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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우 Aug 23. 2022

오늘도, 요가의 신을 불러옵니다.

옴, 샨티 샨티 샨티.

아침 7시, 전날 밤 미리 꺼내어 침대 옆에 가지런히 둔 요가복으로 갈아입는다. 어떤 날은 새벽 5시부터 일어나 한 시간 넘게 일기를 쓰고 차를 마신 후에 느긋하게 움직이지만, 어떤 날은 세 번째 울리는 알람을 겨우 끄고 눈을 반쯤 뜬 채 꿈지럭거리며 요가복 안으로 나를 밀어 넣는다. 냉수를 가득 채워 담은 물병과 땀 흡수가 잘 되는 수건 한 장을 가방에 모두 던져 넣고 현관문을 열면, 일단 그날은 성공이다. 그런 날은 대체로 평화롭게 흘러간다. 


세 달째 다니고 있는 새로운 요가원은 자전거로 10분을 달리면 나오는 낮은 상가 건물 1층에 있다. 입구에 전혀 튼튼해 보이지 않는 엉성한 나무 신발장이 놓여있지만 다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바닥에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두고 들어간다. 첫 일주일이 지나서는 나도 대충 신발을 벗어두고 다니기 시작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내 팔 하나 길이만 한 작은 리셉션 데스크가 있고 맞은편에는 소파 하나가 겨우 들어간다. 


요가매트가 스무 개 남짓 깔린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으면 요가 선생님이 들어와 맨 앞의 요가매트에 앉는다. 대부분의 수업은 옴 챈팅으로 시작하는데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손을 모아 합장을 한 채로 다 함께 “오오옴……” 하고 세 번 소리를 낸다. 맨 처음 챈팅을 할 때는 나 혼자 눈을 번쩍 뜨고 이게 지금 무슨 일이지, 하며 두리번거렸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들 다리를 척 꼬고 앉아 엄청 큰 소리로 “옴"을 외치는데 그거야말로 문화충격이었다. 진심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옴 챈팅이 없는 수업을 하고 나면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로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아무리 피곤하고 잠이 부족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날에도, 요가 수업 괜히 왔나 싶은 후회를 안고서 꾸역꾸역 요가매트에 앉는 날에도, 일단 스튜디오를 가득 메우는 “옴-”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 소리를 듣고 요가의 신과 여신이 스르르 나타나 요가 열심히 하렴,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가는 기분이랄까.


요가의 신이 정말 있다면, 아니 만약 내가 요가의 신이라면, 아무래도 딱 이런 순간에 나타나고 싶을 것 같은데. 





요가가 뭐길래, 하고 생각한 건 대학에 입학한 해 여름 친구와 밥을 먹으면서였다. 친구가 선배 언니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 일을 시작한 지 일 년도 지나지 않아 공황장애로 쓰러졌고 치료 목적으로 요가를 배우기 시작했다가 지금은 모든 걸 내려놓고 요가강사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공황장애라는 말을 그날 처음 들었다. 공황장애가 대체 뭐길래, 그리고 요가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녀에게 모든것을 내려놓게 만들었을까 하고 오랫동안 궁금해했다. 


그리고 15년이 넘게 지나 내 몸으로 공황장애를 진하게 겪으면서 생각했다. 

아, 이런 거였군. 이런 거였어. 


그렇게 나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친구의 선배 언니를 떠올리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요가원의 문을 두드렸다. 


생애 첫 요가 수업은 강렬했다. 환갑이 넘은 인도계 할아버지 선생님이 헐렁한 운동복 바지를 입고 들어와 가르쳐주었는데, ‘40년 동안 요가를 가르치면서 단 한 번도 부상당한 학생이 없을’만큼 쉬운 동작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다. 당시의 나는 잦은 공황발작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기본 동작들이 나에게는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거나 돈을 내고 수업을 받으러 온 거라고 생각하자 쓸데없이 성실한 마음이 들어 통증을 애써 참고 무시하며 아등바등 동작을 부지런히 따라 했다. 수업을 시작하고 15분쯤 지났을 무렵, 그런 나를 유심히 보던 선생님이 결국 한참 진행하던 수업을 갑자기 멈추더니 그 많은 사람들 사이의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얘기했다. 


"요가는 옆사람이랑 비교하거나 선생님에게 칭찬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야. 그냥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것도 아니지. 너 자신의 호흡과 자세를 느끼면서 하는 거야." 


