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저주
언니는 처음부터 내가 1+1 헬스장 이용비를 부담하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만약에 처음부터 그마저도 언니에게 전부 내라고 했다면 언니는 운동을 아예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엇갈렸다. 그러나 정말 오해로부터 시작된 시간이라 할지라도, 언니는 분명 나의 도움을 통해 몸이 좋아짐을 느꼈다고 했다. 나와 함께한 헬스장을 오갔던 시간이 좋았다고 했다.
내가 운동을 꾸준히 배워 온 시간 동안 내가 거쳐간 모든 트레이너 선생님들에게 들었던 말이 있다.
"회원님은 트레이너보다도 뛰어나시죠."
나는 트레이너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신 있게 친구들, 지인들에게 내가 사랑하는 헬스를 가르쳐 줄 의향이 있었다. 트레이너에게 인정받은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나의 취미 속 한 분야인 헬스를 맛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이 사실을 아는 나의 지인들은, 나를 통해서 운동을 배웠던 친구들은 나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했고, 그것은 돈 이상의 가치라고 여겼다.
그래서 더욱, 언니의 반응은 나를 씁쓸하게 할 뿐이었다. 언니는 '손윗사람'으로서, '언니'로서 나와 함께 운동하는 것이 나에게 큰 호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니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오히려 내가 언니와 운동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매주 금요일 퇴근 후 한 시간을 달려 고향으로 향했던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운동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운동을 통해 얻은 자신감, 건강, in , 이 모든 것들을 언니도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 진심은 어느새 퇴색되어 버렸다. 언니에게 나의 시간과 노력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내가 운동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나를 이용할 수 있는 약점이 되어버렸다.
돈 얘기가 '극혐'이라고? 그렇다면 매주 내가 쓴 교통비는? 시간은? 그리고 내 전문성은? 그것들은 모두 공짜였나?
솔직히 말하자면, 언니가 운동을 하든 말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루에 물 한잔도 마시지 않으면서 두통이 있던지, 변비가 있던지, 건강이 나빠지던지 하는 일은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그저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고 매일같이 노래를 부르기에 방법을 제안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새 내가 언니의 운동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지난 3개월 동안, 언니는 나에게 감사 인사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다. 커피 한 잔, 운동 후 프로틴 한 스쿱조차도. 그저 '동생'이니까, '운동을 좋아하는 동생'이니까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다.
헬스장 1+1 등록비. 그것은 그저 이용비일 뿐이었다. 그런데 언니의 생각에는 그것이 나에게 지불한 '교육비'가 되어버렸다. 5만 원으로 한 달 동안의 내 시간과 노력, 전문성을 모두 사버린 셈이다. 그것이 내 주머니로 들어온 돈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거울 앞에 서서 스트레칭을 하며 생각했다. 나는 언니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늘 자신이 중심이고,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성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하는 운동이 이런 식으로 이용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불쾌함을 넘어 괘씸함이었다. 내가 가장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을 이용당했다는 느낌.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
"원래 헬스는 생각도 안 했는데 너랑 한 기억이 좋아서 네가 먼저 생각난 거야."
언니의 마지막 메시지였다. 나는 이렇게나 나를 떠올려준 언니에게 '감사'를 해야 하는 아랫사람이었다.
그 말을 읽는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언니는 마지막까지 착한 사람이어야만 했다. '너 덕분에'라는 말을 이용해서 나의 가치를 폄하하고 있는 것이었음을 알았다. 그러나 정말로, 나를 통해서 헬스를 통해 좋은 추억이 생기고 긍정적인 효과를 봤다면 가스라이팅을 할 것이 아니라 무언가 아주 작은 하나라도, 작은 진심 한마디라도 내게 해주었어야 했다. 그 돈 한 푼을 아까워할 것이 아니라.
내가 운동을 사랑한다는 것과, 무료로 내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렇다. 나는 운동을 사랑한다.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릴 때의 성취감,
매일 조금씩 강해지는 나의 모습,
그리고 운동을 통해 얻는 모든 긍정적인 감정들.
하지만 그 사랑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당연시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순수한 사랑이 아니게 된다. 그것은 그저 소모일 뿐이다.
헬스장 락커에 가방을 넣으며, 마음을 정리했다. 이제 더 이상 언니와의 관계에 내 운동을 끌어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소중한 공간이고,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을 나만의 시간이었다.
언제나 멋진 언니로 남고 싶어 하던 언니는 자신이 전혀 멋지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까? 꾸역꾸역 주장하는 손윗사람으로서의 권력을 고작 초보자의 위치에서 부린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기나 할까?
언니는 까짓 거 운동을 '같이'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스트레칭과 러닝머신 조금을 타기 위해 나에게 먼 길을 오라고 했다. 그것도, 내 돈을 들여서 말이다.
그러나 언니의 생각은 잘못됐다.
언니는 내가 어떤 식으로 운동을 하는지 모른다. 원정헬스를 가면 기본 두 시간 이상을 웨이트를 하는 것도 모르고, 삼대 삼백을 치는 것도 모른다.
당신이 나에게 운동을 '함께'하자고 제안할 것이었다면 적어도 나보다는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건 절대 여자는 될 수 없는 그런 수치다.
나는 괴리감을 느낀다. 언제까지고 언니로 남고 싶어 하는 언니의 품격을 지켜주기 위해서 언니에게는 더 이상 운동을 가르쳐줄 수 없음을 선언해야 한다. 언니가 끝끝내 나에게 운동을 배우고자 한다면 나는 언니에게 '몸'을 위한 훈련이 아닌 '정신'을 위한 훈련을 시키게 될 것 같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언니는 이제 그 어떤 PT도 만족하지 못할 것임을 안다.
언니는 영원히 다이어트를 선언만 하는 사람으로 남을 것임을 안다.
이것은 참으로 씁쓸한 저주이다.