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 당직근무의 추억

나의 야전생활 적응기

by 수진

처음으로 군 간부 생활의 어려움을 깨달은 일은 당직근무였다. 이때 느낀 어려움은 업무적인 측면보다는 부대관리의 어려움이었다.

당직근무는 24시간 돌아가는 부대의 관리 공백이 없도록 하기 위해 부대장님과 일신상의 이유(질병, 임신 등)로 안정을 요하는 인원을 제외한 부대 간부 전원이 편성되는 임무로 부대의 상황유지가 24시간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휘통제실 및 각 중대, 위병소에서 주, 야간으로 근무를 서는 일이다. 나는 소속 중대 및 직급에 따라 탄약중대의 당직사관으로 근무 편성이 되었고, 당시 근무하던 탄약부대의 1,2 탄약중대는 통합 막사를 쓰기에 근무 간 두 개 중대를 관리하게 되었다. 근무의 평균 빈도수는 주 1회 정도였다. 한 달을 기준으로 평일 근무 3회, 주말근무 1회, 금요일 근무 2달간 1회 정도로 편성되었다. 평일 근무의 경우 평일 일과가 종료되는 17:00을 기준으로 근무에 투입되고 다음날 간부들이 출근하는 08:00에 근무가 종료되며, 주말 근무의 경우 아침 09:00부터 다음날 당직근무자 혹은 중대 간부들이 출근하는 익일 08:00까지 근무시간이 편성되므로 주 1회 정도 밤을 새워야 하는 꽤나 체력적으로 고된 일정이었다.

소대장 부임 후 첫 한 달은 부대 적응 기간이기에 부대 파악도 하고, 선임 근무자와 동반 근무도 서보는 등의 시간을 갖고, 한 달 후 비로소 단독으로 중대 당직사관의 임무를 맡은 뒤 나는 곧 난관에 부딪쳤다. 첫째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었다. 나는 학교 기관에서 엄격한 사관후보생 훈련을 받고 갓 임관한 장교였다. 훈육장교님들은 매섭고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야전 생활에 적응해 버린 중대 인원들의 모습은 부족함이 많이 보였다. 전투복을 입은 품새, 걸어가는 걸음걸이, 점호 간에 이불 정리 및 관물대 정리 상태, 전투화 손질 상태 등등.. 당시 야전의 현실을 모르던 나는 후보생 시절 교육받았던 대로 중대의 모습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임장교의 패기로 가득 차 있던 나는 오래지 않아 현실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완곡한 어조로 바로잡아 가기 시작했지만 끝이 없었고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당위성에 관한 의문이 들었으며, 무엇보다 내가 업무에 찌들어 가며 체력의 급격한 고갈을 느꼈다. 평일 당직근무의 경우 주간에 종일 탄약고 현장 지역에서 근무하고, 숙영지에 돌아와 씻을 새도 없이 바로 완장을 차고 야간에 밤샘 근무를 서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열정적으로 당직 근무를 서야 하는 에너지가 있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나는 미움받는 것도 싫고 싫은 소리를 잘하지는 못하는 성향이었다. 과연 잦은 지적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렇다고 직책상 아니다 싶은 일은 넘어가지 못하므로 나중에는 아니다 싶은 일이 발견될까 봐 걱정될 지경에 이르렀고 나는 그러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병사들과도 함께하며 친분이 생기자 자꾸 지적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쉽지 않음을 느꼈다. 나는 과하게 규범을 어기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넘기며 근무자의 자리를 지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두 번째 난관은 조금 더 어려운 일이었다. 자대 근무 직후 선임병의 부당한 폭언, 욕설로 중대 내 내무 부조리 건을 겪고 마음고생을 했던 내게 비슷한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근무 간에 잘 살펴야 했고, 순찰을 생활화해야 했지만 여군이었던 내게 제한되는 부분이 있었다. 환복 시간을 피해서 생활관을 방문해야 하고 샤워실 화장실 등은 점호 간에 청소상태 점검 차원에서 방문할 뿐 수시 순찰은 제한되므로 체계적인 숙영지 순찰 여건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명확한 기준이 세워져 있지 않으면 무언가를 관리 감독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었다. 폭행 폭언 욕설 등의 명백한 폭력적 행위들은 철저하게 관리 감독해야 하지만 군내 계급이 있기에 벌어지는 상황들에 관한 기준도 필요했다. 예를 들어 어느 분대가 특정 청소 구역을 담당할 경우 모두가 투입해야 하는 일은 다 같이 하면 되지만, 한두 명의 손길이 필요한 일들을 후임병이 한다고 해서 그것을 부당하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문제들이었다. 군 선배에 대한 예의 차원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군대 생활을 오래 한 중대원들은 이미 나름의 연륜이 있기에 본인들이 선임병 과후임병을 섞어서 적당히 작업자를 편성해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나의 기준을 만들어 가며, 상황을 전체적으로 보고 내가 개입해야 할 부분과 넘겨도 될 부분들을 판단하며 조금씩 야전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당직근무는 이튿날 아침 점호를 끝으로 다음 근무자 혹은 중대 간부의 출근으로 근무 교대하고 종료되는데, 내가 군 생활하던 초기에는 당직근무자에게는 다음날이 평일인 경우 오전 휴식만이 보장되었다. 근무 교대 후 여자들은 샤워시설이 따로 없기에 화장 시에서 간단히 세안 정도만 바치고 휴게실에서 09:00-12:00까지 잠시 눈을 붙이고 점심을 먹고 13:00부터 정상적으로 오후 일과에 투입되었다. 이때의 오후 반나절은 눈을 뜨고 일을 하고 있어도 꿈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빈속에 맥주 500cc 한잔을 들이켰을 때의 딱 그 몽롱한 기분이라 표현하면 적당할까. 그 상태로 일하며 퇴근시간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퇴근하면 너무 피곤해서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설상가상 당직근무 다음날 훈련이 시작되거나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는 휴식도 없이 바로 훈련에 투입되어야 했다. 다행히 내가 대위로 진급할 즈음 당직근무여건도 많이 개선되어 근무자는 근무 교대와 동시에 바로 퇴근해서 하루 휴식을 취한 뒤 그다음 날 출근하도록 정책이 바뀌었고, 당직수당도 1회 기준 1만 원 정도 지급되었다.

군 생활에 관한 글을 쓰는 요즘 다시금 군 생활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힘들었던 당시에서 마무리된 나의 시간들과 그 속의 나를 보듬고 다시금 그 시간들을 아름답게 채색해 갈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것이 이 글을 쓰는 나에게 주어지는 선물일 것이다. 끝으로 이 글은 어디까지나 나 개인의 군 생활에 관한 글임을 밝혀둔다. 이것은 모든 군인의 이야기가 아니며 단지 나의 이야기이다. 저마다 각각의 마음가짐과 방법으로 군 생활에 임하고 있을 그들에게 행여 나의 개인적 경험담이 누가 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순간에도 땀 흘려 열심히 업무에 임하고 있을 그들에게 진심으로 응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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