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부모님이 밤낮으로 싸우는 것을 보며 자라난 나는 엄마와 언니에게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언니, 내가 혹시라도 나중에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뜯어말려줘야 해. 엄마, 제가 콩깍지가 씌어서 결혼을 꼭 하겠다고 하더라도 자식 하나 살린다 셈 치고 꼭 말려주세요. 알았죠?” 그러면 엄마와 언니는 웃으면서 “꼭 이런 애들이 나중에 커서 제일 먼저 결혼한다고 한다니까”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맞받아쳤다.
글을 쓰려고 앉았다가 십 대 시절 입에 달고 살았던 저 당부를 다시금떠올리고서 혼자 쓴웃음을 지었다. 마치 예언처럼 나는 제일 먼저 결혼하겠다고 난리를 친 자식이 되었고, 엄마와 언니는 그런 나를 정말이지 제대로 뜯어말렸다. 서로 마음을 많이 다쳤던 그 와중에도 문득 어릴 때 했던 나 자신의 당부를 떠올리고서 망연자실했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대체 무슨 당부를 해 둔 거지, 마치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저주 편지 같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몰래 울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아이 둘을 데리고 이혼녀의 삶을 사는 지금 떠올리는 똑같은 오래된 기억에서는 조금 다른 맛이 난다.
형제자매가 많은 집에서 자라났지만 나에게는 엄마와 언니가 나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첫째이자 딸로 태어난 언니는 엄마에게 가장 큰 버팀목이자 친구였고, 동지이자 조력자였다. 첫째 딸은 원래 그런 거라고 모두가 그랬다. 게다가 첫째 딸이 저렇게 똑똑하고 바르게 자랐으니 엄마가 복도 많지, 하고 다들 언니 칭찬을 늘어놓았다. 내가 보기에도 그 둘은 누가 뭐래도 떨어뜨려놓을 수 없는 환상의 콤비랄까, 넷째인 나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끈끈한 애정이 분명히 존재했다.
언니와 나는 애초에 다르게 타고난 사람들이라 성향도, 취향도, 성격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달랐다. 엄마와 나의 관계는 엄마와 첫딸만이 공유할 수 있는 끈끈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흐르듯 유연하고 자유로운 애정이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대부분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고, 거짓말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솔직했다. 열 살 무렵,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오락실이라는 곳에 구경을 다녀와서 엄마에게 오락실 가게 백 원만 달라고 했더니 그걸 몰래 가지 않고 당당하게 말해줘서 고맙다며 선뜻 천 원 지폐 한 장을 내주는 엄마였다.
나이가 들고 연애를 시작한 후에도 남자 친구를 숨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엄마는 항상 그저 그러려니 하며 대부분의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여줬다. 그래, 너 나이 때는 해보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야지, 괜찮아, 그러면서 배우는 거야. 대체로 그런 식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전남편과 연애를 시작하며 ‘결혼할 만한 사람’이라고 하는 나에게 엄마가 “아니, 그 정도는 아닌데. 그건 아니지.” 하고 냉담하게 반응한 것을 크게 마음에 담지 않았던 것은. 엄마는 항상 나를 존중해 주고 나의 선택을 지지해 주었으니내가 정말 원하는 게 있다면 분명히 나를 존중하고 지지해줄 거라는, 언제든지 그럴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 막연한 기대가 얼마나 빠르고 강력하게 모든 상황을 악화시켰는지는 언젠가 단편소설 하나 분량으로 적어볼 만하다. 임신한 것을 알고 나서 내가 아이를 지울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순진하고 솔직하고 대책 없이 엄마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그 시점부터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엄마는 나를 지키고 싶었고, 나는 뱃속의 아이를 지키고 싶었다. 사이좋은 엄마와 딸의 관계가, 각자의 자식을 지키겠다는 엄마 대 엄마의 대결구도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런 싸움에는 이기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상처를 입고, 괴롭고, 돌이킬 수 없는 말과 행동이 오가는 사이에 해결책 같은 것은 온데간데없다. 현실의 드라마에는 해피엔딩은 차치하고 애초에 끝이라는 게 없으니까.
이혼의 과정이 시작되던 무렵, 몇 년 만에 엄마를 만나 함께 여행을 갔다. 마음을 터놓지 않은 세월이 오래였으니 오래 묵은 이야기를 꺼내놓지 않고서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 대화를 하려고 작정한 게 아니었는데도 솔직한 이야기가 숨겨둔 스프링처럼 술술 나왔다. 임신한 사실을 엄마에게 알렸던 그 순간에 내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딱 하나, 엄마가 나를 봐주길 바랬다고, 엄마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딸이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길 원했다는 얘기를 담담하게 한 것도 그때였다. 하지만 혼전임신으로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오랫동안 불행한 결혼생활을 지속해야 했던 엄마에게 그건 역시 무리한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걸 아이 둘을 앞에 두고서도 마음 깊이 불행하고 우울한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첫째가 사춘기를 겪으며 점점 자신만의 자아를 쌓아가는 과정에 서로 상처되는 말을 내뱉고서 속이 상했던 순간에 문득 생각했다. 만약 나에게 딸이 있고, 그 딸이 앳된 얼굴을 하고 다가와 혼전임신을 했고 이 아이를 낳겠다고 하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는다. 아들만 둘이라서 참 다행이네, 그런 어이없고 말도 안 되는 안도를 해버리고 만다.
글을 쓰는 과정은 사람 사이의 관계와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오래 묵은 이야기를 꺼내놓지 않고서는 글이 이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건 내가 삶과 관계를 맺는 방식일 뿐인지도 모르고, 나 자신을 치유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고, 내내 망설여지는 이야기들이 아직도 내 안에 가득 들어서 가끔 나를 조용히 흔들어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