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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여행자 Nov 28. 2023

입영 전야 11화

와 버린 그날

올까 하며 의심했던 그날이 결국 밝아왔다.

평소에는 옆에서 전쟁이 나도 잘 자는 아들이지만 새벽에 몇 번 깼다고 했다.

다행히 비는 물러가고 하늘이 쨍하다. 얼마나 더우려나…. 입소 시간은 오후 2시이니 아침에 여유가 있었다.

나는 몸보신 2탄으로 준비해 온 흑염소탕을 아침식사로  끓였다.


아들은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걸려 오는 전화를 받느라 바빴다.

이제 스마트 폰을 여유 있게 들여다볼 시간은 한동안 없을 테니 점심때까지 편하게 쉬게 두었다.

입소 시간 2시간 전. 오늘따라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아들에게 뭐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었다. 아드님은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하셨다!

곧바로 펜션으로 배달의 민족을 호출했다.

특급 면치기를 뽐내며 짜장면을 먹는 까까머리 아들 모습을 보니 또 울컥.

이제 한동안 이 시원한 면치기 소리도 못 듣겠구나 싶었다.


펜션에서 걸어서 3분도 안 걸리는 입영 심사대 앞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호국 요람’이라 쓰인 정문을 들어가니 심사장 어귀까지 웬 레드 카펫이 깔려 있다.

레드 카펫 위를 걸으니 심란한 마음으로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조금 앞서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 밑에서 깊은 한숨이 올라온다.


오후 2시.  입영 심사대에서 입영식이 진행되었다. 수많은 아들들이 나라의 부름을 받고 서 있었다.

짧은 입영식이 끝나고 아들들은 저마다 가족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나의 아들도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다. 나는 입술에 힘을 주어 웃어 보였다.

그리고 아들을 꼭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아들은 담담하게 나를 토닥였다. 나는 안간힘으로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았다. 

우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이면 분명 더 마음이 좋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억지로 버텨내며 찍은 사진 속 우리의 표정은 정말 웃기고 슬픈, 그 자체였다.

집합 장소로 걸어가는 아들의 모습이 점처럼 작아지자 그제야 나는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인파 속에 묻혀 아들의 모습은 이제는 보이지도 않았지만 나는 계속 손을 흔들었다.


입영 심사대를 빠져나왔지만 바로 집으로 출발할 수가 없었다. 차마 떨어지지 않은 발길로 정문 앞 카페에 앉아 마음을 추스르고 한참 후에야 겨우 서울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아들이 만든 노래들을 재생했다. 

녀석의 목소리가 담긴 노래를 돌아오는 내내 듣고 또 들으며 나라 잃은 사람처럼 펑펑 울었다.


시린 눈으로 겨우 집에 도착하니 싱크대 위에는 아들이 마시다 두고 간 물컵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당장이라도 방에서 ‘엄마’하고 나올 것만 같았다. 집 안에 온통 아들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1주일 동안 아들이 두고 간 물컵은 씻지 않은 채로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12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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