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대원과 함께했던 시간들

소대장의 기쁨과 슬픔

by 수진

나는 5년의 군생활 가운데 3년이 넘는 시간을 소대장의 직책으로 지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부대는 중령 지휘관 휘하의 크지 않은 부대이기에 보직이 한정적이었고, 중위급의 참모 자리가 하나 있었으나 장기 복무자가 아닌 나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 부분에 있어서 크게 불만은 없었으나 같은 임무를 여러 해 동안 수행해야 하는데에 따른 복무 염증은 있었다. 부대 이동은 대부분 대위급에서 이루어지니 진급 시까지 당시 부대에서 소대장 직책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100여 명의 중대원으로 이루어진 탄약중대의 탄약 소대장과 선임 소대장인 관리 소대장 그리고 대위 진급 후 대리 중대장 임무까지 두루 수행한 나의 군 생활에서 소대원의 존재는 떼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군인'이라는 직업의 큰 특수성을 꼽는다면 정체성의 전환을 꼽을 수 있겠다. 대부분의 직업들은 업무시간에 종사할 때 잠깐 그 직업의 옷을 입고 일하다 업무를 마치면 개인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만, 군인의 경우 직업군인이 된다는 것은 그 사람 자체가 군인으로 바뀐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군인으로서의 업무도 잘 해내면서도 개인의 삶과의 균형을 잘 맞추는 분들도 많았으나, 요령이 부족하고 미숙했던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동안 살아온 나 개인은 없어지고, 오로지 육군 장교로써의 나만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 스스로를 괴롭혔다. 일과시간이 끝나고 업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부대를 떠나왔음에도 머릿속 한편으로는 부대 일과 소대원들 생각에 사로잡혀 지냈다. 끝나지 않는 부대 업무에 대한 걱정, 소대원에 관한 걱정, 다음날 수행해야 하는 업무 생각 등등 온갖 생각에 사로잡혀 퇴근해 와서도 머릿속이 복잡한 경우가 많았다. 내가 객관적으로 훌륭한 소대장이 었거나 사명감이 충만했기에 그랬던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미숙했으나 이상은 높았고, 일을 못한다는 평가를 받기 싫었고, 그러기에 잘하고 싶었으나 몸은 따라주지 않았고, 그러한 내 모습을 숨기기 위해 날을 세우고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주변을 힘들게 했던 소대장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일을 했을까? 다음은 내가 소대장 시절 맡았던 업무들이다.

- 소대원 관리(상향식 일일결산, 소대원 상담, 전입신병관리, 상담일지 기록 등 군생활 전반에 관한 관리)

-탄약고 관리(제초작업, 탄약보급관리, 탄약 잔고 확인, 탄약고 지역 사무실 관리 등)

-각종 훈련 참석(유격, 혹한기, KRFE, 창전 술, 동원훈련 등) 및 행군 업무

-당직근무

-근무지 원선 탑

-간부 순찰

-병기본 교육

-주특기 교육

-중대장 보좌

-기타 업무(각종 검열 혹은 상급자 방문 준비에 따른 창장님 지시사항 수행 등)

위의 업무들은 주기적으로 때로는 매일 반복되며, 24시간 연중무휴인 군부대이기에 결코 끝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 많은 소대장의 업무들 가운데 내가 가장 선호하던 업무는 소대원 상담이었다. 자판기 커피나 차 한잔 곁들여 소대원과 잠깐 대화하는 시간이 나는 좋았다. 당직근무 간에 여유를 내거나,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 전 여유시간에 휴가를 앞둔 소대원이나 고민이 있는 소대원 갓 전입 온 신병 등 소대원들과 함께 대화했던 시간은 나에게 위로와 온기를 건네주었다. 비록 '상담일지 기록'이라는 업무의 옷을 입어야 했으나 모든 이야기를 기록할 필요는 없으므로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20여 명 남짓한 나의 소대원들과 대화하며 각각 지닌 삶의 무게를 느끼고, 그들이 품고 있는 비전을 보고, 지금 겪고 있는 고민 등을 나누며 나는 그들과 함께 성장했고 때로는 위로를 받았다. 그 시간은 나에게도 귀한 시간이었다. 물론 늘 좋은 일들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도저히 해결해 줄 수 없는 삶의 고민을 안고 있는 소대원을 보며 때로는 무력함을 느꼈고, 군 생활의 어려움이나 부대 내 누군가의 마찰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 지혜로운 대처방안을 찾아주지 못하며 나의 부족함과 용기 없음을 절감했던 적도 있었다. 내무 부조리로 고통받는 사람을 보며 누군가가 밉고 배신감을 느낀 적도 있었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기에 누군가에게 미움받고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한동안 소대원들을 마음으로 멀리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가장 심리적으로 바닥까지 떨어졌던 시간에는 한동안은 누군가와 눈을 맞추는 일조차 버거울 정도로 힘겨운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결국 소대원들로 인해 존재하는 직책이었고, 결국 치유도 그 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없는 당연함을 인정해야 했다. 내가 상처로 인해 소대원들을 멀리하는 동안 누군가는 나의 관심이 필요했고 절실했던 상황이었기에 나는 가까스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위로 진급했고 전임 중대장의 공석으로 인한 한 달간의 대리 중대장 임무를 끝으로 부대를 옮기게 되며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끝을 맺었다. 이제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그들이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늘 그들이 평안하기를 바라고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다 반갑게 인사 나눌 수 있기를 바라본다.

keyword
이전 05화군대에서의 어느 평범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