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종합영어는 너무 어려워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by 구론산바몬드

2011년 9월 23일, 네이버 뉴스로 그의 부음을 알았다. <수학의 정석>과 함께 고교 참고서의 양대 전설이라 불린 <성문영어> 시리즈의 저자인 송성문 씨가 투병 중이던 간암으로 별세했다는 소식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그였지만 그의 죽음을 애도해야 마땅한 것은 그에게 너무도 많은 빚을 진 때문이었다. 가슴 한편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인터넷 창을 닫는 손끝이 살짝 떨렸던 것도 같다.


고인이 1967년에 <정통종합영어>라는 제명으로 처음 내놓은 이 저작은 70~80년대 중고교생들에게 영어 바이블로 불릴 만큼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한때는 1년에 30만 부 이상 팔렸고, 누적 1,0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크라운 출판사의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버금가는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였다. 서울대 등 주요 대학의 본고사에 지문이 그대로 인용되면서 유명세를 탄 이후 고교 영어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실제 그 책의 난도는 대학생 수준 이상으로, 혼자 자습으로 섭렵하기엔 상당히 어려움이 크다. 영어사전 마냥 작은 글자로 단락의 구분도 없이 빽빽하게 기술된 학습서를 펼쳐 보면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에 진학한 학력고사 세대의 우등생들은 중학교 시절에 최소 5 회독 이상을 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니, 그런 학생들과 한 교실에 앉아 같이 수업을 받아야 하는 나 같은 영어 열등생들에게 현실은 너무도 마뜩잖았다.


두툼한 <성문종합영어>는 5권짜리 <맨투맨 종합영어>와 쌍벽을 이루는 경쟁 서적이었는데, <맨투맨 종합영어>가 이름 그대로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진 여성 성향의 친절한 학습서인 반면, <성문종합영어>는 핵심 위주로 기술되어 투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학습서와 단어집을 곁들이면 그 분량도 상당했다. 하지만 <맨투맨> 시리즈를 보는 학생은 찾기 힘들었는데, 아무래도 5권이라는 무지막지한 양이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주는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두 권짜리 <맨투맨 기본영어>도 있지만 학습서에는 주류가 있는 법이니, 거기에 순응하는 많은 이들의 외면을 받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첫날부터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이 강행되었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성문영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아무도 학습코칭을 해 줄 사람이 없었던 내가 <성문종합영어>나 <수학의 정석>을 알 리가 없었다. 자습시간에 무식하게 교과서를 펼쳐 들고 있던 내 눈에 많은 친구들이 너무도 당연한 듯 두툼한 책을 펼쳐 드는 모습은 너무도 이국적이고도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수학의 정석> 실력 편과 기본 편이 그 학생의 수준을 명확하게 갈라놓았듯, 공부를 꽤 함 직한 녀석들은 이미 반쯤은 너덜 해진 <성문종합영어>를 보고 있었고, 그렇지 못한 녀석들은 <성문기본영어>를 보았는데, 잠시 빌려 본 <성문기본영어>조차도 나에겐 암호와도 같았다.


다행히도 나 같은 열등생도 성문 시리즈에 입문할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단권짜리 <성문기초영문법>이었다. 크기도 작은 데다 분량도 300쪽가량에 그쳐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다만 새마을운동의 상징 마냥 진한 녹색 표지는 100m 밖에서도 눈에 띌 정도였는데 차마 자랑스럽게 꺼내놓기 힘들었다. 종합영어와 기본영어를 보는 친구들 사이에서 기초영어를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굴욕이었고, 마치 달릴수록 더 뒤로 가는 느낌만 줄 뿐이었다. 그래서 달력으로 책을 감싸고 사인펜으로 <성문종합영어>라 쓰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읽는 학습서의 수준이 학생의 위계를 만들고, 다음 단계로의 진입이 ’유리천장‘에 막혀 있는 잔인한 시절이었다. 당연히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결국 그 책을 다 읽지 못했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소위 ’기초‘라는 제명을 가진 책들은 죄다 불온하다. 방대한 분량을 한 권에, 그것도 쉽게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설명을 건너뛰고 핵심만을 나열하게 되니 논조는 불친절해지고 이해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한 권으로 읽는 한국사나 세계사 따위의 책을 읽어보면 그 점은 명확해진다. 과연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몇 번을 읽어도 역사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뇌리에 정리되지 않고, 정연한 정보를 주고받지 못하는 전두엽과 측두엽은 과열되어 흥분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영어 하면 문법과 독해만을 강조하던 당시에 기초영문법도 채 섭렵하지 못한 내가 좋은 성적을 거둘 리 없었다. 보충수업까지 합하여 일주일에 10시간 이상 영어수업을 받는 일은 정말 고역이었다. 특히 부교재를 사용하는 보충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은 홀수 페이지의 홀수 문항만을 대충 훑는 것으로 아우토반을 달리는 것 마냥 빠르게 진도를 나갔다. 한 달에 한 권씩 학습서를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했고, 쌓이는 책 높이에 반비례하여 영어성적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근데 정말 억울한 것은, 나는 3년간 한 번도 야간 자율학습을 빠지지 않았고, 학습 시간의 대부분을 영어에 할애했다는 것이다. 영어를 향한 처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어성적은 도무지 오르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나는 성적표를 버리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쳤던 월말고사를 비롯하여 중간고사, 기말고사는 물론 모의고사 성적표까지 거진 보관하고 있으니, 내 영어성적이 정말 엉망인 것은 전적으로 기억이 아니라 기록이다.