처음에는 민망했고, 그다음에는 당황했다. 

열심히 안 하면,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지? 


그리고 그다음 순간, 깨달음이 왔다. 

'아... 나는 여전히 칭찬을 받고 싶었구나.'


상당히 드라마틱한 자각의 순간이었다. 이렇게 몸이 아픈 채로 요가원까지 와서도 칭찬받고 싶은 마음을 놓지 못했다는 것. 나는 아무튼 열심히 하면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거다. 내 몸이 아프든, 마음이 무너지든, 어쨌거나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게 옳은 거고, 그러면 누군가가 알아채고 칭찬을 해줄 거라고, 너는 잘 살고 있다고 인정을 해 줄거라고 믿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그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렇게 지금껏 한 번도 똑바로 마주한 적 없었던 진실을,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요가 스튜디오 안에서 통증을 참으며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정면으로 마주하고 말았다. 





그 첫 수업을 시작으로 요가는 계속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칭찬받고 싶은 마음을 깨달았다고 단번에 그 마음을 내려놓고 나의 호흡과 자세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옆자리의 젊은 처자를 노골적으로 쳐다보거나 (세상에 어쩜 저렇게 몸이 반으로 착착 접히지?), 내 앞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물구나무를 선 채로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 할머니를 입을 쩍 벌린 채 시선을 떼지 못하기도 하고 (태어나서 그런 건 처음 봤어요,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런 날들에는 아무리 손을 뻗어도 발목에도 닿지 않는 뻣뻣한 나의 몸을 탓했다. 그러다가 다른 날들엔 나보다도 더 뻣뻣한 몸을 끌고 와서 열심을 다하는 배 나온 할아버지를 보며 마음을 다잡거나, 얼마 전에 암 수술을 하고 재활로 요가를 시작했다는 중년의 부부를 보며 나의 공황장애에 대해 누그러진 시선을 얻기도 했다. 


여러 달의 요가 수련을 거쳐 손가락이 발가락까지 얼추 닿게 되었을 무렵에는, 옆자리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나 자신의 들숨과 날숨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었고 내 몸에 더 관대해졌다. 요가를 하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 중의 하나는 남들은 나를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당장 나부터도 선생님이 왼쪽 다리에 오른쪽 다리를 꼰 상태로 왼쪽 발꿈치를 들고 무릎을 낮추고 앉아서 합장 자세를 취하라고 하면, 합장은 커녕 비틀거리다 쓰러지고 다시 처음부터 다리를 꼬아대느라 내 옆자리 사람 배가 더 나왔는지 내 배가 더 나왔는지는 비교할 겨를이 없다. 매트 위에서는 너나, 나나,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다.






집 근처의 요가원에 등록한 후로는 일주일에 세 번씩 아침 요가를 한다. 작고 허름한 시설에 딱 하나 뿐인 샤워실은 더 작고 허름한데 그나마도 나 말고 쓰는 사람은 못 봤다. 리모델링을 하지 않은 스튜디오 안의 공간은 뒤쪽 벽면에만 거울이 있고 묘하게 모서리가 삐뚤어져 있다. 에어컨 옆이랑 창문 옆의 큼직한 곰팡이 자국은 시선 고정이 필요한 균형 잡는 자세를 할 때 도움이 되기도 한다. 요가원에 오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다. 다들 슬리퍼를 대충 벗어두고 들어와 실컷 땀을 흘리고 다시 벗어둔 슬리퍼를 대충 걸쳐 신고 돌아간다. 


요가 선생님들이 즐겨하는 질문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질문은 이거다. 

"당신이 오늘 왜 요가매트 위에 올라왔는지를 생각해보세요." 


그럴 때마다 착실하게 내가 왜 요가매트까지 기를 쓰고 왔는지를 떠올려본다. 나는 온몸을 꼬고 접고 늘리면서 오롯이 집중해서 내 몸을 느껴보고 싶었고, 땀을 흘린 후 마지막에 송장 자세로 누워 온몸이 통째로 사라진 것 같은 감각을 느껴보고 싶었다. 오옴- 하고 챈팅을 외우며 요가의 신을 소환해 나 자신을 토닥토닥 다독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도, 서로의 똥배는 가볍게 잊어주고 다 함께 요가의 신을 불러온다. 


옴- 샨티, 샨티, 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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