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어디에나 있는 행복

일본 마츠야마

by 시간여행자


애정하는 작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고백하지만 나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빅 팬이다. 그 작품의 배경지라면 어디든 가보고 싶은 마음 한 가득인 중년 아줌마! 뭐... 한창 그럴 나이 아닌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마츠야마의 도고 온천. 지브리 덕후들의 성지인 그곳을 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지역이 배경이 된 <봇짱-도련님>이라는 소설까지 재미있게 읽게 되었다. 일본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교사로 지냈던 자전적 이야기를 각색한 소설. 사회 부조리에 대한 고발을 담아 상황에 따른 인물들의 심리 묘사도 세밀하게 잘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다.

봇짱 열차/ 소설 속 인물들이 정시에 춤을 추는 봇짱 시계

소설을 읽은 며칠 후, 나는 배경지인 마츠야마로 당장 날아갔다. 시내를 돌아다니는 봇짱 열차는 마치 소설 속 시대로 돌아간 듯했다. 그 열차를 타고 도고 온천으로 향하면 주인공 봇짱의 자취를 따라다닐 수 있어 재미가 쏠쏠하다.


도고 온천 역에 내리니 그 앞에 멋지게 세워진 봇짱 시계에서는 음악과 함께 정시를 알린다. 이윽고 시계 안에서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춤을 추며 내게 손을 내민다.


소설도 소설이지만 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도고 온천도 어서 보고 싶었다. 물질 만능 주의와 인간의 탐욕을 꼬집고 그것에 대항하며 자아와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이야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예측불허 상상력이 듬뿍 들어 있는 멋진 작품이다. 그 속에 등장하는 가오나시는 황금으로 주인공 치히로의 마음을 얻으려 하지만 실제로는 나약하기 짝이 없어 자꾸 짠한 마음이 든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의 모델이 된 도고 온천의 실제 모습과 작품 속 장면 / 도고 온천 앞의 나의 가오나시 찰칵!

<도고온천>으로 향하는 길목의 상점가에는 볼거리, 먹거리들이 발목을 잡았지만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의 역사를 지닌 그곳이 드디어 조금씩 가까워졌다. 아! 이곳을 왜 이제야 온 것인가? 순식간에 만화 속 장면들이 머릿속에 필름처럼 돌아간다. 그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비 오는 이틀 연속 여길 찾은 이유는 아마도 황금만으론 채울 수 없었던 그의 마음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막 2월이 시작되었지만 곧 피어 날 듯 예쁜 매화 봉우리에 마츠야마는 봄이 성큼 다가 온 듯했다.

이 좋은 날씨를 고스란히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는 스카이 데크로 향했다. 바야흐로 피어날 듯 수줍은 매화 봉오리에 둘러싸인 마츠야마는 봄을 입고 있었다.

탁 트인 전경 저만치 마츠야마 성이 우뚝 보였다. 천수각에 올라 봄의 한가운데 서 있자니, 해가 갈수록 시간에 가속이 붙는 마음이 밀려왔지만, 이내 난 깊은숨을 들이켜 봄이 내뿜는 향기로 가슴을 물들였다.


소도시만의 유유자적한 분위기와 정취가 느껴지는 거리에서 이른 봄의 향기가 발길이 닿는 곳마다 따라오는 듯했다. 그렇게 천천히 걷다 보면 나를 끌어당기는 맛있는 음식들은 일본 여행에서의 큰 즐거움이다.

사실 여행의 반 이상은 맛있는 음식이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는 큰 비중을 둔다. 닿는 대로 걷다가 우연히 들어가 본 식당의 음식들이 맛있을 때 그 희열과 즐거움이란... 그곳을 발견한 나 자신을 칭찬하게 된다.

우연히 만난 맛있던 너희들!

이제껏 눈으로 느꼈던 마츠야마를 오감으로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따끈한 노천 온천에 몸을 담가본다. 옅은 봄바람이 어깨 위를 스치면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 기분.

게다가 목욕 후에 예쁘고 정성 들여 차려지는 료칸에서의 가이세키 요리와 청량한 물소리를 얹은 나지막한 음악이 채우는 공간에서, 난 세상의 모든 평화가 내게 스미는 걸 느꼈다.

온천 료칸의 내부

뭐… 행복… 나지막이 소리 내어 본다. 좋아하는 순간들을 소소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빈번하게 느끼는 행복감…

가오나시처럼 자신의 손에 황금이 넘쳐도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을, 채울 수도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아, 행복하다 ‘라는 말이

호흡처럼 ‘툭’하고 나오는 이 순간,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닐까?

온천의 노천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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