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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우 Oct 18. 2022

이혼 후 공동육아, 아이들과 절반의 시간을 공유하다

아이들과의 동거, 동거인으로서의 아이들

어떻게 공동육아라는 결론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적어 내려가다가, 건드리면 아직 아픈 기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픈 상처는 아물게 두고, 대신 꽤나 잘 지내고 있는 요즘의 이야기를 적어 보기로 한다.


우리 집의 공동육아는 매주 토요일 저녁에 아이들이 엄마 집과 아빠 집 사이를 이동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혼을 하며 나는 같은 아파트의 두 동 떨어진 건물에 집을 구했고 단지 안에서 전남편을 가끔 마주친다. 아이들과 버스를 타러 걸어가다가 전남편을 만나면 아이들은 반갑게 아빠에게 달려가고 우리는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지난달에 퇴사한 옆 팀 동료에게 내보일 법한, 친절하지만 거리감 있는 미소를 지으며 “잘 지내지?” 라거나 “어, 잘 다녀와" 하는 간단한 인사말을 주고받기도 한다.


격주 스케줄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28인치 캐리어를 하나씩 사주고 매주 필요한 짐을 직접 챙기게 했다. 2년이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매주 빠뜨리는 것들이 생긴다. 학교에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노트, 도서관에 이번 주말까지 반납해야 하는 책, 요즘 제일 재밌게 가지고 노는 클래식 게임기도 포기할 수 없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엄마 아빠가 문자를 주고받고 시간을 정해 잠깐 들러 가지고 오게 하기도 하지만 (숙제는 제출해야 하니까), 더 많은 경우는 “어쩔 수 없지, 다음 주에는 꼭 기억해서 잘 챙겨" 하고 얘기하게 된다 (테트리스 BGM을 한 주쯤 안 듣게 되는 건 조금 반갑기도 하다).





매주 다른 집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생기는 상황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아이들 학교에서 선생님과 면담을 해야 하거나, 다치거나 아파서 중간에 급하게 아이를 픽업해야 하는 경우가 그렇다. 종종 그 주에 함께 지내지 않는 부모에게 연락이 가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어느 쪽이든 더 빠르게 연락이 닿거나 학교에 방문할 수 있는 쪽이 기꺼이 대응한다. 그거야 아무튼 내 자식이니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열 살짜리 아이가 “아빠 집에서는 하루에 한 시간씩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게 해 주는데…” 하는 식으로 비교를 시작하거나, 무슨 이유로든 나에게 엄청 혼난 다음에 “아빠 집으로 가버릴 거야" 하고 현관문을 향해 몸을 돌리면 그건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전남편과 나는 굉장히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다. 우리가 한 집에서 지내던 14년의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나는 더 부드럽고 잘 받아주는 엄마의 역할, 전남편은 주로 엄하고 때로는 욱하는 아빠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한 집에서 같이 지내는 동안 ‘부모’라는 단어는 하나의 덩어리였다. 평소에는 자상하던 엄마가 표정을 굳히고 목소리를 높여 강경한 반응을 보이면 평소에는 더 화를 잘 내던 아빠가 갑자기 상냥해진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하나의 유기체가 되었고 그건 모두에게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아이들과 나, 셋이서 지내기 시작한 첫 주에 깨달았다. 더 이상의 역할분담은 없다는 사실. 나 혼자서 부드럽고 자상했다가 엄하고 화를 냈다가 지치고 힘든 순간에 바통 터치할 사람 하나 없이 나 자신을 도닥여야 는 현실이 ‘그럴 줄 몰랐냐'는 표정을 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어로는 엄마와 아빠를 합쳐야 ‘부모'가 되는데, 이제는 나 혼자서 ‘부모'가 되어야 했다. 내가 어떤 모습의 부모인지를 끝에서 끝까지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고 고민 끝에 아이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항상 자상하고 상냥한 엄마의 모습만으로는 이제 사춘기를 한창 겪는 중2와 걸핏하면 형에게 주먹과 발차기가 동시에 날아가는 만 열 살의 아들들을 감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어렵게 받아들였다.





