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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문:싱가포르

2013년 4월 19일

by Ding 맬번니언 Oct 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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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허니문의 마지막을 싱가포르에서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에서 보내기로 했다. 공항에서 내려 호텔로 향했다. 싱가포르는 작은 도시국가여서 택시를 타면 어디든 쉽게 이동이 가능한 나라이다. 우리는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에 도착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어 놓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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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은 쌍용 건설이 지은 호텔로Tower1,2,3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세 개의 호텔건물이 마치 하나의 배를 받치고 서 있는 것처럼 꼭대기 층에 거대한 배 모양의 라운지 풀장이 유명하다. 그 유명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조만간 싱가폴의 상징이 ‘머라이언 상’ 에서 이 호텔로 바뀔 수 있다는 루머가 돌 정도이니 인스타그램 등 에서 사람들이 올린 싱가폴 여행 사진만 보아도 이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필수적으로 올라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사진들을 싱가폴 방문 전부터 수없이 보아왔고, 그래서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에 묵기로 결정한 후 기대감이 점점 높아져갔다. 하지만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 막상 호텔 방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나는 엄청난 실망감에 휩싸이고야 말았다. ‘김이 세다.’ 라는 표현이 딱 맞는 상황이었다. 호텔방은 넓었지만 나와 스티븐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호텔방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랑 전혀 달랐다. 화려한 겉모습과 다르게 내부의 인테리어는 우리가 평소에 접해왔던 고급스러운 호텔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통창으로 펼쳐진 풍경은 만족스러웠지만 바닥의 카펫과 벽지까지 우중충한 색상에 룸에 비치된 가구나 가전 제품들도 방이랑 따로 노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랑 거리가 멀었다. 사진에서 느껴지던 최고급 호텔의 분위기나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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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이 호텔을 찾으며 가장 기대했던 수영장이 남아있지 않은가! 우리는 서둘러 짐을 풀고 수영을 하며 여독을 풀기로 했다. 이 호텔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만들어준 수영장은 호텔 57층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막상 올라가 보니 정말 이렇게까지 큰 수영장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57층에는 수영장과 함께 전망대가 있는데 수영장은 투숙객들만 이용이 가능하지만 전망대는 별도로 입장료를 지불하면 구경이 가능해 늘 시장처럼 사람이 붐빈다고 한다. 전망대 자체가 싱가폴 관광객의 필수코스처럼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운영하면 호텔 측에서는 호텔이 유명세를 더하는 데에도, 부수적인 전망대 입장료 수익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호텔 투숙객의 입장에서는 비싼 호텔 투숙비를 지불했음에도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즐기며 쉴 수 없다는 점이 ‘숙소’로서는 단점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물론 기대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나는 최대한 멋진 풍경과, 세계 최고 수준의 수영장을 마음껏 즐기며 싱가폴에서의 스티븐과의 시간을 만끽하기 위해 노력했다. 싱가폴 여행 중에는 레이디 가가 콘서트를 보기 위해 타운2에서 지내며 한국 연예인을 보게 되는 등 허니문 여행기간 중 가장 많은 지출을 기록했지만 그만큼 좋은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브런치 글 이미지 6

‘오늘이 허니문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어느 곳을 여행하든, 떠나는 날 비행기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면 오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느껴진다. 떠나는 아쉬움,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실망감, 다시는 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슬픔이 마치 여행지에서 보낸 모든 좋은 것들을 두고 떠나는 사람 같은 기분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번 여행은 허니문 여행이기 때문인지 결혼을 하고, 여행을 떠나온 모든 시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게이로 태어났기에 결혼, 허니문은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이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순간 불평등과 불합리함은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게이로 살지 않으면 되잖아?’


일반 사람들은 게이로 살아가는 것이 마치 선택의 문제인 것처럼 그런 질문을 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게이로 살아가는 것이 선택의 문제이며, 설득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지만 이것은 선택의 문제도, 설득의 문제도 아니다. 나는 게이로 태어났으며 게이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과 허니문을 보내는 일반적인 단계를 거쳐가는 것이 일반 사람들에 비해 몇 배로 힘이 들고, 살아가는 내내 불합리함과 불평등을 감수해야 함에도 게이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혼을 했고, 허니문을 떠났다. 0%에 가깝다고 생각한 이런 행복이 나에게 왔다는 것이 지금 스티븐과 둘이 허니문을 떠나와 마리나 베이 샌즈 앞 강변을 걷는 순간에도 문득문득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만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법적 부부는 아니지만 평생을 사랑할 것을 맹세했다. 그리고 스티븐과 나 사이의 아이가 존재한다면 아이의 태명은 행복이로 하고 싶다. 태명처럼 행복하게 자라면 좋겠다라는 뜻이다.  


앞으로 행복이가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절차가 남아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미래는 행복이가 우리와 함께 살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행복이’ 행복이만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지며, 이제부터 행복이를 위해 살아가야 하는 나날 동안 잘 해내야 한다. 잘 해내고 싶다는 결심이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든다. 그 동안 참 놀기도 많이 놀았다. 이제는 그만 놀고 아이를 생각할 때이다. 아침 일찍 창이 공항으로 가야 하니 오늘은 파티 없이 조금 일찍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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