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졸업하는 해에 임용고사 추가 시험을 실시하게 된 건 정말 운이 좋았다. 그때가 처음이었고 지금까지도 그런 예가 없기 때문이다. 만 65세에서 만 62세로 정년이 단축되면서 명예퇴직 교사가 늘었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갑작스럽게 결정된 추가 시험이었다. 교단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고경력 교사 1명에게 주는 재원으로 대략 2~3명 정도의 신규 교사를 가용할 수 있다는 정부의 순전한 경제 논리 때문이었다.
졸업 직후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모두를 내려놓고 당장의 시험에 올인하기로 했다. 재수의 길은 암담하기 마련이지만 12월이 아니라 5월까지의 단거리 시합이라 심리적 부담은 덜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모 국립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나의 고등학교 졸업 이후 손 놓았던 도시락을 다시 싸기 시작했다. 점심은 도시락을 먹고, 저녁은 사 먹으라며 매일 천 원을 쥐어주셨다. 없는 살림인 줄 알면서 식비를 지출할 순 없었다. 점심때 반을 먹고 저녁에 나머지를 먹었다. 근데 그게 문제의 시발이었다.
점심시간이면 늘 구내식당은 붐볐다. 처음 몇 일간은 식당에서 밥을 먹었지만 혼자 4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자니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운동장 옆 계단에 앉아 후딱 먹어치웠다. 하지만 3월이라 여전히 기온이 낮았고 모래바람이 불어 식사를 하기가 곤란했다. 건물 옥상에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다. 옥상 구석에서 밥을 먹으려는데 웬걸 사람이 많았다. 담배를 피우거나 모형 비행기를 날리는 사람 등으로 오히려 북적였다. 그러다 우연히 최적의 장소를 찾았다.
우연히 도서관 옆 5층짜리 건물에 들어갔다. 버려진 책걸상과 온갖 비품들이 5층 계단 위부터 옥상 입구까지 잔뜩 쌓여 있었다. 조명도 없었고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얼마나 오래 방치되었는지 먼지가 자욱했다. 누가 죽어도 모를 법한 장소였다. 그날부터 거기서 밥을 먹었다. 사나흘쯤 되었을까 한날은 밥을 먹고 있는데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노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어지럽게 쌓인 책걸상 사이 어둠 속에 번뜩이는 두 눈이 있었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갑자기 그 눈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고 도시락은 엎어졌다. 부엉이였다. 날개를 펴자 그 크기가 상당히 위압적이었다. 벽과 바닥과 천장에 부딪치며 퍼득거렸다. 부엉이의 영역을 내가 침범했던 것이다. 나는 혼비백산하여 반찬통도 채 챙기지 못하고 도망쳤다.
그 넓은 캠퍼스에 밥 먹을 곳이 없었다. 결국 화장실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요즘처럼 깨끗한 좌식변기가 있는 화장실이 아니어서 밥을 먹는 것은 고역이었다. 트인 벽 너머로 볼일 보는 소리와 향기가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밥을 욱여넣으며 속으로 외쳤다. 제발 큰 볼일은 집에서 보면 안 되겠니. 어쨌든 지저분한 곳이지만 문을 잠그고 있으면 그곳은 나만의 온전한 식당이 되었다.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화장실 작은 창밖으로 인접한 중학교 교정이 보였다. 저기엔 깔끔한 식당이 있겠지. 저런 곳에서 나도 근무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그렇게 매일 불안을 반찬 삼아 식은 밥을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