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해(年) 2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by 구론산바몬드

1999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낙향했다. IMF의 여파로 사회적 경기가 아주 어려운 시절이었다. 대학 졸업자는 곧 백수로 전락했고 취업의 기회는 요원했다. 졸업식은 장례식마냥 침울했다. 우리는 학사모를 하늘로 던져 올리지 못하고 소리 죽여 울었다. 사범대 졸업자인 나에겐 그나마 임용시험의 기회라도 있었지만 합격의 영예는 누리지 못했다. 부산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쉬 잠들지 못했다. 이대로 영원히 달리고 싶었다.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한 영화 <스피드>의 멈추지 못하는 버스처럼.


스물여덟의 청춘은 막연했다. 세상 사람들의 3분의 2는 실업자였고 그 속에 내가 있었다. 가세는 기울 대로 기울어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막노동을 하시던 아버지는 일거리를 잃었고, 파출부를 하시던 어머니는 쫓겨나다시피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내겐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생업의 전선으로 뛰어드는 것, 다음 임용시험을 위해 1년 간 재수하는 것, 그리고 사립학교의 교사 자리를 알아보는 것 그것이 이 내 앞에 놓인 삼지 선다형 문항이었다.


일을 하는 것은 당장의 궁핍함은 해결할 수 있겠지만 교직의 꿈을 미루는 것이라 쉬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구하기 힘들 만큼 국가경제는 동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재수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부모님의 고생을 외면하고 마냥 공부만 하기엔 1년은 너무 길었다. 별 수 없이 사립학교 구인 광고를 훑기 시작했다. 몇 군데 지원서를 넣어봤지만 소식이 없었다. 내정자가 있고 구인 광고는 요식행위일 거라는 말이 있었다. 어느 학교에서는 공개수업과 면접의 기회를 얻을 수가 있었지만 학교가 요구하는 상당액을 충당할 길이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던 와중에 희소식이 들려왔다. 5월에 교원 임용시험을 추가로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단군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해 초 국회에서는 교원의 정년단축을 가결시켰다. 젊고 활기찬 교육 분위기를 조성하고 인건비 절감을 통해 교육환경 개선에 필요한 투자재원을 마련한다는 취지였다. 이로 인해 수많은 교사들이 명예퇴직을 신청하였고, 부족해진 교사 수를 채우기 위해 이례적으로 추가 시험을 실시한다는 거였다. 1년의 재수생활이 3개월로 줄어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백지답안을 내는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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