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대학에 합격한 후 상경하는 나에게 카세트 플레이어를 선물해 준 것은 형이었다. 당시 형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상태였다. 형이 준 플레이어는 서쪽으로 아주 가까운 외국(?)에서 수입한 초저가 제품이었다. 가격이 가격인지라 무척 투박한 그 물건은 재생, 정지, 빠르게 감기 버튼 세 가지만 있을 뿐 되감기가 없었다. 그래서 이해 못 한 부분을 다시 듣기 위해서는 카세트를 꺼내 뒤집어 넣고 빨리 감은 후 다시 뒤집어 넣는 수고를 해야 했다. 그래도 좋았다. 시간만 나면 캠퍼스 잔디에 누워 카세트를 듣고 또 들었다.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물건은 딱 값어치에 걸맞은 역할만을 하고 작동을 멈추었다.
그즈음 5살 아래 후배의 자취방에 초대를 받았다. 한눈에 보아도 월세가 만만치 않을 무척 깔끔하고 제법 큰 원룸이었다. TV, 침대와 에어컨이 갖추어져 있었고, 온갖 두꺼운 원서들과 고사양의 데스크톱까지, 허름한 독서실에 기거하는 내가 보기엔 아방궁이 따로 없었다. 무엇보다 내 눈길을 끈 것은 ’ 닥터위콤‘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고가의 어학용 기기가 녀석의 원목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나는 걸어가는데 내 경쟁자는 고급 세단을 타고 간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그날 이후 녀석을 제거하고 닥터위콤을 차지하는 꿈을 꾸었다. 실제로도 그를 만날 때마다 강렬한 살인충동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방학을 맞아 부산으로 내려왔을 때 부러 K대를 찾았다. 거긴 큼지막한 어학실이 있었는데, 닥터위콤 수준엔 턱없이 못 미치지만 헤드셋이 달린 어학기기가 있었다. 기필코 한 대를 차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곳에는 근로 장학생으로 보이는 관리자가 늘 상주해 있었다. 사흘여를 지켜본 결과 그는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곤 줄곧 자리를 지켰는데, 그 시간은 대략 3분 남짓이었다. 어느 날 준비해 간 드라이버로 미리 나사를 풀어놓고 관리자가 자리를 비우기만을 기다렸다. 심장이 요동쳤다. 드디어 그가 자리를 떴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가방에 기기를 쑤셔 놓고 정문으로 내달렸다.
범인은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고 했다. 그래서 그로부터 3년간 그 근처엔 가지도 않았다. 기기는 환상적이었다. 녹음 기능이나 반복 재생 따위의 고급 기능은 없었지만 헤드셋에서 들려오는 원어민의 목소리는 무척 달콤했다. 후배 녀석에 대한 살인충동도 더 이상 일지 않았다. 하지만 힘들게 훔쳐 온 그 기기를 사용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크기가 상당한 만큼 들고 다닐 수 없었다. 역시나 이동성이 간절했다. 늘 이어폰을 끼고 캠퍼스를 다니는 후배 녀석에 대한 살인충동이 다시금 일었다.
이듬해, 학교에서 대략 6㎞쯤 떨어진 곳에 있는 개인병원에서 야간 경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첫 월급을 받아 들고 꿈에도 그리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5만 원에 샀다. 출퇴근을 위해 중고 자전거도 3만 원에 구입했다. 다음날 아침 경비를 마치고 학교로 가는 길은 무척 설렜다. 이어폰으로 영어뉴스가 담긴 카세트를 들으며 자전거 페달을 굴렸다. 인도가 무척 좁아 차도로 달리는데 아무래도 뒤에서 쌩쌩 달려오는 차들이 불안했다. 차라리 차를 보며 달리는 것이 낫겠다 싶어 역주행을 했다. 불과 2㎞ 남짓 달렸을까, 골목에서 차도로 접어들던 봉고차 한 대가 나를 덮쳐 왔다. 순간 본능적으로 자전거를 버리고 인도로 몸을 날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 자전거는 봉고차 아래에 쑤셔 박혀 있었고 카세트 플레이어는 앞바퀴에 즈려 밟혀 있었다. 차량 기사가 욕을 하며 자전거를 꺼내 내 앞에 던져버리는 것을 황망히 보고만 있었다. 봉고차는 사라지고 플레이어의 잔해와 반쯤 구겨진 자전거만이 남았다. 내 첫 카세트 플레이어는 그렇게 드라이아이스 마냥 사라졌다. 울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