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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Jul 10. 2022

거짓말쟁이


"오래전부터 창가 자리를 선호했다고요?"


 내 이야기를 들은 당신은 눈을 크게 뜨고 내 대답을 찬찬히 음미한다. 나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남았는지 그 문장을 줄곧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창가 자리를 좋아한다는 게 뭐 어때서 그렇게 내 말을 곱씹고 있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창가 자리에 사람들이 모두 앉아 있고 노약자석만 남아 있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어 상황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요. 짐이 무겁다거나, 유독 피곤한 날이었다거나 하면 눈치 좀 보다가 앉을 것 같아요."


"거짓말쟁이시네요"


"네?"


"아니에요. 앉으실 수도 있죠."


 당신은 여기까지 말하고 다시 실실 웃는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코와 입이 보이지 않는다. 당신의 눈은 끝이 한옥 처마처럼 살짝 올라가 있고, 웃을 때는 조금 더 감긴 형태의 곡선이 된다. 손톱 같기도 하고, 초승달 같기도 한 곡선의 형태다. 뭐가 그렇게 웃긴 건데요, 라고 물으려다가 생각을 접는다. 웃긴 게 있으니 웃는 거겠지. 나중에 때가 되면 알려주겠지.






 하긴 당신은 처음 봤을 때부터 신비로운 사람이었다. 파악할 수 없어 신비로운 사람은 대개 두 종류로 나뉜다. 파도 파도 새로운 모습이 나와 대체 몇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일지 가늠이 가지 않아 신비로운 사람. 혹은, 보고 또 봐도 그 사람이 생각하는 실체에 닿을 수 없어 무한한 추측만을 불러일으키는 사람. 당신은 후자에 가까운 신비로운 사람이었다.


 거짓말쟁이시네요, 라며 넘겨짚듯 말하는 것 역시 당신의 오랜 말버릇이었다. 늘 그런 식이었다. 나의 고민을 듣고 나선 "그럴 만하시겠네요"라고 넘겨 짚으며 말했고, 나의 슬픔을 듣고 나선 "슬픈 일이네요. 하지만 지금도 슬프신가요?"라고 되묻곤 하였다. 그런데 나는 그 반응이 참 오묘하다고 느꼈다. "그럴 만하시겠네요"라는 답변을 들으면 진짜 내가 그럴 만한 인물로 느껴졌고, 지금도 그래서 슬프냐고 묻는다면, 모르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곤 했다.


 넘겨짚듯 뱉는 당신의 말에 내가 괜히 스스로의 마음을 재단하여 맞추는 것이었을까? 이런 생각은 나를 병들게 했다. 차라리 당신이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다고 믿는 편이 훨씬 든든하고 속이 편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당신의 "거짓말쟁이시네요"라는 한 마디에 사로잡혀 있는 참이다. 없던 거짓말이라도 만들어 내서 진짜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하는 고민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요. 저는 거짓말하지 않았어요. 힘들면 앉을 수도 있잖아요. 노약자석은 노약자분들이 앉는 게 맞죠. 하지만 내가 정말 힘들거나 그러면 눈 딱 감고 세상을 모른 체하고 피곤에 찌들어 잠든 연기를 하며 앉아 귀가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돌아오는 당신의 대답


"그럴 만하시겠네요."


 그럴 만하냐고? 그래 그럴 만하다. 아니 뭐가 그럴 만해. 내가 어이가 없는 게 그럴 만하지. 당신은 내 말을 옹호하는 것일까, 반박하는 것일까. 나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도대체 추측할 수가 없다. 당신은 언제나 내 추측으로부터 몇 걸음 떨어져 도망치고 있는 존재였으니까.




"있잖아요"


"네?"


"창가 자리에 자주 앉으실 거잖아요"


"네"


"창밖을 자주 보면서 가시나요?"


"자주는 아니고 거의 항상 보면서 가는 편이죠"


"창밖으로 또 다른 창을 보신 적 있어요?"


"......"


"그럼 이제 창을 보고 있는 내 모습이 건너편 창에 비칠 거잖아요. 내 시선을 내 시선으로 담을 수 있는 순간인 거죠.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순간, 재밌지 않나요?"






사실 이 생각 언젠가 해본 적 있다.


 내가 나를 경계 없이 보는 순간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라는 생각. 거울을 통해 보는 건 너무나 많은 경계가 필요한 일이었잖아. 내 마음에 드는 내 모습이 나올 때까지 머리도 만져 보고 표정도 바꿔 보고 화장도 고쳐 보고 늘 나 자신을 경계하는 형태의 마음가짐이었잖아.


