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결혼식

2013년 3월 10일

by Ding 맬번니언

좋은 일이 있는 날일수록 꼭 사소한 사고가 발생하는 듯하다. 멀쩡했던 에어컨이 나의 웨딩 데이를 맞이해 하필 오늘 고장이 났다. 어제부터 날씨가 유독 더워져 에어컨의 도움이 절실했는데 야속하게도 고장이 나버린 에어컨 때문에 온도는 40도 가까이 오른 것처럼 너무 더웠다. 감사한 점은 그런 상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스티븐의 결혼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해 주셨다는 것이다.

게이로서 결혼을 한다.

어쩌면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 될 것이다.


스티븐과 나는 식장에 가기 전에 정장으로 갈아 입었다. 예식복을 입은 스티븐 모습은 마치 <007> 영화에 나오는 ‘다니엘 크레이그’ 같이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그 날도 이렇게 매력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단 숨에 내 시선과 마음을 설레게 한 사람, 그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다니, 이건 내 인생 가장 큰 행운임에 틀림없다.

한국에 살 때는 나는 결혼식에 대한 환상이라 곤 일절 없는 게이였다. 게이에게 결혼은 꿈이다. 한국이라는 성소수자에 보수적인 나라에 태어나면 더더욱 그런 생각은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내 이름이 적힌 결혼식 초대 카드를 바라보면서도 이런 날이 내게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내 가족이 없는 결혼식. 하객의 대부분은 스티븐의 가족과 친구들이었다. 나의 가족과 하객은 거의 없다. 나의 가족들은 이 결혼식을 결사 반대했다. 결혼은 남성과 여성이 하는 것이며, 마음을 바꾸고 한국에 돌아와 일반 여성과 결혼하기를 끝까지 고집하는 전형적인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이기 때문에 참석을 설득하지 못했다. 내 가족들은 내가 게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 주변에 많은 게이 친구들이 있지만 그들 중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커밍아웃을 하고 가족들이 받아들여주지 않았을 때 받는 상처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기 때문이다. 게이라 할지라도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에게 가장 이해 받고 싶은 마음이 다른 것이 아닌데 게이임을 밝힌 것만으로 가족을 내버린 이기적인 사람처럼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의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결혼식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이 내가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선택이 후회되지 않으며, 이 결혼식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이유는 오로지 내 앞에 서 있는 스티븐이다. 스티븐은 한국의 가족들이 내가 게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주지 않아 힘들어 할 때,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 내 옆을 지켜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이 결혼식에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웃고 있는지도 가장 잘 이해해주고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기에 나는 이 결혼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오랫동안 결혼에 대해 ‘할 수 없는 것’에 가깝다고만 생각했었다. 물론 그 이유에는 내가 게이라는 것도 한 몫을 차지했지만 그 이전에 결혼을 해 평생에 걸쳐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는 것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도 너무 어려운 일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스티븐을 만나고, 스티븐에 대한 내 사랑이 그저 스치고 지나가는 가벼운 감정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어느 순간 스티븐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확신했을 때, 나에게 스티븐과의 결혼은 더 이상 어렵지도, 불가능하지도 않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과 하자.’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또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자 행복인지 오늘에서야 실감되기 시작한다.


2006년 3월 10일

2013년 3월 10일

7년 전 오늘, 우리는 만났다.


새삼 결혼이라는 절차가 얼마나 특별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기쁨, 앞으로 혼자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도 가족이 생겼다는 확신이 나를 너무나 행복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은 가족을 선택하는 일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을 가지지만 모든 가족이 행복과 안락함을 상징하는 단어는 아니다. 나는 한 가족의 일원이었으나 언제나 부모와 자식,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내 존재와 우리의 관계에 의문을 품어왔다. 부모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어 선택할 수 없다. 부모에게는 자식을 낳을 지 말지, 키울지 말 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자식은 어떤 부모 아래에서 태어날 지 선택할 수 없다. 그저 태어나면 내게 정해진 부모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어떤 부모와 자식은 그렇게 주고, 받으려 하는 것이 같아 그런 관계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기에 늘 가족이 없는 사람 같이 불안했고, 내가 게이로서 살아가기로 결정한 이상 가족은 당연히 포기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그런 내게 가족이 생긴 것이다. ‘내가 선택한 가족’,


“우리가 만난 그날”

“처음부터 전 얼어붙어서 숨을 참았죠”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서 쉴 곳을 찾고 있었어요”

“기억의 색깔들과 약속들”

“어떻게 용감해질 수 있을까요?’


우리의 결혼식 곡은 Christina Perri에 A Thousand Years이다. 음악과 함께 오늘 결혼식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보여 줄 내가 준비 한 짧은 나와 스티븐의 인생 비디오(MACKLEMORE & RYAN LEWIS - SAME LOVE ) 가 상영되며 결혼식은 시작되었고 곧 우리의 입장 시간이 다가왔다.

수없이 다른 이의 결혼식에서 이 길을 보았는데, 이 길이 시작되는 자리에 서서 보니 처음 든 생각은 ‘어떻게 실수 없이 걸어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불안감이 엄습하려고 할 때쯤 나는 내 옆의 스티븐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의 우수 어린 파란 눈에 빠져들어갈 것만 같았다. ‘이 사람과 함께 걷는 길’ 나는 이 사람과 결혼을 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더 이상 길이 아득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 사랑에 대한 확신,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봐주는 스티븐의 사랑에 대한 확신, 누가 이런 확신을 느끼며 결혼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잡은 이 행운을 놓고 싶지 않은 듯 스티븐의 손을 꼭 잡고 함께 입장을 했다.


