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토요일이다" 오늘만은 행복이 일은 잠시 내려 놓고 싶다. 지금 내 힘으로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을 계속 생각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지난 몇 달, 아니 내 인생에서 이 날만을 위해 온 힘을 쏟은 만큼 최선을 다해 패션쇼에서 나의 기량과 열정을 보여주고 싶다. 내 컬렉션이 세상에 처음 선보이는 날, 이런 날이 올 수 있으리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저 나를 토닥이며 잘 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정말 고생했다고. 너는 포기하지 않았어 그것로 충분하다고…
‘내 첫 패션쇼’
특별한 날이니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고 나는 일행들과 함께 타운하우스에 도착했다. 디자이너석은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VIP가 된 것 같은 대접을 받으며 나는 패션쇼를 즐기기 시작했다. 쇼가 끝나자 여기 저기서 최고의 컬렉션이라는 칭찬과 환호가 들려왔다. 요 몇 달 동안 가미 사건 이후 얼마나 마음에 상처가 컸는지, 그 동안 온통 헤집어진 가슴이 조금씩 다시 따뜻함과 보람으로 채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쇼를 준비하느라 밤잠을 설치고, 고민하고, 열심히 만들어놓고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를 여러 번, 무사히 쇼를 치를 수 있을지조차 스스로 장담할 수 없었다. 이전에는 일단 내옷을 패션쇼를 통해 대중들에게 보여줄 수만 있다면 머릿속에 있는 모든 구상과 디자인을 다 쏟아 부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준비과정에 들어선 이후부터는 창작의 고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 절감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쇼를 무사히 마쳤을 때, 나는 나에게 이 쇼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마저 없었다면 정말 나는 끝없이 나를 끌고 들어가는 절망의 늪에서 나를 건질 방법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그저 신에게 맡긴 듯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행복은 나에게 찾아왔다.’
사실 그렇게 패션쇼를 무사히 치르고 즐길 수 있었던 것은 패션쇼 당일 직전, 행복이 일의 해결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8월 29일 금요일, 호주 정부에서 나서서 태국 정부와 합의를 거친 끝에 대리모 금지 정책이 발효되기 이전에 대리모를 통해 출산한 아이들을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을 통해 깨달았다. 어렵게 나를 절망의 늪에서 건져 다시 설 용기를 가졌을 때, 거짓말처럼 행복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비록 가미 사건으로 힘든 날을 보내기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좋아 하는 일을 하면서 간절한 내 바램이 이루어 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태어나 처음, 나는 오늘 내가 너무나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다’.
사람들의 환호와 칭찬을 듣고, 멋지게 펼쳐진 오늘의 내 패션쇼를 떠올리며, 나는 한국에 있었다면 내 인생에 이런 날이 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의 나는 물리치료사였다. 물리치료에 대해 특별히 꿈이 있어 된 것은 아니었고 으레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그러하듯 고3 수능 성적에 맞춰 대학과 학과를 정하고 진로를 결정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리고 좋아했지만 내 그림 솜씨를 칭찬하는 것은 친구들뿐, 그림 그리기를 직업으로 선택하겠다고 말할 용기도, 어려운 가정 형편을 무시할만한 이기심도, 스스로의 재능에 대한 믿음도 내겐 없었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잘 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언제나 중간 정도 가는 눈에 띄지 않는 학생, 내가 바로 그런 아이였다. 그래서 특별히 가고 싶은 대학이나 학과가 있는 것이 아닌데도 막연히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수능을 보았다. 당연히 성적은 잘 나오지 않았고 점수를 맞춰 입학한 대학에서도 특출 나게 물리치료 분야에 흥미를 가지지도 못했기에 대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도 못했다. 정말 나는 지극히 평범한, 어느 물리치료실에나 있을법한 물리치료사였다.
그런 내가 호주에 오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시작했다. 평범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었고, 사람들이 원하는 무언가가 되려고 애쓸 필요도 없이 온전히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결과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 나도 무언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있고, 이렇게 열정적으로 몰두할 수 있는 좋아하는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