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차 심사가 있는 날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소피아와 함께 백 스테이지로 향했다. 백 스테이지는 남녀 모델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으로 한쪽 벽면에는 참가자 순서와 모델 이름표가 붙어 있었고 주위에는 잘생기고 예쁜 모델들이 디자이너와 함께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포함 여러 명의 참가자들이 다가왔다. 1차 심사는 심사위원들의 평가로 진행되면 여기서 거의 순위가 정해진다. 이후 다른 날을 정해 관객들에게 쇼를 선보인 다음 최종 시상자를 발표한다. 주최 측의 요구로 인해 심사위원들만 따로 참가자들의 옷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고 소피아 혼자 심사를 받으러 들어가게 되었는데 심사를 다 받은 후 소피아가 나와 나를 보고 웃는 것이 아닌가?
“심사위원들이 이곳 저곳 엄청 자세히 봤어”
“그럼 망한 것 아니야”
“아니야, 심사위원들이 엄청 놀랬어”
“무슨 말이야?”
“이 사람들도 네오 프렌 소재로 만든 드레스는 처음 보는 것이라서 엄청 신기해했어”
“그럼 기대해도 좋을까”
“신기해하기만 하고 또 모르지. 배고파! 심사 때문에 나 오늘 아무것도 안 먹었어”
“고마워 소피아”
나와 소피아는 근처 식당으로 가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2014년 9월 12일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패션쇼가 열릴 시간만을 기다렸다. 1차 심사가 며칠 전에 끝나고, 드디어 오늘 쇼와 결과가 발표될 것이다. 첫 패션대회 참가였기에 수상에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패션쇼에 이어 처음 패션 대회에 나간 것이었기 때문에 이 순간 자체로 꿈처럼 설레고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았다. 다행히 호주 정부와 태국 정부의 합의가 잘 이뤄지고 이후 별다른 이슈가 발생하지 않아 행복이에게 또 다른 위험 없이 무사히 행복이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편안한 마음으로 스티븐과 함께 자리에 앉아 패션쇼 심사 결과를 기다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음이 편안해서인지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다른 디자이너들의 모습도 이제 눈에 들어왔다. 나는 처음이라 긴장된 상태로 경직된 체 쇼를 관람했지만 다른 디자이너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모델의 옷 매무새나 화장 등을 고치고 도와주고 있었다. 이런 게 경험의 차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 갑자기 스티븐이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긴장감에 두 다리를 덜덜 떨고, 와인을 물로 착각하고 벌컥 벌컥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등록했던 부분의 패션쇼 대회가 시작되었다.
온통 긴장감으로 가득 차 어떻게 쇼를 보았는지 정신이 없어질 때쯤, 쇼가 끝나고 시상식이 남았다. 차례 차례 상장과 디자이너의 이름이 호명되어 영혼이 반쯤 나간 것처럼 듣고 있을 때쯤, 갑자기 내 이름이 불렸다.
‘1등 비렐 영’
‘방금 뭐라고 말한 거지? 내가 잘못 들은 건가? 1등? 누가? 내가?’
스티븐과 모두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들렸지만 모든 것이 마치 이 세계에서 들리는 것처럼 웅웅 거리듯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의식에 이끌리듯 시상대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시상자가 내게 상패와 상금을 건네주는 순간, 그제서야 마치 최면에서 깨어난 것처럼 제정신이 돌아왔다. ‘내가 1등이라니!’ 순간 하늘로 몸이 솟구치는 것 같기도, 너무 놀라서 땅에 털썩 주저앉아버릴 것처럼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도 같았다. 그 순간의 감동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지난 36년 인생에서 이런 순간은 정말 처음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패션으로, 내 디자인으로 1등이라니, 내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니 한 번도 가져본 적 없었던 자신감과 자존감이 지금 이 순간 모두 채워지는 것 같은 환희가 느껴졌다.
‘나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야.’
온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다. 나는 비난 받고, 외면 받고,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라고, 이렇게 내 힘으로 무언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외치고 싶었다. 그 동안 살아오며 내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져 참을 수 없었던 모든 슬픔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호주에 오고, 패션을 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내 힘으로 내가 가장 행복해질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