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의 부모님께서 앞으로 지내실 실버타운을 둘러보러 가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이 바로 우리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실버타운이었다.
연세가 드시면서 부모님께서는 자식 가까이에 머물고 싶어 하셨고, 여러 가지 선택지를 고민하신 끝에 결국 우리 가족이 있는 곳이 가장 마음에 드셨던 것 같다. 3형제중 우리 가족을 선택 하셨다. 그들이 관심을 보인 곳은 '클래식'이라는 이름의 고급 실버타운이었다.
이곳에 입주하려면 10억을 지불하고 거주 공간을 구입해야 하는데, 방 두 개에 욕실 하나, 그리고 별도로 분리된 화장실이 있는 넉넉한 공간이 제공된다. 여유로운 노후를 계획하는 많은 어르신들이 선택하는 곳이기도 했다. 부모님께서 앞으로 이곳에서 생활하시게 된다면, 우리 가족은 더욱 가까이에서 함께할 수 있겠구나.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든든해졌다.
그런데 지금 골드코스트 집 계약도 진행 중이고, 당장 내일이라도 입주가 가능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신중히 생각해 보기로 하셨다. 나는 솔직히 바로 계약을 하실 줄 알았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고, 여러 가지를 고려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역시 어른다운 신중함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행복이는 소파에 앉아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을 하고 있었다. 화면 속 캐릭터가 빠르게 움직이며 점수를 올리는 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행복이에게 다가갔다.
"행복아, 숙제는 다 했어?"
행복이는 내 말을 듣지 못한 듯 여전히 화면을 응시하며 손가락을 바삐 움직였다. 나는 조금 더 다가가 다시 물었다.
"행복아, 게임 그만하고 숙제부터 해야지."
그러자 행복이는 눈을 화면에서 떼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응, 이거 한 판만 하고요."
나는 소파에 앉아 행복이 옆에서 기다렸다. 몇 분이 지나도 게임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다시 한번 말했다.
"행복아, 한 판 끝난 거 같은데 이제 숙제해야지."
그제야 행복이는 화면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빠, 내일 하면 안 돼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행복이는 게임이 재미있으니 계속하고 싶을 것이고, 숙제는 그다지 하고 싶지 않겠지. 이해는 되지만, 해야 할 일을 미루는 습관이 생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내일 하면 또 내일 미루게 될 수도 있어. 숙제는 꼭 해야 하는 일이잖아.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걸 먼저 해야 나중에 더 즐겁게 놀 수 있어."
행복이는 입을 삐죽 내밀며 한숨을 쉬었다.
"근데 숙제 너무 많아요. 하기 싫어."
나는 행복이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빠도 어릴 때 숙제하기 싫었어. 그런데 미루면 결국 더 하기 싫어지더라. 차라리 빨리 끝내고 마음 편하게 게임하는 게 낫지 않을까?"
행복이는 고민하는 듯하더니 마지못해 게임기를 내려놓았다.
"알았어... 근데 숙제하고 나면 게임 더 해도 돼?"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숙제 다 끝내고 하면 마음 편하지 않겠어? 얼른 끝내고 하고 싶은 거 하자."
행복이는 마지못해 책상으로 향했고, 나는 그런 행복이를 보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어른과 아이는 참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어른도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아이는 아직 그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배우는 중일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나중에 더 여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줄 아는 것 아닐까. 그리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릴 줄 알아야 하는것은 아닐까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맬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