 하지만 이따금 의도치 않게 내 모습과 마주할 순간이 있어. 창과 창이 순간적으로 마주 보게 되어 내 모습이 건너편에 비칠 때. 나는 아무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날 것 그대로의 내 모습과 내 표정을 마주하는 거지.


 이어폰으로 귀를 꽉 막고 만원 버스에 탄 날이었어. 나는 노약자석 앞에 서있었고, 5분 정도 지나자 내 앞 노약자석에 앉아 계시던 분이 하차하셨지. 나는 곧장 노약자석에 앉았고, 두 눈을 질끔 감고 자는 척을 했어. 몇 개의 정류장 이름을 안내 음성으로 건네 듣고 익숙한 이름들이 서서히 들려오자 눈을 잠시 떴어. 그때 창밖에 상가들이 보였어. 피자, 옷 가게, 학원 등등이 몰려 있는 복합 단지 말이야. 나는 상가 창문에 비친 내 눈을 순간적으로 볼 수 있었어. 생기는 없었고 허무함과 부러움, 빈 응시로 가득 찬 눈이었지. 무엇이었을까 그 눈은.






"그래서! 재밌지! 않냐고요!"


당신은 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아니 질문을 조금 바꾸는 게 더 옳겠다. 

나는 왜 당신의 질문에 무슨 대답을 건넬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지?



"재밌는 생각이네요."


"사람의 눈도 가끔 그러지 않아요?"


"사람의 눈이 창 같다는 소리일까요?"


"네. 저는 지금 당신 눈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며 말하고 있거든요. 당신은 지금 이제 제 눈에 비친 당신 모습을 보며 말을 꺼내 보는 거죠. 그럼 우리는 서로를 보는 형태지만, 결국 자기 자신들을 보며 마음속 말을 꺼내는 관계로 남게 되는 거죠."



"음"


"음? 무슨 말이라도 꺼내 보세요, 실험 삼아"


"네 재밌네요."


"역시 거짓말쟁이시네요"



 당신은 나의 눈을 빤히 보며 말한다. 내 두 눈을 보며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내가 거짓말쟁이라고, 내가 거짓말쟁이임에 틀림없다고. 나는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거짓말쟁이가 되어주기로 결심한다.



"맞아요. 저 사실 노약자석에 앉지 않아요. 혹시 앉게 되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다른 분께 양보해 드리려고 해요."


"그죠? 거짓말하시는 거 알고 있었어요"


"네, 당신이라면 그럴 만도 하죠."



 너는 왜 자기 말버릇을 따라 하냐며 또다시 웃는다. 눈 끝이 살포시 휜다. 나는 당신의 그런 눈이 좋았다. 눈이 참 매력적으로 생기셨네요, 라는 말을 건네려다 머뭇거린다.


 말하지 않아도 당신의 대답을 예측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당신은 사실 늘 나의 예측과 추측을 뛰어넘는 신비로운 사람이지만 왠지 이번만큼은 당신이 내 생각대로 답을 해버릴 것만 같아서.


 다른 질문을 던져 대화를 이어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만이 마음속을 가득 채운다. 이런 형태의 마음, 다시는 갖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 내 눈은 그때처럼 생기 없이 허무하고 공허할 것이다. 아, 내가 내 눈을 볼 수 없어서 다행이다.



"내일은 날씨가 춥대요. 장갑 챙겨 다니세요."


 나는 대답을 듣고자 당신의 눈을 본다. 그리하여 당신 눈에 비친 나의 눈동자를 드디어 온전히 마주한다. 기대보다는 밝고 생기 있는 모습. 당신은 이제 웃으려고 한다. 당신의 눈이 초승달 같아지는 만큼, 그 속에 비친 내 눈도 함께 초승의 모양으로 저문다. 당신은 발을 한 걸음 빼 나로부터 멀어진다. 한쪽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가, 자신의 가방을 힐끔 바라보았다가 다시 내 얼굴을 본다.



"장갑이라. 글쎄, 거짓말을 참 잘하시네요."



 순간, 무너져 내리는 나와 마주한다. 나는 흔들리며 일렁이고 있다. 긴 실험과도 같았다. 진실과 거짓이 너무나도 혼재되어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 불가능해진 실험. 그리하여 진실이 이따금 거짓이 되지만, 거짓이 언제나 진실처럼 될 수 있는 실험. 나는 지금 실험이라 적으며 내 마음을 들여다볼 핑계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것이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리고 또 나는 늘 내 마음의 진실에 가닿을 수 없는 것만 같아서. 그리하여 나는 당신 말이 옳다고 여기기로 했다. 당신의 눈 속에 나의 진심이 있다. 맞다. 나는 거짓말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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