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절대 이혼을 장려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만
얼마 전 절친한 친구에게 초대받아 밥을 먹다가 불면증 이야기가 나왔다. 같은 테이블에는 그날 처음으로 소개받은 신혼의 젊은 여자분이 함께였다. "잠 못 자는 거, 정말 괴로워요" 하는 이야기에 그 테이블의 모두가 깊이 공감했다. 여러 해 동안 불면으로 고생해본 나도 "맞아요, 정말 힘들죠. 저도 예전에 고생 많이 해봐서 그 괴로움 너무 잘 알아요." 하고 한마디를 보탰다. "예전에 라니, 지금은 괜찮으신가 봐요" 하고 질문이 돌아온다. "네에, 항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근 몇 달은 거의 매일 잘 자는 편인 것 같아요." 했더니 그녀가 두 배쯤 커진 눈으로 "도대체 어떻게요? 비결이 뭐죠?" 하고 상체를 테이블 절반쯤 들이밀며 다시 묻는다.
"아... 딱히 비결 같은 건 없는 것 같은데... 최근에 달라진 거라면... 이혼?"
아차. 나도 모르게 너무 정직하고 말았다. 옆에서 그 대답을 들은 친구의 깔깔깔 웃는 소리가 천장까지 닿는데 정작 나에게 질문을 던진 분은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모른 채 얼음. 나는 서둘러 웃으며 "초면에 너무 솔직하게 대답해버렸나 봐요. 죄송해요, 이건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하고 사과를 해 보지만 그걸로 상황이 수습될 리가 없다. 아니, 그게 '너무 솔직한' 대답이라는 것도 얘기하면 안 되는 거였나 뒤늦게 생각해보지만 이미 늦었다.
처음 불면이 찾아온 것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기억하는 것은 내가 잘 자는 아이로 태어났고 어릴 때는 언제 어디에서나 잘 잤다는 것. 그야 어렸고 근심 걱정이 없었을 테니 그랬을 거라고 하면 글쎄, 어리다고 잘 자는 것도 근심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중학교를 다녔던 나는 항상 8시 45분 아침 조회 시간을 넘겨서 살금살금 들어갔다. 9시 정각 수업 시작 시간을 넘겨서 들어간 날도 종종 있었는데, 그러면 선생님은 항상 "원래 집 가까운 애들이 더 늦는 법이라니까" 하며 혀를 쯧쯧 찼다. 딱히 잠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지만 자는 게 너무 좋고 달콤하니까 일어나기가 어려웠던 것뿐이다. 시계가 8시 30분을 넘어가는데 내가 아직도 이불속에서 밍기적 거리고 있으면 엄마는 "오늘은 학교 안 가는 날이니?"하고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보곤 했다. 그럴 리가요, 당연히 가는 날이죠, 하는 졸음 섞인 대답을 들어도 엄마는 그냥 "어어, 하도 잘 자길래 안 가는 줄 알았지" 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자기가 하던 일로 돌아갔다. 덕분에 아침마다 발걸음은 종종거려도 빨리 일어나라는 짜증 섞인 재촉을 받지는 않았다. 물론 지각대장 딱지는 중학교 3년 내내 나를 따라다녔지만.
엄마가 되고 나서는 잠을 잔다는 행위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닌 아주 귀하고 소중한 것.
첫째 아이는 잠귀가 밝고 예민한 기질로 태어나서 어렵게 잠들고 쉽게 깼다. 그때까지 잠으로 고생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매일매일 죽을 것처럼 졸렸다. 아이와 같이 잠들고, 아이 울음소리가 나를 깨우면 마지못해 깨고, 종종 젖을 물린 채로 아이보다 먼저 잠이 들었다. 신생아 시기를 넘기고 나서는 수면교육을 시작했다.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 수유를 하고, 수면 의식을 반드시 지키고, 시간 맞춰 낮잠을 재우려고 노력했다. 품에서 내려놓기 어려웠던 첫째는 돌이 지나면서 저녁 8시에 잠들어 아침 6시까지 밤새 자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무렵 나는 이미 우울에 발을 담근 후였고, 자는 아이를 옆에 두고도 잘 수가 없었다.
불면의 시작을 찾으러 들어갔다가 우울의 시작을 맞닥뜨리고서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를 한참 고민해 봤지만 결론은 없었다. 다만 그 둘이 꽤나 친한 친구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지속된 수면부족이 우울을 흔들어 깨운 건지도 모르고, 스멀스멀 자라나던 우울이 다리를 뻗기 위해 꿀잠을 서서히 몰아냈는지도 모른다. 관자놀이에서 정수리를 잇는 편두통은 덤으로 찾아왔고, 앞머리는 항상 반쯤 마비된 것처럼 멍했다. 내가 잘 자는 아이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전설 같은 기억이 되었다.
