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4년이 되어가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처음으로 나의 집을 얻었다. 전남편과는 공동양육으로 합의를 하고, 아이들은 매주 토요일 저녁에 엄마 집에서 아빠 집으로, 아빠 집에서 엄마 집으로 이사하는 일정으로 동의를 했다. 혹여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저 두 문장의 행간에 담긴 우여곡절을 가늠해보실 수도 있겠으나, 그런 질척한 이야기는 나중에.
아무튼 그래서,
나에게는 격주로 나만의 공간과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부러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내 개인 짐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부엌 짐이 많았던 편이라 그중 사용하지 않는 것들 위주로만 짐을 챙겼는데, 박스를 풀고 나서야 숟가락 젓가락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얘기를 들은 친한 언니들이 구세주처럼 커트러리 세트를 선물해주어서 며칠 만에 나무젓가락과 플라스틱 숟가락 신세는 면할 수 있었다.
일단은생활하는데 가장 필요한 가구들부터. 식탁과 소파와 침대를 구매하며 나는 일부러 동그란 원형 식탁을 골랐다. 앞으로는 세 명이서 밥을 먹게 될 테니 평범한 직사각형 식탁이라면 한자리 남는 게 티가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식탁의자도 딱 세 개만 사고 동일한 간격으로 배치했다. 손님은 두 명 이상 초대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며 좋은 선택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큼직한 가구를 사는 것은 분명 큼직한 결정인데, 그냥 내가 보기에 제일 좋은걸 고르고 혼자 결정해도 된다는 사실이 나를 얼떨떨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사실 이렇게 내 마음대로 결정하는 걸 해보고 싶었구나 하고깨닫고 말았다.
내 방에는 아직 침대가 도착하지 않아 먼저 도착한 매트리스만 비닐채로 깔아 두었지만, 아이들이 도착할 첫 토요일이 금새 다가와 급한 대로 아이들 방만 평소처럼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게 꾸몄다. 첫 주의 우리는 조금 서먹했고, 어색했고, 새로운 것이 너무 많았다. 아이들에게 아빠도 지금 집안 여기저기를 바꾸고 있다는 말을 들으며 왠지 모르게 비교당하는 기분이 들었고, 그건 어쩌면 전남편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른다.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조그만 직화 압력솥에 밥을 하느라고 바닥은 타고 위는 죽처럼 무른 밥을 밥공기도 없이 평평한 접시에 떠주며 저쪽 집의 버튼 하나면 다 되는 새로 산 쿠첸을 생각했다. 그 순간에는 밥맛도 비교당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을 하며 얼른 전기밥솥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첫 주를 보내고 돌아온 토요일 저녁에 아이들은 아빠 집으로 이동하고, 나 혼자 맞은첫 일요일 아침. 쓸데없이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 아직 어수선한 집안을 누비고 다니다가, 사실은 딱히 할 일이 없어 아침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이들 먹이고 남은 재료를 모아 샐러드를 조금 내고, 한 줌 남은 팽이버섯을 볶고 계란 프라이를 두 개 부쳤는데도 여전히 접시가 남아 유일하게 남은 과일까지 마저 썰어서 올렸다. 책장에서 일 년 전에 일탈을 꿈꾸며 사둔 이탈리아 여행책을 꺼내 아침 식탁에 앉은 그 순간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고요한 집안을 배경으로 나는 한입 한입 정성 들여 꼭꼭 씹어 그 한 접시를 다 먹었다. 다 먹고 난 다음에는 그대로 접시를 밀어 두고 책을 백 페이지 넘길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포지타노에서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여전히 고요한 집이 내 눈앞에 있는 것을 보고 나는 한참이나 멍하게 있었다. 내가 돌이키지 않을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것, 내 삶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한 순간.
이 집으로 이사를 하고 난 직후의 나를 떠올리면, 메모리폼 베개가 생각난다. 밤새 아무렇지 않게 내 뒤통수 모양에 맞춰 꾹꾹 눌려있던 자국이, 내가 몸을 일으키자 그제야 서서히 펴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슬로모션. 내가 오랫동안 눌려져 있었다는 것은, 눌린 자국이 펴지기 시작한 다음에야 알아차렸다. 그 슬로모션의 과정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적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