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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硏修), 그리고 요즘.

by 수진 Mar 22. 2025

 일터의 작은 파티가 있었다. 대외적으로 연수(硏修)라 공지되었지만, 단합대회적 성격을 띤 행사였다. 익숙했던 개념과는 조금 달랐던 게 반기 1회 정도 직원+가족들이 모여 함께 식사하는 자리로 식사+음료+주류가 계속 제공되지만, 공간을 종일 사용할 수 있으므로 13:00시에 시작해 종료 시간이 무한대로 펼쳐졌다. 참석은 자율이고, 자유롭게 즐기다가 편한 시간에 돌아가는 형태로 격식 없는 편안한 분위기와 맛있는 식사가 메리트 아닐까 추측해 본다. 나 역시 참석여부를 고민했지만, 가족들과 함께 참석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이런 형태의 모임은 처음이라 일본사회에 관한 개인적인 호기심이 컸다.

 일터의 파티는 그동안 참석해 본 일본의 행사(아이 학교 행사나 외국인이 대부분인 남편 직장 모임)와는 결이 달랐다. 자유롭고 떠들썩한 날것 그대로의 일본사회의 모임은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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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모는 예상보다 컸다.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의 사람들이 50여 명 모였을까. 

 전체적인 진행방식은 겪었던 한국의 회식 자리와도 비슷했다. 매니저의 건배사를 시작으로, 매니저 사장 등의 운영진은 각 테이블을 다니며 감사인사와 대화를 나누고, 자리가 무르익으면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다니며 대화를 나누고 어울리는 모습. 그럼에도 자리가 불편하지 않았던 이유는 느껴지는 환대의 기운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심을 전하는데 사실 말은 필요치 않을지 모른다. 상대의 눈빛에서 표정에서 이미 알 수 있기에. 

 참석자 중 가장 어렸던 아이는 시간이 지나며 지루해했고, 남편은 일본어가 능숙한 편이 아니라 우리 가족은 조금 일찍 일어나기로 했다. 떠나는 우리를 따라 나와 문 앞까지 배웅해 주던 매니저와 동료들에게 환영의 기운이 많이 읽혀 그 마음이 오래도록 따뜻하게 남았다.   


 가끔 나는 일본 사람들에게 '귀여움'이라 할만한 요소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말하자면 그들의 귀여움은 이른바 이런 귀여움이다. 호들갑스럽지도 유난스럽지도 않은데 그럼에도 좋아하는 진심은 전해지는 귀여움. 괜히 이곳에 츤데레(ツンデレ)라는 단어가 있는 게 아니다. 딱 츤데레적 귀여움이 적합한 표현이다. 거절과 싫은 표현을 하는 데 있어서는 무척 조심스럽고 돌리고 돌려 우회적인 표현을 쓰지만, 좋아하는 진심까지는 굳이 숨기지 않는 게 느껴져 그 부분에서 나는 종종 이들이 귀여움을 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이들은 대체로 손이 큰 편은 아니라 일터에서 오가는 간식에도 귀여움이 담겨있다. 주는 이도 받는 이도 부담 없을 정도의 크기. 딱 그 정도의 간식을 귀여움을 담아 주신다.  

귀여움을 담아귀여움을 담아

 나 역시도 부담 없이 주고받자는 개인적인 룰은 있지만, 번번이 나는 물론 아이까지 신경 써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맛없을까 봐 무섭지만) 용기를 내어 토스트를 만들어 봤다. 버터에 식빵을 굽고 속에 양배추를 넣은 계란지단과 치즈를 올리고 케첩을 살짝 뿌리고 치트키로 설탕까지 살살 뿌린 길거리 토스트를. 버터와 설탕이 들어가면 중간은 간다는 용기로. 그리고 이들은 먹어본 적 없는 토스트일 것 같아서. 

브런치 글 이미지 7

 결과는 성공. 단짠 요리의 나라답게 단짠의 공식은 성공적으로 통했고, 다들 많이 좋아해 주셨다.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반년이 되어간다. 확신 없이 어쩌면 다소 급작스럽게 시작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이곳을 수긍하고 좋아하게 된 것에는 함께 일하는 분들의 존재가 컸는데 지금도 그 부분에서 자주 의미를 느끼곤 한다. 교류, 배움, 웃음, 배려가 있는 곳. 

 그리고 또 하나 의미 깊은 부분을 꼽자면 나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감각이다. 남편 관련 모임과 아이 관련 모임에 참석해 온 내가 어느덧 나의 모임에 가족들을 대동하게 된 것에 감회가 조금 특별했다. 이곳에서 삶을 펼치고 일을 하고 나의 이름으로 일본 생활에 관한 글을 쓰고.. 그냥 이 시간들을 종종 새롭게 바라볼 때가 있다. 거창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의 소리는 내가 아니깐.  

 앞날은 모르지만, 앞으로 삶은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바뀌겠지만 그럼에도 '함께'라는 감각이 강한 현재를 이쯤에서 한번 기록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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