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등록비용 5만원
2025년 1월, 새해가 밝았다.
나는 12월을 가장 좋아했다. 연말이 되면 헬스장은 텅 빈다. 각종 연말 모임으로 바빠지는 사람들은 굳이 운동을 인생의 최우선 순위에 두지 않는다. 그들에게 운동은 '새해 목표'정도에 그치는 것이다.
사실, 그것은 언니도 똑같았다.
"2025년엔 진짜 다이어트 성공할 거야! 새해 다짐 1호! #다이어트 #운동스타그램"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작년 11월에 함께 했던 운동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치 그 시간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내가 가르쳐준 스쿼트 자세, 슈러그를 통한 두통 완화법, 물 마시는 습관의 중요성... 그 모든 배움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묵묵히 나의 길을 걸었다. 매일 아침 운동을 하고, 식단을 관리하고, 새로운 동작에 도전했다. 종종 언니를 생각했다. 몸의 움직임에 대한 인지가 둔한 나와는 달리, 몸이 좋아지는 소리를 잘 듣고 즉시 피드백이 가능했던, 타고난 몸을 가진 언니.
내가 새로운 동작을 배우면 '아, 언니가 팔이 아프다고 했는데. 이 동작을 하면 많이 좋아질 것 같은데.' 라며 떠올리기도 여러번이었다.
하지만 어느 한쪽만 열심일 수는 없었다. 박수도 양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않던가.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는 건 서로에게 피곤함만 남을 뿐이었다.
그렇게 함께 운동한 날로부터 약 3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야, 시간 돼? 같이 운동할래?"
예상치 못한 언니의 카톡에 반가운 마음이 반, 당황스러운 마음이 반이었다.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동안 한 번도 운동 얘기를 꺼내지 않던 언니가 갑자기 왜?
"어, 나야 운동은 계속 하고 있는데. 근데 갑자기 왜?"
"그냥... 다시 해볼까 싶어서. 네가 있으면 더 잘할 것 같아서."
순간 지난 3개월을 떠올렸다. 내가 매주 퇴근 후 한 시간을 달려가 언니를 가르쳐주던 그 시간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언니의 태도.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갈 수는 있어. 근데 내 헬스장 이용비도 언니가 등록해주는 거지?"
사실 이 말은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11월 내내 여러 번 언급했던 내용이었다. '연장 등록을 하게 되면 내 비용도 언니가 부담해주면 좋겠다'는 뉘앙스로. 하지만 그때마다 언니는 귀를 막은 듯 넘어갔었다.
"뭐? 내가 왜? 너는 어차피 운동하잖아. 그리고 1+1비용도 내가 냈잖아."
화면 너머로도 당혹감이 느껴졌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썼다.
"언니, 난 운동을 가르쳐주려고 매주 고향까지 갔어. 당연히 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거고."
"그럴 거면 운동을 안 해도 괜찮아. 난 네가 운동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봐? 너네 헬스 트레이너가 돈 받아야된다고 했었던거 듣고도 나 완전 극혐했잖아."
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언니는 내가 운동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나의 시간과 노력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마치 내가 운동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언니에게 무조건 호의를 베풀어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건 내가 진정으로 운동을 사랑하지 않는 증거라는 듯이.
"나는 애초에 언니한테 돈을 받을 생각도 없었어. 돈 이야기를 했던 건 내가 뭔가 이득을 취하려는게 아니라 언니뿐 아닌 모든 사람들이 어떤 의지를 다지는데에는 그런 조건이 들어가는 게 좀더 의지르 이어가기 좋다는 의미로 했던 말이고. 극혐이라고까지 얘기하는게 나한테는 좀 유감이네."
나는 진심으로 언니가 운동을 좋아하기를 바랐다. 언니가 시시때때로 두통이, 근육통이 심하다고 할 때마다 그렇게 사소하게 나를 괴롭히는 통증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다. 그런 언니의 긍정적인 호전을 기대했기 때문에 그 먼 고향 헬스장을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고, 언니를 기다리며 개인운동을 하는 시간이 즐거웠던 것이다.
보내고 나서 한참을 핸드폰을 쳐다봤다. 이게 맞는 건지, 내가 너무 심했는지 고민되기도 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아니다. 이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시간도, 노력도, 지식도 모두 가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더 이상 나를 소모할 이유가 없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대신 언니의 SNS에는 또다시 '운동은 역시 나랑 안 맞는 것 같아'라는 글이 올라왔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진짜 당연함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나의 시간, 나의 노력, 나의 가치.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운동을 사랑하는 마음.
나는 운동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게 둬서는 안되었다. 누군가에게 당연하게 여겨질 때는 분명히 선을 그을 줄 알아야 했다.
'나는 운동을 사랑하는 거지, 언니를 사랑한 게 아닌데.'
나보다 타고난 몸을 가진 언니. 나보다 타고난 운동신경을 가진 언니. 언제나 뱃살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언니. 그리고, 내가 운동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용하려 드는 언니.
내가 제공한 단한번의 기회가 언니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되지 않았음에 큰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 먼 길을 달려가 신나는 마음으로 운동을 하나하나 가르쳐준 동생에게 커피라도, 밥이라도, 닭가슴살이라도, 프로틴이라도, 하다 못해 '고맙다'는 말이라도 그 어떠한 한가지도 주지 않은 언니에게 큰 실망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