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누군가 음악의 힘을 맹신하면서 칭송한다면 나는 그에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음악의 힘은 강렬하여 때로 우리네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군 복무를 하던 때의 일이다. 아무리 삭막한 군대라 하더라도 병영 내에 군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대 본부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종종 대중가요를 크게 틀어놓았다. 테이프나 CD가 몇 개 없었던 모양인지 같은 노래가 자주 반복되곤 했는데, 이때 자주 들은 노래가 윤종신의 <너의 결혼식>이나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 등이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벙크 인근에 짱 박혀 있었다. 처음 듣는 노래가 북녘을 향한 포신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여자의 퇴폐적인 허스키 보이스와 청량감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홍콩 누아르를 닮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노래였다. 노랫말은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군인의 마음을 쓸어내리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동기가 있어 물었더니, 가수는 이소라와 김현철이고 제목은 <그대 안의 블루>라 했다. 분명 ‘blue’라고 들은 것 같았는데 대뜸 뜻이 생각나지 않았다. ‘우울한’이란 수준 높은 뜻은 둘째치고 ‘파란’ 또는 ‘푸른’이란 기본적인 의미조차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영어로 고통받고, 대학에 들어와 <성문종합영어>에 도전했다 고배를 맛본 후 포기하다시피 했던 영어였지만 그래도 ‘blue’는 초등학생도 아는 단어였음에 그 충격의 여파는 컸다.
그날 이후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은 오롯이 ‘blue’때문이었다. 나는 분명 영어를 외면했고, 영어를 두려워했으며, 영어를 포기했었다. 그리하여 영어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먼 훗날 내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무언가를 포기했었다는 그 자괴감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렇게 일주일여 동안 그 생각에 천착했고 불현듯 오기가 생겼다. 미국에서는 거지도 사용한다는 영어인데 기꺼이 도전해 보자, 혹여 실패하더라도 나 스스로에게 떳떳해지자는. 전역 후 어찌어찌하다 영어교육으로 전공을 바꾸게 된 계기는 단연 'blue' 그 한 단어였다.
아주 가끔 TV에서 가수 김현철을 본다. 여전히 생긴 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벌써 50줄에 들어선 그를 보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던 스물세 살의 나를 기억하려 애쓴다. 그리고 속으로 묻는다. 당신의 노래가 한 사내의 삶을 의미 있게 바꾼 것을 아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