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몇 달 전 UFC 페더급 선수 정찬성이 계체를 통과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한계 체중인 66.22kg을 찍었는데 그의 모습은 별명 그대로 '좀비'와 같았다. 12시간 후 정찬성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몸무게를 회복한 인증샷을 올렸다. 77kg이었다. 얼마나 혹독한 감량을 했는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시합의 결과와 상관없이 훌륭한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커트라인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1999년 5월, 추가로 실시한 영어과 임용시험에는 34명 모집에 20명만이 커트라인을 넘어 합격했다. 시험이 어려웠던 만큼 합격의 기쁨은 컸다. 신규 교사를 선발하고 나면 발령 전에 10일간의 연수를 실시하는데 워낙 뽑힌 인원이 적어 우리는 인접한 울산광역시 연수원에서 울산의 신규 교사와 함께 연수를 받게 되었다. 부산에서 울산의 방어진까지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연수원 근처에 방을 잡아야 했다.
대학 동문이 있는 사람들은 삼상 오오 모여 같이 방을 잡았다. 나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n분의 1로 나눈 방값조차 낼 돈이 없었다. 첫날 연수를 마치고 울산 거리를 돌아다녔다. 단돈 29만 원을 들고 대학을 졸업하고 오겠노라 상경하던 그때보다는 그리 절망적이지 않았다. 한참을 걷다가 허름한 공중목욕탕이 눈에 들어왔다. 중년의 여자가 카운트를 지키고 있었다. 욕실 청소를 하는 조건으로 재워달라고 했다. 미친놈 보듯 게슴츠레 올려다보는 주인에게 신규 교사 연수자료집을 들이밀었다. 신원을 확인한 주인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흔쾌히 2주 간의 상주를 허락했다.
남탕에는 남자 목욕관리사가 있었다. 여자의 남편이라고 했다. 그에게서 욕실을 청소하는 방법을 배웠다. 덕분에 며칠 편해지겠다며 외려 좋아했다. 욕실 청소는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힘들기는 했지만 잠자리가 생긴 데다 공짜 목욕까지 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밤 9시가 넘어 목욕관리사가 작은 상을 차려 들고 왔다. 갓 구운 삼겹살과 김치, 소주 두 병이 올려져 있었다.
탈의실 바닥에 앉아 그와 소주잔을 기울였다. 묻지도 않았는데 그는 자신이 살인 전과자였다고 말했다. 순간 오싹했지만 그가 나를 죽일 이유는 없었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한동안 했고,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내게 진심 어린 조언을 덧붙였던 것 같기도 하다.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목욕탕은 덥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무엇보다 모기와 바퀴벌레가 많아 잠을 설쳤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가슴 벅찬 날이었고, 연수생 중에 제일 깨끗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