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밥하는 법을 배운 날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해의 첫날 아침이었다. 그 당시 잠시 우리 집에 머물며 집안일을 도와주시던 외할머니가 나를 깨워서 부엌으로 데리고 갔다. “이제 학교에 입학하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자기 식구 밥 정도는 지어서 먹일 줄 알아야지" 하시며 압력밥솥에 쌀밥 짓는 법을 알려주셨다. 쌀을 세 번 씻어내고, 물은 손등 절반 정도 오게 잡고, 압력추가 어느 정도 돌아가기 시작하면 밥 냄새를 맡아보고 불을 약불로 줄이는 거야, 구수하게 누룽지 눌은 냄새가 나면 바로 불을 끄고 뜸을 들여야 해, 그런 단어들이 생생하게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 누룽지 냄새를 맡으며 ‘자기 식구 밥 정도는 지어서 먹일 줄 알아야 한다'는 말도 내 안에 깊게 새겨졌던 게 틀림없다.
어릴 때는 엄한 밥상 분위기 때문에 밥 먹는 걸 결코 좋아하지 않았지만, 내 손으로 요리를 할 수 있게 되면서는 항상 부엌을 맴돌았다. 열 살이 되었을 때 이사를 했고 엄마는 벼르던 동양매직 가스오븐레인지를 샀다. 그 해에 나는 커다랗고 얕은 팬에 계란을 일곱 개 넣고 만드는 카스텔라를 마스터했다. 방학이 되면 나 혼자 부엌에 앉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일곱 개 분량의 흰자를 손 거품기로 몇십 분이고 쳐서 머랭을 올렸다. 간식이 귀하던 때라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팔이 떨어지더라도 그 카스텔라를 꼭 만들어 먹겠다는 의지 같은 게 있었다. 요즘처럼 베이킹용으로 나온 유산지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도화지를 잘라서 팬에 깔고 반죽을 부었다. 예열된 오븐 앞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마법처럼 빵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았다.
첫째가 육 개월을 지나 이유식을 먹을 시기가 되었을 때 나는 마치 하얀 종이에 색을 하나씩 칠해나가듯 아이의 미각을 개발해 나갔다. 먼저 맛이 순한 야채 위주로 재료를 한 가지씩만 넣어 미음을 쑤고, 그 맛에 익숙해질 무렵이면 두 가지를 섞어 새로운 맛을 내고, 맛이 강한 고기나 과일은 적당히 시기를 고려해 조심스럽게 하나씩 집어넣었다. 첫째는 정말 잘 먹는 아이로 자랐고 동네 엄마들은 샐러드부터 디저트까지 뭐든 잘 먹는 아이를 부러워했다. 내가 밥 대신 맥주를 마시는 날에도 첫째는 한우와 야채 5가지가 들어간 이유식을 싹싹 비워냈고 그런 모습을 보면 배가 부른 느낌이 들었다. 나 자신을 굶기던 때에도 냉장고에는 항상 ‘내 식구를 먹일' 재료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치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철칙처럼.
결혼을 하고 내 부엌이 생기면서는 마치 꿈을 펼치듯 다양한 요리를 시도했다. 월요일은 아귀찜, 화요일은 제육볶음, 수요일은 매운탕, 목요일은 홍합찜, 금요일은 한 주를 마무리하며 골뱅이 소면 무침에 술 한잔, 대충 그런 식이었다. 어린 며느리가 걱정되니 근처에 살아야 한다며 같은 단지에 신혼집을 구하라고 했던 시어머니는 하루 걸러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저녁을 먹고 술도 한 잔씩 하고 갔다. 남편은 몇 달 지나지 않아 10킬로그램 가까이 몸무게가 늘었고 다들 신혼이 좋긴 한가 보다고, 와이프가 요리를 잘해서 좋겠다고 하는 얘기를 칭찬으로 했다. 시어머니도 ‘네가 자꾸 그렇게 요리를 하니까 나까지 살이 쪘다'는 소리를 웃으면서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 집에 오는 횟수가 줄지는 않았다. 내 주변의 모두가 살이 찌고 있는데 내 몸무게는 좀처럼 느는 법이 없는 이유를 그 당시에는 몰랐다.
그렇게 남들을 대접하기 위해 차린 수많은 식탁에 내가 진짜로 먹고 싶었던 음식이 얼마나 있었나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더 이상 접시가 올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그득하게 손님상을 차려놓고서도 부엌을 분주하게 오가느라 배가 고팠던 저녁이 여러 번 있었다. 시댁 식구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내가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깨작거리고 있으면 시어머니는 ‘원래 요리하는 사람은 요리 중에 음식 냄새를 맡아서 많이 못 먹는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그러게요, 정말 그런가 봐요, 하며 술잔을 대신 들었다.
