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해(年) 1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by 구론산바몬드

미국 테니스 선수 세레나 윌리엄스는 자신의 은퇴를 "테니스로부터 새로운 것을 향한 진화"로 봐달라 했다. 멋진 말이다. 1995년 그해, 내게도 불현듯 진화의 기회가 왔다. 나는 D 대학교에서 2년간 철학을 전공했고 전역 후 영어 공부를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두 달만에 성문종합영어를 마스터하면서 영어에 자신감이 붙었다. 이참에 영어를 전공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막연한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었다.


대학입시는 학력고사에서 이름도 생소한 수능으로 바뀌어 있었다. 대입을 위해 전 과목을 공부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일반편입을 알게 되었다. 전문대 졸업자나 일반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러 제적생의 결원을 채우는 제도였다. 대학이나 전공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에게 편입은 좋은 기회였지만 그 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지인들은 하나같이 만류하며 그냥 복학하는 것이 무난한 선택이라 했다. 고민과 함께 7월의 폭염이 찾아왔다.


지인들의 충고가 틀린 건 아니었다. 편입의 기회는 적었고 특히나 인기학과인 영어과의 편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온전히 공부만 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너무 궁핍했다. 하지만 그런 이유들로 꿈을 접기엔 나의 열망은 강렬했다. 부모님께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고 뜻대로 하라고 하셨다.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편입의 경쟁률이 아무리 높아도 누군가는 합격의 기쁨을 누리지 않겠는가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공부를 하면서도 시나브로 불안은 왔다가 스러졌다. 11월 말인가 12월 초쯤이었던 것 같다. 성문종합영어를 넘어 토플을 독파할 즈음 낭보가 들려왔다. 정부가 신교육 수립을 위한 교육 개혁 방안을 발표하면서 편입학의 문호가 넓어졌다. 편입학 정원 산출의 기준이 되는 '결원'의 범위를 제적생에서 휴학생을 포함한 미등록생으로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당장 편입생을 모집하는 대학과 학과가 늘었다.


각 대학의 편입학 시험은 주로 이듬해 1월에 집중되어 있었다. 기회는 많아졌지만 무한정 원서를 넣을 수는 없었다. 당시 가격으로 응시료가 7만 원에서 15만 원가량이었고, 서울에서의 체류비도 무시할 수 없었다. 가장 싸다는 여인숙을 전전했다. 처음 응시한 서울의 H대 영어과는 60.5대 1의 살인적인 경쟁률이었다. 인간적으로 떨어져야 했다. D대 영어과는 40대 1, 또 낙방했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만 있었지 결국 실력이 부족했던 걸까 자괴감이 밀려왔다.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모 대학 영어교육학과에 원서를 넣었다. 그나마 20대 1이었다.


약 2주 뒤 합격증을 받았다. 꿈에도 그리던 영어과 그것도 사범대를 다니게 되었다. 성문종합영어 명사 편 공부를 시작한 지 9개월 만이었다. 새로운 미래를 향한 변화와 진화의 기회는 그렇게 기적처럼 왔다. 미련 없이 D대 철학과에 자퇴서를 제출했다. 2년 간의 철학 공부는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철학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알토란 같은 일깨움을 주었다.

keyword
이전 04화처음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