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은 빛이 만들어낸다
* 이 글은 픽션입니다.
회의실 유리벽에 비친 내 얼굴은 요즘 따라 조금씩 낯설게 보였다. 화면 속 도형의 선이 흐려진 건지, 아니면 내 집중이 예전만큼 또렷하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상태로 시안을 설명하고 있는데, 신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책임님, 이 부분이요…
음, 제가 아직 이해가 덜 돼서 그런가…
혹시 한 번만 더 같이 봐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놓친 부분이 있을까 봐서요…
말투는 지나칠 만큼 부드러웠고, 단어 하나하나를 고르느라 시간을 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마치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려는 배려처럼 들렸고, 그 배려가 오히려 더 정확한 진단 같았다. 그는 ‘감’, ‘구식’, ‘느리다’ 같은 단어를 끝까지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빈칸들을 너무 자연스럽게 채웠다.
누구도 나에게 감이 떨어졌다고 말한 적은 없다. 심지어 신입도 비난하려는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본인의 감각을 정중하게 전하려는 태도일 뿐이었을 텐데, 나는 그 부드러움을 정반대로 받아들였다. 완곡한 말이 오히려 더 날카롭게 다가왔고, 그 말은 오래전부터 마음속에서 켜져 있던 불안의 스위치를 조용히 눌렀다.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말이 있다는 걸, 이 나이가 되면 누구보다 잘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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