“시간은 당신의 마음을 제게 가져왔고, 전 당신을 천년 동안 사랑해 왔어요.”

“그리고 천년을 더 사랑할 거에요”

“한걸음 더 가까이”

“한걸음 더 가까이”

입장 도중 스티븐의 어머니께서 갑자기 포옹을 해주셨다. 한 손은 서로를 잡고 다른 한 손은 하트 모양의 풍선을 들고 입장하던 중이었기에 순간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하지만 이내 몸으로 느껴지는 스티븐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며 함께하지 못한 한국 가족들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듯 했다. 내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이 따스함을 기억하며 살아가자. 나는 속으로 그런 다짐을 했다.

아주 약간 길어진 입장 시간을 뒤로 하고, 식은 계속 진행되어 스티븐과 나는 서로 반지를 나눠서 끼우고 혼인 서약서를 읽고 소피아가 축가를 불렸다. 모든 순서를 마치고 마지막 행진을 하기 위해 하객석을 향해 돌아섰을 때, 테이블 마다 박수와 축복을 보내주는 가족, 지인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너무 고맙고 반가운 얼굴들이었기에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눈에 담아 잊지 않기 위해 애썼다. 하객의 얼굴들이 테이블 마다 자리한 가족과 지인의 얼굴을 살피며 감사하고 반가웠다.

우리는 결혼식이란 마음껏 먹고, 듣고, 마실 수 있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고 그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레스토랑 결혼식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신중을 기해 레스토랑을 골랐고, 우리의 길을 축복해주는 이들에게 어느 때보다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기에 피로연까지 스티븐과 함께 하나하나 많은 신경을 기울여 준비했다.

Japanese Degustation Menu(일본식 코스 메뉴)

Chef Ryo Northfield(요리사 료 노스필드)

Canape’s (카나페: 작은 비스킷이나 빵 위에 치즈·고기 등을 얹은 음식)

Oyester quinoa shushi, yuzu kosho Tuna tartare, cauliflower cream,potato crisp

(굴과 퀴노아(남미에서 식용이나 술 제조용으로 기르는 작물 )를 사용해서 만든 초밥, 유자 고쇼를 곁들인 참치 타르타르, 크림으로 요리된 콜리플라워, 바삭바삭한 감자)


Entrée(만찬에서의 주요리)

Orange & kombu cured salmon, Granny Smith & potato salad, wasabi, carrot vinaigrette

Fish(오렌지와 다시마로 숙성한 연어, 그래니 스미스 사과&감자 샐러드, 와사비, 당근과 비네그레트 드레싱(식초에 갖가지 허브를 넣어 만든 샐러드용 드레싱)를 곁들인 생선요리)

Crispy Kataifi whiting & scallop, zucchini pasta, miso(바삭한 카타이피(가느다란 실타래 같은 패이스트리) 휘핑 & 가리비, 호박을 사용한 파스타, 미소습)

Meat(고기요리)

Soy slow cooked Beef short ribs, truffled creamy potato(간장에 천천히 요리한 소갈비살, 송로로 맛들인 크림 감자요리)


Dessert(후식)

Yuzu & dark chocolate parfait, parfait, peanut butter crunch, cacao snow(유자&다크초코파르페, 파르페, 땅콩버터크런치, 카카오스노우)


테이블 세팅, 장식, 테이블 네임 카드, 음악, 한 코스 한 코스 신중하게 우리가 직접 고른 음식, 꽃 장식은 스티븐의 지인이 결혼식 축하선물로 직접 해 주었다. 나는 피로연에 한복을 따로 준비해서 입고 들어갔다. 피로연은 아름다운 재즈 밴드의 노래를 들으며 레스토랑에서 시작했다. 하나 둘, 지인들이 돌아가며 나와 스티븐의 사랑과 우리의 따뜻한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며 축하의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식은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2013년 호주도 동성 결혼이 합법은 아니다.’


간혹 호주에서 결혼한 것이 호주가 동성 결혼을 허용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호주 역시 한국처럼 동성 결혼은 합법이 아니다. 다소 보수적인 분위기이기 때문에 언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호주 사람들의 사회적 인식이나 분위기 역시 게이들이 왜 결혼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게이들은 성적으로 문란하다.’ 라는 선입견 때문에 결혼을 한다 해도 이성간의 결혼처럼 영원한 사랑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라고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와 스티븐의 결혼식을 축복해줬던 사람들처럼 편견 없이 동성 결혼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판적이고 이해할 수 없다며 바라보는 사람도 많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도 결혼이 인생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관문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방식이 꼭 결혼이 아니라고 하여 그 사랑이 진실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반대로 게이라고 하여 결혼을 할 수 없다거나, 결혼의 신성함이 다른 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혼은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며 결혼을 통해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져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지금의 호주 법으로도 게이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게이 커플은 입양이 불가능하며 상대가 병원에 입원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놓였을 때 보호자로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법적으로 남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다름이 있고, 그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틀렸다 말하는 생각이 모여 사회적 편견을 만들어내며, 편견은 차별을 정당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그 차별로 인해 누군가는 슬픔과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결혼을 선택했다. 나는 부모가 되고 싶었고, 미래의 아이 행복이가 오기 전에 결혼을 통한 가정을 만들어놓고 싶었다. 법이 허락할 때까지 기다리기엔 너무 기다림은 길었고, 기약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현실의 벽을 넘어 결심한 우리의 결혼식은 법적으로 효력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우리의 시작을 축복해주고 인정해준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결혼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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