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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우 Aug 07. 2022

술, 끊어보셨나요?

어디까지 마셔보셨나요?

기억 하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술을 마신 날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나는 열두 살이었고 그날은 언니가 수능을 백일 앞둔 날이었다. 밖에 나가서 친구들이랑 몰래 마시지 말고 집에서 당당하게 마시라며 부모님은 언니를 위해 백일주를 준비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식탁에 관객으로 앉아있던 나에게 맥주를 반 잔 따라준 것이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 관심은 온통 거품이 솨아 하고 일었다가 가라앉은 황금빛 맥주에 정신이 팔려있었고 '그래도 너무 어린애한테 따라준 게 아니냐'는 논의가 잠깐 오갔다. 하지만 "어차피 언젠가 밖에 나가서 경험하게 될 일인데 그럴 거면 차라리 집에서 일찌감치 제대로 주도를 배워두는 게 낫지"라는 이유로 나는 맥주 반 잔을 공손하게 두 손으로 받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마셨다. 내가 그 잔을 비워버릴 거라고는 그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겠구나, 맛만 보고 쓰다고 내려놓을 줄 알았겠지, 하고 한참 후 나이가 들어서야 생각했다.


술은 언제나 내 가까이에 있었고 내 삶의 일부로 존재했다. 가장 가까운 친구부터 그날 처음 만난 사람까지, 내가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신다는 것은 모두가 알았다. 숨길 수도 없고 숨길 필요도 없는 진리처럼 술은 내 삶에서 영역을 점점 확장해 나갔다.


술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이마트에서 파는 세계 맥주를 세일할 때마다 종류별로 사들였고 브랜드별 맥주잔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와인샵 언니와는 카톡으로 안부인사를 주고받았다. "이번 주말에 한번 들르세요"하는 메시지를 받고 가면 귓속말을 하며 나에게만 더 할인을 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훌륭한 상부상조의 관계가 또 있을까 싶다. 출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위스키를 사들이기 시작했고 싱글몰트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테킬라나 보드카는 도수가 너무 높아 별로라고 생각했지만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좋은 술 베이스에 홈메이드 시럽을 섞고 신선한 허브를 올린 칵테일이 얼마나 맛있는지는, 마셔본 사람만 안다. 부엌 손이 큰 내가 바텐더였으니 모히토도 마티니도 하이볼도 무제한이다. 이미 취해서 감각이 무뎌진 손으로 칵테일 셰이커를 탕, 하고 쳐서 열 때의 그 희열이란.




기억 둘.


내 주변에는 술자리를 좋아하고 주량이 세지만 집에서나 혼자서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는 소셜 드링커가 여럿 있다.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에게 알코올 의존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코올 의존증은 정의하기에 따라 달라지지만 내가 여러모로 의존적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는 알코올 중독까지는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 때때로 2주 정도의 금주를 감행했다. 그래,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손이 덜덜 떨리지는 않으니까 괜찮아, 하고 말도 안 되는 자기 위안을 했다. 일주일째 술을 안 마셨다는 얘기를 들으면 친구들과 동료들은 걱정되는 눈을 하고 “괜찮은 거야? 큰 병에 걸렸니?” 하고 진지하게 물었다. 금주기간이 지나면 다시 술을 안주로 술을 마셨고 지인들은 “괜찮은 거 맞구나, 다행이다" 라며 안심했다.


알코올 의존증의 초입에 첫 발을 디딘 순간은 술을 처음 마셨던 날처럼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첫째가 유난히 칭얼거리던 날이었다. 나는 젊은 엄마였고, 친구들이 학업을 계속하거나 첫 직장에 취업하거나 타국으로 여행을 다니는 소식을 전하며 아이는 잘 크니, 하고 묻던 시기였다. 한여름의 날은 덥고, 신혼집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싱크대에는 깨끗한 숟가락 하나도 없이 설거지거리가 쌓여있었고, 기저귀를 하나라도 더 넣어서 버리려고 현관에 내어놓은 종량제 봉투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15평 주공아파트 거실에 5만 원을 주고 산 간이 식탁에 앉아서 삶이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했다. 강렬한 화나 짜증이 아니라, 바람 빠진 풍선처럼 그저 너무 지치고 힘이 들어서 더 이상은 의욕도 의지도 없는 그런 마음. 삶에 진절머리가 났다. 나는 외롭고 괴롭고 오롯하게 혼자라고 느꼈지만 스스로에게도 그런 감정들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아침을 먹지 않았으니 당연히 배가 고팠고, 며칠째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머리가 멍했다. 설거지를 하기 전에는 결코 요리를 시작할 수 없는 상황인데 시간은 정오를 향하고 배가 고파서 손가락 끝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계시를 받은 사람처럼 냉장고에서 기네스를 꺼내 한 잔 가득 따랐다. 마치 눈이 내리듯 천천히 어둡게 아래로 가라앉는 기네스의 거품을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있었다. 마침내 고요해진 잔에 하얀 거품과 검은 맥주가 드러내는 그 아름다운 흑백의 조화. 나는 그 한 잔을 망설임 없이 비워냈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느낌이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주변 풍경이 조금 흐릿해지고 순간 세상이 더 살 만한 곳이라고 느껴지는 멍한 기분. 빈 속에 술이 들어가자 금세 손가락 끝에서부터 묘하게 저릿하고 무딘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바깥세상도 내 삶도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뾰족하게 괴로운 느낌이 사라지자 그것만으로도 견딜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딘 감각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동안 나는 아주 오랜만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날을 기점으로 술을 향한 나의 사랑앓이가 시작되었다. 회사에서 지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빈 속에 뭐가 되었든 일단 한 모금을 마시면 온 몸이 말랑말랑 해지는 기분이 들며 안도감이 들었다. 손끝 발끝으로 퍼져나가는 취기와 무딘 감각은 술에 대한 애착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었다.


