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 전야 9화

없던 종교도 가질 지경

입영날짜를 받아놓고 하루하루가 흘러가니 아무리 덤덤하게 잡아보는 마음이지만 심란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군대의 ‘ㄱ’이라도 입 밖으로 나올 때면 무거워지는 마음에 저나 나나 되도록 군대 얘기는 꺼내지 않으며 시간이 천천히 가길 바랐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입해 놓은 입영 커뮤니티 '군**' 카페에 들락날락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군대'라는 미지의 세계로 아들을 들여보내야 하는 어미에게는 온통 불안하고 낯선 용어들 투성이었다. 구체적인 정보들이 절실히 필요했다. 

'군**' 카페에는 훈련병부터 병장까지의 카테고리가 나누어져 있어져 있었다. 

특히 카페 목록에는 입대 준비물과 훈련소에 관련한 정보, 각종 꿀 팁들이 올려져 있어 신세계였다. 

이미 아들을 입대시킨 부모님들의 일목요연한 자료 정리는 그야말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마치 유치원이나 학교의 입학 준비 같은 느낌.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했지만 유비무환이라 하지 않던가? 

게다가 게시판에는 아들을 훈련소로 보내고 난 후, 구구절절 애끓는 가족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게시글을  읽어보며 나도 눈시울을 붉혔다. 

그렇게 하나씩 입영 준비를 하고 있자니, 덤덤하려 애쓰지만 시들시들해지는 아들의 얼굴. 

입영일이 다가오고 있음이 현실로 와닿는 것 같았다.

어수선한 마음을 다잡고자 고즈넉한 사찰이라도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

이건 뭐, 없던 종교도 생길 지경이었다.

아들의 입영일 며칠을 앞두고 우리는 KTX에 몸을 실었다. 

전부터 가보고 싶었지만 너무 멀어 엄두가 나지 않았던 남해에 가보기로 했다. 

거기에는 마침 절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보리암이라는 사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서 아들의 무사무탈한 군생활을 온 마음으로 빌고 싶었다. 

아들도 조용한 사찰은 마음이 편해지고 좋다며 입대 전 마지막 여행에 따라나섰다. 

피곤해지는 장거리 운전 대신에 순천까지 KTX로 기차여행을 하고 순천부터는 렌터카를 이용해 다니기로 했다. 푸른 남해의 물길을 따라 달리면 무거운 마음을 조금은 날려 버릴 수 있을까?

남해의 절경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보리암>으로 향했다. 

그림처럼 펼쳐진 해안도로를 달려서 초여름의 싱그러운 나무향을 따라 사찰로 향하는 오르막 길.  

올라갈수록 멀리 펼쳐지는 한려수도. 

그 장엄한 풍경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아들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걸음마다 그저 짠한 마음이 스며들었다.

소문대로 고즈넉하고 수려한 절경에 탄성이 절로 나오는 <보리암>

그 정기를 받아 기도하면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마음을 가득 담아 두 손을 모으고 커다란 불상 앞에 서서 눈을 감았다.

‘부디 우리 아들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잘해나갈 수 있도록 굽어 살펴 주세요. 다치지 않고 무사무탈하길 꼭 보살펴 주세요. 우리 가족 건강하게….'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계속된 나의 기도에 부처님이 다소 당황스러울 실 수 있었겠지만 진심을 다해 기도했다. 아들에게도 기도해 보길 권유했지만 녀석은 엄마가 내 몫까지 해주라며 슬며시 자리를 옮겼다. 

아들의 뒷모습에서 말하지 않아도 만감이 교차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우리는 이왕 여기까지 온 것, 보리암에서 조금 더 올라가 금산 정산 정상까지 오르기로 했다. 

아들의 무사무탈을 비는데 못할게 무엇이랴? 

경건한 마음을 챙겨 금산 정상까지 올랐다.

경이롭게 펼쳐져 있는 한려수도의 풍광을 한동안 가만히 내려다보는 아들 곁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기원해 보았다. 

아들도 금산 정상에서 제 마음을 오롯이 담아 기도했으리라.

금산 정상에서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부드러운 바람이 우리의 기도를 잘 전해 주었기를….

- 10화에 계속-

남해 <보리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