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한 상태나 처지에서 완전히 벗어남.
나는 학창 시절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명된 적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법정 스님의 ‘버리고 비워야 채워질 수 있다’는 말을 믿는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까지 많은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버리지 못한 것들에는 물건보다는 글이 많았다. 물건들은 그나마 버리는 편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글은 그러지 못했다. 글을 버릴 때면 왜인지 나를 버리는 기분이 들어서이다. 글이 곧 '나'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물 사진을 버리기 어려운 이유랑 같다. 나의 생각들을 긴 시간 동안 고뇌하며 글에 담아내었기에 그렇다. 나에게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 일은 곧 과거의 나와 대화하는 일이었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위로받을 때도 있었고, 깨달음을 얻을 때도 있었다. 심지어는 과거의 내가 더 성숙해 보일 때도 있었다. 글은 내 생각, 신념, 가치관을 과거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두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결국은 용기가 부족해서 글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아끼는 보물들을 한가득 모아둔 배를 잃어버리는 것이 싫어서 물살에 떠밀려가지 않도록 나루에 묶어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아끼는 보물들이 안전하게 묶여있는 모습을 보며 안심했지만, 실은 주객이 전도되어 보물들이 나를 강하게 묶어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묶여있으면 나아갈 수 없다. 묶인 끈을 풀고, 배를 띄워서, 더 좋은 보물이 있을지도 모르는 세상을 향해 노를 저어야만 한다. 거친 풍랑을 만나 보물을 잃기도 하고, 새로운 섬에 닿아 보물을 얻기도 해야 한다. 이것이 곧 성장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성장하기를 원하면서도 보물을 잃는 것이 두려워 하릴없이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공부를 할 때에도 대화를 할 때에도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는 나를 보며, 언제부터인가 내가 낡은 생각에 갇혀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갇혀있다는 느낌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답답함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라고, 용기를 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일기를 제외한 내 모든 글을 버렸다. 아직 매듭짓지 못한 글도, 버리기 아까운 글도 많았다. 하지만 냉정하게 그것들은 과거의 소산물이었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글을 쓰자는 다짐을 하며 과감히 버렸으나, 아주 연연하지 않을 수 없어서 글을 버리기 전에 한 번씩은 읽어보았다.
열여덟에 쓴 '교육'에 관한 글, 열아홉에 쓴 '본질'에 관한 글, 스물에 쓴 '관계'에 관한 글, 스물하나에 쓴 '성장'에 관한 글, 스물둘에 쓴 '현실'에 관한 글, 그리고 스물셋에 쓴 '탈피'에 관한 글을 읽으니, 지금껏 '나'라는 사람이 어떤 주제들에 관심을 가졌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내 생각과 같은 글도, 그렇지 않은 글도 있어 재밌기도 했다. 막상 글을 읽고 나니 버릴 만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반드시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그 글들에 얽매여 있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물셋의 내가 '탈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올해로 스물넷에 접어드는 나에게는 신선한 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생각들이 필요하다. 그러니 오늘부로 나의 보물이었던 글들에 작별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