술에 감정적으로 의존한다고 해서 삶을 놓아버린 것은 결코 아니다.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시는 사람의 타이틀을 자랑스럽게 달고서 나는 오랫동안 두 아이를 키우고 직장생활을 하고 집안일을 했다. 캐롤라인 냅이 쓴 '드링킹'이라는 책을 읽으며 세상에는 나처럼 사회적으로 유능한 (highly functioning) 채로 술에 의존하는 사람이 또 있다는 걸 뒤늦게 이해했다. 그 시기에는 겉으로나마 밝게 웃으며 해낼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삶이 여전히 어떻게든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결혼생활 마지막 몇 년 동안 전남편과 마주 보고 앉아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 식탁 위에도 항상 술이 있었다. 아이들 관련된 이야기를 다 하고 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한쪽이 맥주든 와인이든 꺼내 따르며 묻는다. “한 잔 줄까?” 그러면 우리는 한동안 마치 우리의 관계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혼을 하고 아이들 없이 혼자 지내는 시간이 생기면서 처음 몇 주는 와인을 짝으로 들이기 시작했다. 그릇장 맨 아랫칸을 와인과 위스키와 코냑과 칵테일 재료로 채웠다. 누구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잔뜩 초대해서 마음껏 마시고, 혼자 있는 저녁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술을 느긋하게 만끽하다가 꽐라가 된 채로 잠들고 아침엔 깨우는 사람 없이 실컷 늦잠을 잘 생각에 내심 신이 났다. 그리고 몇 번은 실제로 그렇게 하기도 했다. 생각만큼 그렇게 신나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러면서 '술을 마시지 않아도 괜찮은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과연 술을 마시지 않고 살 수 있을 건인가. 술에, 술이 아니라도 다른 무엇에 혹은 누군가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가. 그 정도의 힘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을까. 제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술을 마시고 싶은 순간들에 차를 마시거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 종종 차를 마시면서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에 대한 일기를 썼다. 현실에서 멀어지는 그 느낌, 취기가 오르며 몸이 무뎌지는 그 감각. 처음에는 그 무딘 감각이 그리웠고 삶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게 불편했다. 술을 마실 때는 몸이 어디에 있든 삶에 대한 거리감을 둘 수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맨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면 삶이라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네, 하고 생각했다.




술과 나의 관계는 얘기하자면 끝없이 길어진다. 하지만 요약하면, 술을 마시지 않게 되면서 술 마시던 때의 내가 어디에든 기댈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술에 기대거나, 사람에 기대거나, 먹을 것에 기대거나, 책이나 일에 기대기도 했다. 그런 습관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해서 단번에 바뀌지 않는다. 술 대신 차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와인에 쓰던 돈을 값비싼 중국 차에 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익숙한 자신을 마주한다. 심지어 술 대신 마시기 시작한 차에도 대책 없이 취하는 자신을 마주하면 이건 뭐 핑계가 없다.


이 글은 절대로 금주 성공기는 아니다. 더운 날의 시원한 맥주 한잔은 여전히 나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하고, 마음이 지치는 날에는 진한 레드와인 한잔이 오랜 친구를 보고 싶은 것처럼 그립다. 다만 비장한 선언 없이 조용히 금주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었고 최근의 나는 가끔 술을 마시지만 한 번도 꽐라가 되지는 않았다. 그 기간 동안 술을 마시는 것과 취하는 것이 별개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정말이지 아주 깜짝 놀랐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맨 정신으로 취하지 않아도 살만한 삶에 대해서 여전히 생각한다. 무디지 않은 감각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이 글을 쓰는 동안 마신 우롱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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