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3월, 대학의 첫 주는 설핏 지나갔다. 수업과 과제와 시험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 대부분의 강의는 끝이 났다. 그리고 이내 도래한 첫 주말, 난 계획했던 대로 새벽 4시에 일어나 익히 봐 둔 인력사무소로 갔다. 이른 시각이지만 벌써 사무소는 부산했다. 어디선가 인력을 요청하는 전화가 오면 소장은 오랜 지인부터 일거리를 할당했다. 나처럼 앳된 얼굴과 왜소한 몸을 가지고서는 소장의 눈길을 끌 재간이 없다. 덩치 커 보이려 부러 큰 옷을 입고 모자를 푹 눌러써봐도 내겐 좀처럼 차례가 오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건방진 자세로 일 잘하는 일꾼인 양 사무실을 서성거렸다. 6시를 좀 넘겨 마침내 소장은 나와 내 또래의 젊은이 서너 명을 호출했다. 일당이 그리 많지 않은 허드렛일임에 틀림없었다.
우리를 태운 더러운 봉고차는어둠 속을 질주했다.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갈대가 무성한 벌판이었고 멀리 신축한 듯한 아파트가 드문드문 있었다. 누군가가 벌써 큰 드럼통에 장작불을 피우고 있었다. 부산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매서운 바람이 계속 얇은 옷을 파고들었다. 배고프고 추웠다. 차라리 뜨겁게 타오르는 장작이고 싶었다. 사람들은 장작불을 쬐며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욕을 섞어가며 대통령을 비하했다. 저 담배가 다 타면 일이 시작될 것이었다. 유난히 뻑뻑 빨아대는 그의 입놀림이 애석했다.
7시가 되자 일이 시작되었다. 우리에게 제일 먼저 할당된 일은 벌판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쇳덩이를 한 곳에 모으는 것이었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벌판은 더 황량해 보였고 내 어깨는 추위로 더 움츠러들었다. 쇳덩이는 족히 30여 개는 됨직 했다. 개중에 상대적으로 가벼워 보이는 놈을 골라 호기롭게 들어 올렸다. 분명 들어 올렸는데 쇳덩이는 여전히 땅에 붙어 있었다. 쇳덩이를 든 게 아니라 연약한 지반 속으로 내 왼쪽 다리가 허벅지까지 쑥 들어간 것이었다.
조금 떨어져 쇳덩이를 줍던 검은 모자가 웃으며 날 뽑아 올리기까지 약 10여 초간 내 다리는 지하세계를 탐닉했다. 분명 흙이 있어야 하는 땅속에 흙이 없었다. 뭔가 축축하고 질겅거리는 이물감이 신발 속까지 스며들었다. 그리고 내 다리가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검은 모자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뒤로 한껏 물러났다. "앗, 똥이닷!" 그랬다. 내 다리에서는 잘 농축된 인분이 흘러내렸고 바람도 그 냄새를 쓸어가지 못했다. 신발을 벗자 누렇다 못해 적갈색의 인분이 가득했다. 어느새 사람들이 달려와 멀찍이서 나를 둘러싸고 웃고 있었다. 아파트의 오수가 이곳으로 흘러들었다는 둥 원래 똥밭이었다는 둥 추측을 남발할 뿐 정작 나를 위로하는 말은 한마디도 던지지 않았다.
들판 한편 함바집 앞마당에 수도가 있었다. 물은 너무 차가웠다. 아무리 호수로 물을 뿌려대도 누런 물이 끝도 없이 흘렀다. 다리가 얼어 감각이 없었다. 배고프고 춥고 더러웠다. 사람들은 저리 가라며 손사래를 쳤다. 간식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냄새난다며 떨어져 먹으라 했다. 협업의 정수인 공사판에서 이렇게 외로울 줄은 몰랐다.
지옥 같던 하루가 가고 일당 5만 원을 받았다. 버스틀 타고 돌아오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무슨 냄새가 나지 않냐며 수군대더니 냄새의 진원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 시선들이 내게로 오기 전 무작정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거주하고 있던 독서실까지 오래도록 걸었다.
독서실 샤워장의 물은 빨래를 하기엔 수압이 너무 낮았다. 한참을 기다려야 세숫대야 분량의 물이 모였다. 바지에서는 아직도 카레 색깔의 국물이 우러났다. 바지는 버리기로 했다. 어차피 낡을 대로 낡았으니까 아깝지 않았다. 다만 하나뿐인 신발은 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역한 오물을 완전히 씻어낼 자신이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끝에 세탁소에 신을 맡기기로 했다. 여즉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세탁소였다. 그나마 왼쪽 신 하나만 맡기면서 값을 흥정했던 것 같다. 그날 저녁 독서실 어둠 속에서 울었다. 똥통에 빠져 번 돈이 아까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