처음에는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다양한 조언을 찾아 시도해보았다, 혹은 시도해보려고 노력했다. 아침에 햇볕을 쬐는 것이 좋으니 산책을 하라거나 (이제 막 겨우 잠들었는데 일어나서 산책을 하라고요?), 자기 직전에 따뜻한 목욕을 하라거나 (집에 욕조가 없습니다만), 가급적 핸드폰을 포함한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말라는 (그 훌륭한 말씀을 새벽 두 시에 핸드폰으로 읽고 있어서 말이죠) 조언들은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았다. 반면 빨리 잠들게 도와준다는 호흡법이나 방의 온도를 약간 추울 정도로 맞추는 것은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은 날에는 도움이 되었다.
오늘은 자기 글렀다는 생각이 일찌감치 드는 밤에는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기도 했다. 책은 읽다가 집중해서 아예 밤을 꼴딱 새우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루한 책을 들고 있는 기간에는 더 일찍 잠들기도 했다. 종이 위에 펜으로 쓰는 행위는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중독성이 있었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4시에 노란 식탁등 하나 켜 두고 사각사각 써 내려가는 일기는 불면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 시간에만 열리는 통로 같은 것이 있어서 새벽의 노트 앞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내 안에서 흘러나왔다. 시간이 지나 새벽에 쓴 것을 다시 읽어보면 깨어있는 시간에는 드러나지 않는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잠을 잘 못 자는 사람'의 정체성은 좋지 않은 습관과 함께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자라났다. 전날 못 자서 하루 종일 피곤했으니까 저녁 무렵이 되면 편안하게 온 몸의 긴장을 풀겠다며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캔 꺼내 저녁을 대신하거나, 와인 한 잔은 원래 몸에 좋은 거라며 코르크를 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커다란 레드 와인잔은 총 960ml의 음료를 담을 수 있고 와인 한 병은 750ml니까 이런 경우에 '와인 한 잔'은 상당히 주관적인 지표가 된다. 숙면은커녕 알코올을 분해하느라 밤새 고생하고 지친 몸을 안고 일어나 아이들 아침을 차리고 커피를 내렸다. 출근을 하면 더 많은 커피가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손만 뻗으면 무제한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었고 나는 하루에 6-7잔의 커피를 아무렇지 않게 마셨다. 밤의 절친은 술, 낮의 절친은 커피, 그 와중에 나의 몸은 점점 나와 친하지 않게 되었다.
아침마다 나를 구원해주던 커피를 끊는 것은 괴로웠고 오랜 시행착오를 거쳤다. 6잔에서 4잔으로 줄였다가, 오후 2시 이후에는 마시지 않다가, 아침에 딱 한 잔만 마시게 된 후에, 마침내는 참을 수 없는 순간에만 나 자신을 속이기 위해 디카페인 라떼를 한 잔 마시는 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서 전보다 더 긴 시간을 잘 수 있게 되었지만 커피콩을 드르륵 드르륵 가는 동안의 향긋한 원두 향이나 포근한 라떼의 거품이 입술에 닿는 감촉을 잃어버린 것이 못내 억울했다.
잠이 부족했고 몸이 힘들었기 때문에 '불면' 자체는 나에게 화두가 되었다. 나는 자나 깨나, 아니 주로 깨어서 불면을 생각했다. 영어로 'sleep like a baby'라는 표현이 있는데 하루라도 그렇게 자고 싶다는 얘기를 하다가 문득 아기는 밤새 잘 자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다. 뭐야, 결국 숙면이라는 건 환상이었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유니콘 같은 개념이었군 하고 실망했던 게 기억난다.
정작 불면이 나의 삶에서 쪼그라든 것은 이혼 전후로 내 삶에 생긴 큼직한 변화들 때문이다. 매일 밤낮으로 몸이 아파서 잠을 잘 자는 것 이전에 몸이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술을 줄이고, 식생활을 조절하고, 요가를 했다. 아프지 않은 날은 더 잘 잤지만 그런 날은 많지 않았다. 그제야 불면도, 우울도, 공황장애도 따로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의 표면에 드러나는 문제들을 헤집어 내려가다가 그 뿌리들이 한 데 모여있는 것을 발견했고, 나라는 존재가 하나의 유기체로 작동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새로운 집에 이사 와서 처음으로 숙면을 취한 날 아침이 떠오른다. 폭풍처럼 몰아닥친 변화들을 감당하느라고 숙면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몸이 피곤했고 자정 전에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다음 순간 눈을 떴는데 뭔가가 이상했다. 아직 암막 커튼도 없이 얇은 속 커튼만 달아놓은 침실 안으로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고 있었다. 그 어리둥절한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눈이 부시네, 여긴 어디지, 지금은 몇 시지. 핸드폰을 확인하니 아침 7시가 다 되어간다. 눈을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 해가 뜨다니 그럴 리가.
'불면증을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하는 질문에 대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불면을 따로 떼어 극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질문을 한 사람도 그동안 내가 겪은 다양한 의사들과 상담사들과 테라피에 대한 이야기를 2박 3일에 걸쳐 들을 생각으로 물어본 것은 아닐 테고. 지금의 나는 잘 자는 날도, 여전히 새벽에 깨어 일기를 쓰는 날도 있다. 하지만 못 자는 날에도 자신에게 '잠을 잘 못 자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입히지 않는다. 매일 눈을 감았다 뜨면 아침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별다른 걱정 없는 마음으로 잠드는 날들이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