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배우 윤여정은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여 102년 한국 영화의 역사를 새로 썼다. 수상 소감에서 그녀는 다른 배우들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녀의 50년 연기 경력을 봐온 우리로서는 그것이 겸양의 표현임을 잘 안다. 반면에 그때 나의 운수가 좋았던 건 정말 운이었다. 내가 한 거라곤 전화 한 통 건 것밖에 없었으니까.
막상 공부는 시작했지만 임용시험 재수의 길은 막막했다. 5월 추가시험이라는 전대미문의 기회를 맞아 이번에 떨어지면 12월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심했다. 무엇보다 시험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재수, 삼수를 한들 과연 합격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컸다. 채 석 달이 되지 않는 기간에 비해 부족한 과목이 너무 많았다. 같이 공부할 사람도, 머리를 맞대고 공부 방향을 논의할 사람도 없던 그때 무던히도 외로웠다.
이른 더위와 함께 5월이 지나고 있었다. 시험을 10일 여 남겨둔 그날은 스승의 날이었다. 변함없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불현듯 지도교수님 생각이 났다. 임용시험에 떨어지고 낙향하는 나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해 주셨던 분이었다. 여태 단 한 번도 선생님께 전화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다가오는 시험의 부담감으로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지도교수님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응답이 없었다. 두어 시간 후 다시 걸었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 과사무실 조교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수님은 장기출장 중이라고 했다.
도서관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장기출장을 간다면 그건 시험문제 같은 걸 출제하기 위한 건 아닐까. 그렇다면 교수님이 이번 임용시험 출제위원인 걸까. 혼자 그런 추측을 해 보다 추측은 확신이 되었다. 어차피 시험은 목전이었고 내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도교수님께 배웠던 영어학 원서를 남은 기간 동안 공부하기로 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480쪽 분량의 두툼한 전공서적 한 권에 운명을 걸었다.
드디어 임용 시험일, 문제를 받아 들고 적잖이 당황했다. 1번부터 좀체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1번이 그나마 제일 쉬운 문항일 텐데 이번 시험도 역시 안 되는가 보다 하는 절망감이 일었다. 포기하고 다음 문항으로 넘어갔다. 2번부터는 눈에 익은 문제가 많았다. 웃다가 시험을 망칠 뻔했다. 어쩌면 잘 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절망을 밀어냈다.
합격 소식은 그렇게 우연처럼 다가왔다. 전역 후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한 지 만 4년 만에 내 운명은 영어 바보에서 영어교사로 바뀌었다. 내 억지 추측은 맞았다. 역시나 교수님이 그 시험의 출제위원이었음을 훗날 전해 들었다. 그날 전화를 걸지 않았다면 난 오래도록 미로 같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역시 스승의 은혜는 하늘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