 꼼꼼하게 따져본 결과 1단계 레이키 수업을 받는 편이 가성비가 높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레이키 수업을 처음 받으러 갈 무렵의 나는 여전히 술에 듬뿍 절어 있었고 고통에는 차근히 절어가는 중이었다. 수업은 이틀에 걸쳐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종일 진행되었는데 첫날 오전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이 혹시 질문이 있나요? 하고 물었을 때 나는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레이키가 숙취에도 도움이 되나요?” 그게 딱 나의 수준이었다. 그럼요, 숙취에 도움이 되고 말고요, 하는 대답을 듣고 얼마나 기뻤던지. 선생님이 웃으면서 덧붙인 말은 레이키 마스터 단계 수업까지 받은 후 술을 끊고 나서야 이해했다. “물론 숙취에도 도움이 되지만, 레이키를 꾸준히 하면 술을 많이 마실 필요가 없어져서 자신의 숙취를 치료할 일은 그렇게 많지 않을 거예요.”
어쩐지, 개인상담을 해주면서 내 전생이 보였다고 할 때 미래도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지난 주말, 둘째가 까불다가 발가락을 세게 부딪치는 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며 아파했다. 나도 모르게 둘째에게 “진짜 아프겠다. 이리 와, 엄마가 레이키 해줄게.” 하고 얘기하는 나를 보며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그 당시의 나에게 레이키는 구원이었고 만병통치약이었다. 레이키를 한참 배우던 시기에는 피가 철철 흐르는 심장에 지혈을 하는 기분으로 손바닥을 가슴에 올려두고 잠들었는데, 지금은 아이가 모기에 물리면 간지럽지 말라며 손바닥을 대고 레이키를 해준다.
지금껏 겪은 일들을 돌이켜 보면, 감사한 일들도 괴로운 일들도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경우들이 많다. 한 번은 동료와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하고 노래를 부르며 웃음으로 마무리 지었을 정도. 공황장애는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범주였고 동시에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신체적인 고통의 범주였다. 레이키는 그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가장 훌륭한 도구였고 가끔은 머리로 이해하거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지금은 잘 자고 잘 먹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가장 훌륭한 도구가 되었다. 몇 년에 걸쳐 다양한 대체의학을 하나하나 시도해나가는 과정에서 잘 자고 잘 먹을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가슴을 붙들고 아파하거나 병원에 오가며 보냈던 시간들을 지금은 싱잉 보울을 연주하거나 향을 피우거나 하며 보낸다. 고요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평화로운 마음은 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