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라투스트라는 그렇게 말한 적 없다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by 구론산바몬드

대중의 관심을 먹고사는 연예계나 정치에서 이미지 메이킹(Image Making)은 사실을 압도하기도 한다. 때론 가짜 뉴스에 비견될 정도로 철저하게 왜곡된 모습일지라도 대중은 그것에 속아 넘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이미지 메이킹하면 흔히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링컨은 1890년 윌리엄 슈어드(William Seward)를 제치고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는데, 당선의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그러던 그에게 뉴욕 웨스트필드에 사는 11살 소녀 그레이스 베델이 ’수염을 기르면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은 유명한 일화다. 얼굴에 주름이 많고 야위어서 날카로워 보이니 수염을 기르면 인상이 훨씬 부드러워 보일 거라는 게 그 요지였다. 링컨은 그 조언에 따라 수염을 길렀고, 39.8%의 지지율로 미국 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링컨의 경우는 이미지 메이킹보다는 오히려 아이의 말도 존중할 줄 아는 그의 인성에 방점이 찍힌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미지 메이킹의 수혜를 입은 사람으로는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꼽힌다. TV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던 무렵인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역사상 최초로 TV토론이 열렸다. 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과 무명에 가까운 정치 신인 케네디의 대결에서 모두가 닉슨의 낙승을 예상하던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TV에 비친 케네디의 신선한 이미지였다.


토론 당일 닉슨은 전염병과 부상으로 인해 해쓱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초췌해 보이는 회색 양복도 거기에 한몫했다. 반면 케네디는 스튜디오 배경을 고려해 짙은 감청색 양복과 파란 셔츠를 골라 입고, 앉아 있는 동안 피부가 보이지 않도록 긴 양말을 신는 등 치밀하게 준비를 했다. 의상은 물론 몸짓까지 연구해 온 케네디는 여유 있는 손짓과 표정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총 네 번의 토론 후 결국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케네디가 제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훗날 사람들은 이 첫 번째 토론이 대통령 선거의 당락을 결정 지은 요인이었다고 말한다. 닉슨 또한 그의 회고록에서 ”첫 번째 토론에서 나를 가장 언짢게 한 점은, 케네디와 내가 벌인 대결의 실질적 내용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외모상 유불리를 비교한 것이었다“고 썼다.


철학과 1학년 첫 학기에 난생처음으로 서양철학사를 공부하면서 그 숱한 철학자 중에서도 니체에 꽂힌 것은 전적으로 그의 이미지, 근사하게 기른 그의 콧수염 때문이었다. 철학을 하면 그처럼 멋진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뇌까지 퍼진 매독균으로 미치광이 상태가 되어 결국 죽음에 이르렀지만 그의 짧은 인생역정마저도 너무나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이때부터 니체에 탐닉했다. 니체의 온갖 저서들을 읽기 시작했지만 심오한 사상의 기조는 딱히 손에 잡히지 않았다. 성서의 문체를 본떠 쓴 그의 글들은 철학적 저술이라기보다 오히려 산문시에 가까워 난해하기 그지없었다. <비극의 탄생>, <선과 악을 넘어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 유명한 저작들은 몽매한 나에겐 잠언일 뿐이었다. 단언컨대, 니체의 작품을 읽는 동안 나는 결코 불면의 밤을 보낸 적이 없다. 책을 손에 들기만 해도 나는 잠에 곯아떨어졌다. 분명 내 부족한 철학적 소양이 큰 몫을 했겠지만, 그의 철학에 쉬 접근하지 못하는 데 대해 나는 또 다른 진단을 내렸다. 그것은 전적으로 번역의 문제였다.


최근에야 비영어권 저작들을 원어로 읽고 직역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독어나 프랑스어, 라틴어 등으로 된 원전이 미국 등지에서 영어로 번역되면 그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여 출판하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였다. 이중 삼중으로 번역을 거듭하면서 오역도 많았을 테고 저자의 본래 의도가 왜곡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결국 니체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어로 쓴 원문을 읽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그게 안 된다면 니체의 번역자와 해설서를 쓴 사람들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학문의 세계는 정말 잔인하다. 이미 영어에 좌절한 나에게 독일어라니, 이는 학문을 하지 말란 말이 아닌가. 학력고사로 영어공부에 종지부를 찍을 줄 알았던 나는 너무나 순진하지 않았나 싶다. 결국 나는 니체를 포기하기로 했다. 아니 포기해야만 했다. 짜라투스트라는 '신이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콧수염 같은 이미지에 속지 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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