몸과 마음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식욕은 점점 나의 손을 벗어났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꽤나 잘 먹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정체성은 건강할 때만 유효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울감이 찾아오면 중력이 열 배로 늘어난 것처럼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고 그럴 때는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몸을 최대한 조그맣게 말고서 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미룰 수 있는 미팅을 다 미루고서도 정말 어쩔 수 없어지면 겨우겨우 죽을 것 같은 몸과 죽고 싶은 마음을 일으켜 멀쩡하게 살아서 출근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날에는 먹겠다는 의지도 생기지 않는다. 이대로 계속 나를 굶기면 천천히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바람을 가지고도 실제의 내 몸은 아무렇지 않게 살아서 출근을 하고, 아이들 준비물을 챙기고, 가족들 식사를 준비했다. 그러다가 어떻게든 우울이 한차례 지나가고 나면 다시 먹을 수 있었다. 그대로 굶어 죽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다시 먹다가, 금세 또 못 먹게 되는 사이클을 반복했다.
식욕이야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 거니 한동안은 티가 나지 않았다. 뭐든 잘 먹는 전남편은 자기가 음식을 먹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먹고 있는지가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반면 첫째는 섬세한 시선을 가져서 내가 접시에 음식을 가져다 놓고 먹는 시늉만 한다는 걸 종종 눈치챘다. “엄마는 왜 안 먹어요? 아까 처음에도 아주 조금만 가져갔는데 건드리기만 하고 제대로 안 먹은 것 같은데.” 하고 물으면, 응, 오늘은 별로 배가 안고파서 하고 대답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아픈 정도가 심해져 회사에서 병가를 내지 않고는 버티기 어려워졌을 무렵에는 식탁에 앉아 먹는 척할 기운도 없었기 때문에 “엄마는 왜 안 먹어요?” 하는 질문에 대답할 말도 없어졌다.
이혼하고 새로 얻은 집에서는 내 손으로 한 요리를 먹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사 온 첫날에만 온라인 슈퍼마켓에서 50만 원어치의 식재료를 주문했다. 쌀도 소금도 식용유도 없었으니까 그 첫 달에 나간 식료품 비용이 어마어마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눈여겨보던 무쇠 프라이팬을 시작으로 마음에 드는 그릇을 샀고, 유리잔을 샀고, 새로운 차 주전자를 샀다. 나는 마치 악에 받친 사람처럼 부엌을 채워나갔다. 부엌이 텅 비어 있으면 14년 동안 공들여 일구어낸 부엌을 통째로 두고 온 속상함이 더 커질까 봐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혼자서 먹기 위한 요리를 하면서 다양한 깨달음을 얻었다. 예를 들어 요리하는 사람은 음식 냄새 때문에 많이 못 먹는다는 그 말, 알고 보니 다 뻥이었다. 해본 적이 없어서 몰랐던 거다. 재료 냄새 실컷 맡아도 내가 먹고 싶은걸 내가 먹고 싶은 만큼만 만들어서 먹으면 끝장나게 맛있기만 하다는 걸.
나 혼자 먹으려고 1인분의 스파게티를 만들 때는 나도 모르게 매 끼니 8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던 엄마를 떠올린다. 마늘 두 쪽, 새우 두 마리, 고추 끄트머리 조금, 대파 손가락만큼을 넣어 파스타를 만들다가 엄마가 내 도마를 보면 소꿉장난 한다고 할 것 같다. 요즘은 솥밥에 재미를 붙여 정말 소꿉 장난감 같은 80ml 계량컵에 쌀을 딱 맞춰 씻는다. 이만큼으로도 밥이 되려나 싶지만, 다 된다. 게다가 엄청 맛있다.
그러는 와중에 요리를 훨씬 더 즐기게 되었고, 실력도 늘었다. 내키는 대로 요리를 하게 되면서는 재료를 거의 남기지 않게 되었다. 그건 정말 신기한 일이다. 진심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때는 재료를 대하는 자세부터 달라진다. 전에는 먹는 사람의 기분과 취향을 살피고 레시피에서 시키는 대로 하느라 끌려다녔는데, 이제는 내 입에 뭐가 더 맛있을지를 살피고 냉장고를 뒤져 내가 좋은 대로 요리를 주도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함께하는 식탁에서의 태도도 달라졌다. 애들 접시에만 맛있는 것을 다 덜어주지 않는다. 아무리 맛있는 것이라도 미리 물어보고 먹지 않겠다고 하면 주지 않는다. 어차피 식탁 위에 아이들만을 위해서 올리는 음식은 없고 내가 먹고 싶은 것 위주로 골고루 요리해서 올려두기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요리했는데 왜 안 먹니' 하는 식의 서운함도 아쉬움도 생기지 않는다.
혼자 지내는 주에 나만을 위한 식탁을 차릴 때는 의식을 거행하듯 공을 들인다. 물을 한잔 따를 때도 꼭 레몬을 한 조각 더하고, 민트 화분이 잘 자라고 있다면 줄기를 하나 잘라 넣는다. 과일은 아끼는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내고, 볶음요리는 먹기 직전에 쪽파를 송송 썰어 올리고. 만족스럽다 싶으면 사진도 한 장 찍어 기록으로 남겨본다. 마지막으로 식탁등을 켜고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서야 제대로 앉아 수저를 든다. 아 좋네, 이만하면 딱 좋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좋아하는 음식만 가득한 접시를 앞에 두고 앉아서 나는 단호하게, 집중해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망설임 없이 먹는다.
그렇게 남들을 잘 대접할 줄 아는데, 스스로를 대접하지 못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 마음으로 혼자서 먹을 때에도 밥상을 거하게 차려본다. 오늘도,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