상냥한 엄마 페르소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서 혼자서도 부모의 역할을 끝에서 끝까지 할 거라는 포부를 다졌다. 규칙을 정하고 단호하게 한계선을 그어주어야지, 다짐하며 육아책을 다시 뒤적이고 오박사 님의 유튜브 비디오를 찾아본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사소한 걸로 꼬투리를 잡 열 살 아들과 치사함을 주고받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다.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하고 좌절을 거듭한다.


둘째와 매일 싸우던 주에 속상함을 참지 못하고 양손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데 첫째가 다가와서 조언을 해 주었다. 지난주에는 아빠가 정말 엄하게 굴어서 동생이 너무 무서워 말도 제대로 못 꺼냈는데, 엄마 집에 와서는 분위기가 더 편하니까 더 막무가내로 구는 것 같다고. 엄마도 아빠만큼 엄하게 굴지 않으면 얕잡혀 보일 거라고. 아빠도 항상 엄마가 너무 엄하지 않아서 문제라고 했다는 얘기까지 조심스럽게 늘어놓는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 그렇구나. 내가 아무리 혼자서 아등바등거리며 부모역할을 정의하려고 해 봐도, 아이들에게는 격주로 다른 현실이 있다. 공동육아라는 환경에서 아이들이 겪는 현실의 삶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내가 전전긍긍하는 동안, 아이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였겠구나.


열 살 아이가 바라는 것은 그저 부모의 관심과 사랑과 안전함을 느끼는 것이었을 텐데, 바른 부모 역할에 눈이 멀어 눈앞의 아이를 놓쳤다는 반성이 들었다. 전남편과 누가 더 엄한 부모인지를 두고 경쟁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 나는 그 말을 듣고 일어나 아직도 씩씩거리며 화를 내고 있던 둘째에게 다가가 말없이 꼭 안아주었다.





그날 나는 둘째에게 눈을 맞추고 얘기했다. 엄마와 너는 한 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이니까, 우리가 같이 살려면 기본적인 존중은 반드시 필요해. 나는 너를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싶고, 마찬가지로 너에게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싶어. 소리 지르고 싸우기 시작하면 엄마는 너무 힘들어. 가능하면 말로 해결하자. 대신 비교하지 말고, 가정하지 말고, 네가 원하는걸 정확하게 얘기해줘. 엄마도 그렇게 할 테니까. 그다음에 중간지점이 뭔지를 찾아보자.


우리가 뭘 가지고 싸우고 있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핸드폰 게임을 30분 더 하고 싶었거나 유튜브를 10분 더 보고 싶었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런 주제를 가지고 서로 울면서 소리 지르는 싸움까지 가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둘째가 원하는 것은 일상의 지루함에서 탈출하는 것이었고, 내가 원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것이니 중대한 사안임에는 틀림없다.


평소의 내 스타일로 담담하게 얘기하자 둘째는 한 번에 진정하고 대화를 시작했다. 몇 시간 동안 소리 지르고 화를 낸 것이 무색하게 단번에 상황이 종료되었다. 그 한 번의 대화로 뭔가가 대단히 달라진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그날을 계기로 바른 1인 부모의 환상을 일찍 내려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다음부터는 아이들에게 엄마도 사람이야, 원하는 게 있고 하기 싫은 것도 있지, 하고 대놓고 얘기하게 되었다. 나에게 존중을 요구하는 만큼, 나도 아이들을 나와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고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공유하는 절반의 시간 동안, 나도 아이들도 온전하게 함께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온전한 관계라고 해서 뭔가 대단한 기대치를 두는 것도 아니다. 짜증이 나면 참다가 한 번에 버럭 폭발하지 않도록 미리 싫다는 의사표현을 하거나, 서로의 감정을 무시한 것을 깨달은 순간에 미루지 않고 바로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포옹을 잊지 않는 정도다. 그러다가 또 소리를 지르고 싸우면, 서로 악수를 하고 화해를 하고 다시 안아준다. 항상 그럴 수 없다면, 그럴 수 있을 때 최대한 그렇게 한다.


어제저녁에는 식사를 마치고 입가심으로 먹던 캐슈넛이 딱 하나 남았는데, 둘째와 내가 동시에 손을 뻗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양보를 거듭하다 결국 캐슈넛을 반으로 쪼개 나눠 먹었다. 그걸로 충분히 온전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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