고등학교 첫 시험부터 졸업하기까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영어성적은 100점 만점에 32점에서 56점을 오락가락했다. 모의고사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총 340점 만점의 학력고사를 치르던 시절이었는데, 문과 기준 국어는 75점, 영어는 60점, 수학은 55점으로 190점에 달하는 국영수가 절대적 중요성을 차지했다. 나는 모의고사에서 영어점수가 20점을 넘은 적이 없다. 학력고사를 한 달 앞두고 세 번의 모의고사를 연달아 치는데, 그 평균점으로 갈 대학과 학과를 결정하는 것이 관례였다. 사범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200점에도 훨씬 못 미치는 점수를 보고 선생님은 사범대학은 어림도 없노라며 단호히 포기할 것을 종용했다.


학과 선택은 그야말로 선택이 아니라 가능하지 않은 학과를 지워나가는 작업이었다. 문과였고 철저히 평범했던 내게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았다. 성적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사범대학과 전혀 관심 밖인 경상대학을 빼니 인문대학만이 남았고, 거기서도 능력 밖인 언어 관련 학과를 빼고 나니 국문과, 사학과, 철학과가 선택할 수 있는 전부였다. 여기에 요지부동의 초라한 성적을 대입하니 소위 ’답정너‘라는 말처럼 학과가 결정되었다.


D대학교 철학과를 가겠다는, 아니 갈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은 부모님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나마 철학과보다 D대학교에 방점을 찍으며 애써 위안하는 모습을 보고 죄송함과 자괴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미지만이 가뭇하게 교차할 뿐 철학이 무엇을 하는 학문인지도 몰랐던 19세 고등학생에게 고학력 실업자로 가는 고속도로에 진입하게 된다는 친구들의 비아냥거림은 참기 힘든 모욕이었다.


오래전 철학과를 다니는 주인공을 다룬 영화를 본 기억이 사뭇 떠올랐다. 1975년에 하길종 감독이 만든 <바보들의 행진>은 철학과를 다니는 병태를 주인공으로 하여 개발시대 청춘들의 고뇌와 자조를 다루었고, 1984년에 배창호 감독이 만든 <고래사냥> 역시 철학과를 다니는 또 다른 병태가 인생의 의미를 곱씹는 로드무비였다. 왜 처절하게 고민하는 청춘은 철학 전공자로 대변되는 것인지, 그리고 그런 이미지가 덧씌워져 철학을 학문이 아니라 인생공부쯤으로 낙인찍은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에서 한껏 포장된 낭만 속에서도 결국 인생의 영속성을 떨쳐버리지 못한 주인공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나는 너무도 어린 나이에 불안이라는 커튼으로 밝은 미래의 가능성을 애써 가려버렸다.


학력고사를 치르기 하루 전날 담임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떨지 말고 평소와 다름없는 마음가짐으로 시험에 임하라고 기운을 북돋아 주셨다.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잘 따랐다. 그해 학력고사에서 정말 평소와 다름없이 영어 17점을 받았고 총점은 200점을 넘지 못했다. 3년간의 노력은 대학에 합격했다는 기쁨보다 어떻게 그 점수로 합격을 할 수 있었는지 의아함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어쨌든 그토록 바라던 대학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기대감에 가슴은 부풀어 올랐지만 부푼 가슴속은 텅 빈 채로 나는 갓 스무 살이 되었다.


대학에 가면 이제 영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그래도 가슴 한편에 <성문종합영어>는 내게 범접할 수 없는 로망으로 남았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뒤처리를 안 한 것 마냥 늘 뇌리에 남아 패배감을 닮은 감정의 앙금을 남겨놓았다. 하지만 그 로망을 실현하기까지는 몇 년이 더 지나야 했다. 고등학교 시절은 그렇게 암울했고, 잔인한 영어성적만을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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