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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여행자 Nov 23. 2023

입영 전야 10화

눈물의 삭발식

입대하기 3일 전. 어느덧 장마가 끝나고 그야말로 사우나 같은 더위로 서 있기 조차 힘든 7월의 막바지.

아들은 음악 작업을 하기 위해 집 근처에 잠시 얻었던 작업실을 정리했다. 책상 하나 들어가면 별로 여유도 없는 아주 작은 곳이었지만 좋아하고 정들었던 자기만의 공간이었다. 장비들을 거두고 뒷정리하고 나오며 아들은 뚝뚝 떨어지는 아쉬움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겨우 돌렸다. 비로소 입대를 한다는 것이 점점 실감이 나는 듯했다. 거기에 정말 정점을 찍은 체감은 입대하기 하루를 앞둔 날이었다.


군입대 카페에서의 선배 부모들 조언대로 나는 아들이 입대하는 훈련소 앞의 펜션을 예약해 두었다. 입영자의 입소 시간이 오후 2시이긴 했지만, 당일 아침에 찢어지는 마음으로는 도저히 움직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입영 전날 아들과 가까운 펜션에 묵고 입소하기로 했다. 펜션에서 먹을 요리 재료들을 바리바리 쌌다.

늘 등장하던 전복과 장어는 물론이고 한우 스테이크와 당일 아침에 먹일 흑염소탕까지 몸에 좋다는 음식이 총출동했다. 떠날 채비를 마치고 마지막 남은 관문이 있었으니, 그것은 ‘삭발’.


군대 가기 전까지 머리를 길러 보겠다며 고운 머릿결 날더니 이제 파르라니 밀어야 했다.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집 앞 미용실로 향했다. 사각사각, 후드득.

하얀 커트보 위로 검은 머리카락이 떨어졌다.

차마 그 모습을 계속 볼 수 없어 뒤돌아 앉았지만, 사방의 거울은 오롯이 아들의 모습을 비췄다.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바닥에도 머리카락들이 흩어지고 뒤이어 바리캉이 ‘지잉’ 소리를 내며 아들의 머리 위를 훑고 지나갔다. 애써 덤덤하게 있던 아들은 착잡한 얼굴로 슬며시 눈을 감았다. 지금의 기분을 무슨 말로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흐르는 눈물을 재빠르게 닦고 괜히 목소리 톤을 높여 보았다. 하지만 코맹맹이 소리는 감출 수가 없었다. 남자 원장님은 이심전심으로 아주 정성껏 머리카락을 잘라 주었다. 꾸역꾸역 슬픔을 삼키며 삭발식이 끝나고 미용실을 나와 집 앞에서 아들과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그 오묘한 표정이란...


머리카락까지 다 밀었으니, 훈련소가 있는 논산으로 2시간 남짓 달렸다. 가는 길에 옆에서 잠든 아들의 머리를 손으로 가만히 쓸어 보았다. 까슬까슬하게 닿는 짧은 머리카락이 마음을 찔렀다. 뉘엿뉘엿 해가 넘어갈 때쯤 펜션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머지않아 비가 올 기세여서 서둘러 식사를 준비했다. 요리 재료들을 가지고 야외 데크로 나가 찌개를 끓이고 바비큐를 했다. 근처 식당에서 편하게 먹을 수도 있었겠지만, 입영 전야의 식사는 내 손으로 직접 해주고 싶었다. 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아들을 불러 앉히고 이것저것 구워 앞에 놓아주었다. 아들은 평소처럼은 먹지 못했다. 고기 몇 점과 밥 몇 술 뜨더니 이내 숟가락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엄마, 나, 오늘은 밥이 잘 안 들어가네.”

그 모습에 또 찡해졌지만 얼른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들의 등을 쓸어주고 식사를 마무리하니 곧 비가 쏟아졌다. 아, 하늘까지 우는구나.

밤은 깊어져가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원망스러워졌다.


불을 끄고 이부자리에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들은 어느새 잠이 들었다. 창밖의 빗소리를 타고 새근새근 아들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녀석의 자는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언제 이렇게 청년이 된 건지 시간의 흐름이 믿기지 않았다. 

다시 한번 까까머리를 손바닥으로 가만히 쓸어 보았다. 스무 살이 벌써 넘은 나이지만 내 눈에는 늘 귀엽고 애틋하다. 내일이 오긴 올까? 왠지 비현실감마저 들어 멍해지다가 또 코끝이 시큰해졌다. 

내일은 정말 울지 않으리라.


-11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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